창비 사전서평단을 통해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성장 소설이나 청소년 소설을 좋아하는 편이다. <유원>은 회복과 치유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서 읽기 전부터 기대가 되었는데,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소설이었다. 주인공인 유원은 감당하기 어려운 큰 사건을 겪고 살아남은 사람이다. 세상은 유원이 그 사건으로부터 벗어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익명의 많은 사람들, 동네 할아버지, 반 친구들이며 부모님까지. 너무나 어린 시절에 큰 사건의 생존자가 되어 버린 유원의 삶은, 자신의 삶이 아니라 한 명의 생존자로서의 삶이다. 공부를 잘 하지만 딱히 친하게 지내는 친구는 없는 유원은 점심 시간이면 혼자만의 아지트에서 시간을 보낸다. 유원은 그 아지트에서 학교 옥상의 문을 열 수 있는 마스터 키를 가지고 있는 '수현'을 만나게 되고, 처음으로 학교 옥상에 들어가 본다. 수현을 만나면서 유원의 세계는 조금씩 달라진다. 친구와 놀기 위해 학원 수업을 빠지고, 친구를 집에 초대해서 같이 짜장면을 시켜 먹는다. 그러나 어느 날 수현은 두 사람의 관계가 흔들릴 만한 큰 이야기를 유원에게 털어놓는다.
<유원>에서 유원이 어릴 적에 겪은 사건이 무엇인지, 그 사건은 지금의 유원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일부러 자세히 쓰지 않았다. 그 사건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고 서평을 쓰는 게 어렵긴 하지만 이 책을 읽을 사람이 너무 많은 이야기를 미리 아는 건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도 내가 이 소설을 읽으며 느꼈던 불안감과 안도감, 혼란스러움과 따뜻함, 그 밖의 다른 감정들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받은 가제본의 뒷표지를 보면 '모순투성이 마음을 딛고 날아오르는 모든 이를 위한 성장소설'이라는 문장이 있다. 그 말처럼 유원의 마음은 늘 모순투성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다 그렇다. 누군가가 고마우면서도 괜히 미울 때가 있다. 좋으면서도 귀찮게 느껴질 때가 있다. 유원이 누군가에게 부채감을 느끼면서도 그가 자신의 삶에서 사라져 주기를 바라는 건 전혀 이상한 게 아니다.
마스터키를 가진 수현은 유원의 마음을 열 수 있는 힘을 가졌다. 솔직하고, 정의롭고, 옳은 일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수현이라는 인물을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타인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다른 사람들과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되려면, 그들 자신이 부단히 노력하거나 누군가가 밖에서 그들의 마음을 열어 주어야만 한다. 수현은 유원의 마음을 열어 주는 존재일 뿐 아니라 유원이 높은 곳에 오르도록 도와 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마음을 걸어잠근, 높은 곳에 오르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수현과 같은 친구를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유원의 비행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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