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6. 18. 01:50

 

 창비 사전서평단을 통해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성장 소설이나 청소년 소설을 좋아하는 편이다. <유원>은 회복과 치유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서 읽기 전부터 기대가 되었는데,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소설이었다. 주인공인 유원은 감당하기 어려운 큰 사건을 겪고 살아남은 사람이다. 세상은 유원이 그 사건으로부터 벗어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익명의 많은 사람들, 동네 할아버지, 반 친구들이며 부모님까지. 너무나 어린 시절에 큰 사건의 생존자가 되어 버린 유원의 삶은, 자신의 삶이 아니라 한 명의 생존자로서의 삶이다. 공부를 잘 하지만 딱히 친하게 지내는 친구는 없는 유원은 점심 시간이면 혼자만의 아지트에서 시간을 보낸다. 유원은 그 아지트에서 학교 옥상의 문을 열 수 있는 마스터 키를 가지고 있는 '수현'을 만나게 되고, 처음으로 학교 옥상에 들어가 본다. 수현을 만나면서 유원의 세계는 조금씩 달라진다. 친구와 놀기 위해 학원 수업을 빠지고, 친구를 집에 초대해서 같이 짜장면을 시켜 먹는다. 그러나 어느 날 수현은 두 사람의 관계가 흔들릴 만한 큰 이야기를 유원에게 털어놓는다.

 

 <유원>에서 유원이 어릴 적에 겪은 사건이 무엇인지, 그 사건은 지금의 유원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일부러 자세히 쓰지 않았다. 그 사건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고 서평을 쓰는 게 어렵긴 하지만 이 책을 읽을 사람이 너무 많은 이야기를 미리 아는 건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도 내가 이 소설을 읽으며 느꼈던 불안감과 안도감, 혼란스러움과 따뜻함, 그 밖의 다른 감정들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받은 가제본의 뒷표지를 보면 '모순투성이 마음을 딛고 날아오르는 모든 이를 위한 성장소설'이라는 문장이 있다. 그 말처럼 유원의 마음은 늘 모순투성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다 그렇다. 누군가가 고마우면서도 괜히 미울 때가 있다. 좋으면서도 귀찮게 느껴질 때가 있다. 유원이 누군가에게 부채감을 느끼면서도 그가 자신의 삶에서 사라져 주기를 바라는 건 전혀 이상한 게 아니다. 

 

 마스터키를 가진 수현은 유원의 마음을 열 수 있는 힘을 가졌다. 솔직하고, 정의롭고, 옳은 일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수현이라는 인물을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타인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다른 사람들과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되려면, 그들 자신이 부단히 노력하거나 누군가가 밖에서 그들의 마음을 열어 주어야만 한다. 수현은 유원의 마음을 열어 주는 존재일 뿐 아니라 유원이 높은 곳에 오르도록 도와 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마음을 걸어잠근, 높은 곳에 오르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수현과 같은 친구를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유원의 비행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Posted by 김미류
2020. 3. 29. 12:09

 

 어른들에게도 때로는 동화가 필요하다. 특히 아름다움과 행복에 대해 상상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어른들에게는 더 그렇다. 동화나 어린이책, 청소년문학을 읽는 걸 좋아해서 종종 찾아보곤 하는데, 마침 창비에서 <고양이 해결사 깜냥>의 1권 가제본 서평단을 모집한다고 하길래 신청해서 책을 받았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책인 만큼 쉽고 재미있어서 앉은자리에서 다 읽었다. <고양이 해결사 깜냥>은 아파트 경비원이 된 고양이 깜냥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깜냥의 이름은 까만 고양이라서 깜냥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일을 헤아림. 또는 헤아릴 수 있는 능력'이라는 뜻도 담고 있다. 재치 있게 잘 지은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깜냥이 아파트 단지 여기저기를 종횡무진 돌아다니며 일을 해결하는 모습들을 보다 보면 즐거움에 웃음이 나온다. 하지만 동시에 <고양이 해결사 깜냥>은 보호자 없이 늦은 시간까지 어린이들끼리만 있는 집의 모습, 택배 기사의 고된 노동, 층간소음 문제 등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짚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말 귀엽고 능청스러운 고양이 경비원이 있어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고 다녀 준다면 좋겠지만 우리 단지에는 고양이 경비원이 없으니 그저 이야기로만 보고 즐길 뿐이다. 작중에 고양이를 싫어하는 아주머니 이야기가 짧게 지나가는데, 깜냥의 엄청난(?)능력과 사랑스러움을 접하고 나면 고양이를 싫어하지 않게 될 거라고 확신한다. 깜냥이 앞으로는 어떤 직업들을 가지고 또 무슨 일을 하게 될지 기대가 된다. 더 많은 어린이들이 이 책을 읽어 봤으면 좋겠다. 

Posted by 김미류
2020. 3. 15. 23:49

 

 <부림지구 벙커X>는 지진으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다. 주인공이 살던 부림지구는 지진으로 완전히 파괴되어 사람이 살아가기 어려운 지역으로 변해 버린다. 주인공은 부림지구를 떠나지 않고 보호소를 거쳐 벙커로 향한다. 작중의 묘사를 보면 정부는 부림지구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거의 도와 주지 않는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음식이나 물을 구하기도 힘들고, 제대로 된 화장실에 갈 수도 없으며, 당연히 씻지도 못한 채로 살아간다. 주인공인 유진은 사십 대 중반의 중년 여성인데, 지진 이후 생리가 멈췄다는 말이 초반에 나온다. 극한의 상황에서 생리를 하지 않는 게 다행일 정도다. 개인적으로 예전부터 재난 영화나 포스트 아포칼립스물에서 여성들의 생리를 아예 언급하지 않는 게 별로라고 생각했다. 물론 주변 환경이나 개인의 몸 상태에 따라 생리가 멈추기도 하지만, 어떻게든 살아가는 여성들은 생리에 대해서도 신경쓰지 않을 수가 없으니까. 이 소설에서는 작중의 어떤 여성이 생리대를 가지고 있지 않아 흰 셔츠를 조각조각 잘라 썼다는 내용도 있다. 

 

 벙커는 사람들이 정말 목숨만을 부지하게 해 줄 공간일 뿐이다. 벙커 안에는 그들을 사람답게 살도록 도와 줄 만한 것들이 없다. 벙커 안의 사람들은 개중 박식하고 선한 '대장'을 필두로 밖에 나가 먹을 것을 찾아보기도 하고, 자기들끼리 필요한 물건을 교환하기도 한다. 벙커 안에는 열 명이 살고 있다는 설정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나오지만 그 중 노부부가 인상적이었다. 노부부는 지진 이전에 꽤 많은 것들을 누리면서 살았던 것 같다. 현실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자 노인은 검버섯이 핀 얼굴에 곱게 화장을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나중에 자기 집에 놀러 오면 차와 쿠키를 대접하겠다는 말을 한다. 매일마다 차려입고 벙커 문 앞까지 산책을 나가고 차를 마시고 싶다며 차를 찾는 그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이 되는 존재다. 솔직히 말하면 그 노부부에게 인간적으로 호감이 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재난 상황에서 가장 약하고 가장 먼저 외면받는 노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지진이 아니었더라면 그들은 그럭저럭 편안하게 노년을 보냈을 것이다.

 

 이 소설은 결말이 아주 명확한 편은 아니다. 결말이 흐지부지하다는 폄하의 의도가 아니라, "그래서 주인공이 마지막에 어떻게 되는데?"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어려운 소설이라는 뜻이다. 그래도 결말은 서평에 가급적이면 적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결말은 적지 않는다. 사실 결말이 그렇게 중요한 소설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주인공이 마지막에 어떻게 되는지가 아니라, 주인공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처절하게 살아가는지가 더 중요하게 느껴졌다. 작가의 글을 보면 작가는 오래 전부터 자연 재해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인간도 냉혹한 자연 세계의 일부이고 자연의 우발적인 공격에 노출되어 있는 우주의 아주 작은 물질에 불과하다는 건 분명하다.'라는 문장이 있다. 큰 자연 재해 앞에서는 모든 인간이 평등할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끔찍한 삶이 지속되는 상황에서는 더 약한 자가 더 많이 고통받는다고 생각한다. 큰 지진을 겪은 유진의 삶은 아마 지진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작가의 말처럼 나 역시 '나는 소설의 주인공들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Posted by 김미류
2020. 1. 30. 22:50

*내용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스포일러 주의*

 

 

 조선족 여성 소설가의 책을 읽어 본 것은 처음이었다. 여기에서 <천진 시절>의 작가 금희가 조선족 여성 소설가라는 사실을 굳이 언급하는 건 <천진 시절>이 조선족 여성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조선족 여성이 주인공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1998년의 중국 천진에서 살아가는 조선족 여성만이 이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어울린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야기는 소설의 주인공인 '상아'가 옛 친구였던 '정숙'의 연락을 받고, 그들이 함께였던 '천진 시절'에 대해 회상하며 전개된다. 고향을 떠나고 싶었던 상아는 애인도 아니었던 '무군'과 얼떨결에 약혼한 뒤 무작정 함께 상경하여 천진으로 향한다. 새로운 지역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상아의 세계는 점점 넓어지게 된다. 물론 상아의 세계가 넓어진다는 것이 항상 긍정적인 변화만을 가져오지는 않는다. 

 

 천진에서 지내는 동안 상아는 자신의 약혼자인 무군, 다른 조선족 노동자였던 정숙, 그의 애인인 희철과 즐겁게 어울려 지낸다. 상아가 나중에 천진에서의 매일매일을 지루하고 발전 가능성 없는 나날로 여기게 된다 한들, 분명 천진에서도 행복했던 한때가 존재했다. 하지만 상아의 세계가 넓어지면서, 상아는 성실하고 선하지만 답답하게 느껴지는 무군과의 미래를 점점 그리기 어려워한다. 무군과 함께한다는 것은 언제까지나 한 칸짜리 방에 살면서 한 달에 월급을 천 원도 못 받는 노동자로 산다는 것을 의미했다. 무군은 가구가 없으면 목재를 주워다 가구를 만들고, 방이 좁아도 사랑하는 상아를 끌어안고 살 수 있으면 그걸로 족하다고 여길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책을 읽으면서 상아가 악하다거나 속물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아마 상아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리라. 고향을 떠나고 싶었던 상아에게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심지어 약혼자인 무군조차도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해서 선택한 남자가 아니었다. 무군과 함께 천진으로 떠날 때에 와서조차 상아는 자신이 무군을 사랑한다고 확신하지 못한다. 무군이 상아를 사랑해서 자신과 함께 천진으로 떠날 상대로 '선택'한 것과는 달리. 

 

 "이런 것도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에덴에 남겨진 단 한명의 남자와 단 한명의 여자 같은 경우. 다른 선택이란 있을 수 없고 절대적 외로움과 고독 속에서 유일하게 실재를 확인할 수 있는 낯익은 상대와 함께함으로 그에게서 느끼는 안정감과 친밀감, 의지하고 싶은 감정……이런 것도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상아의 세계가 넓어지면서 두 사람의 관계에 균열이 생기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을 것이다. 상아는 '부정한 여자'인 것으로 의심되는 '미스 신'이 입고 다니는 고급 옷, 수많은 사업체를 운영하고 자가용으로 상아를 데려다 주는 남자, 화려한 백화점과 같은 것들이 존재하는 세계를 천진에서 본다. 그러나 지금의 자신은 그런 세계에 속할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무군과 약혼하여 천진으로 오는 순간부터 인생의 방향이 정해져 버렸다는 생각에 우울해하기도 한다. 결국 두 사람의 관계는 상아가 무군을 떠나며 끝을 맺는다. 상아와 무군이 곧잘 어울렸던 정숙과 희철 역시 비슷한 문제로 결국 파국을 맞는다. 수십 년이 지나 상해에서 우연히 재회하게 된 정숙과 상아는 아마 시간을 돌리더라도 그들이 똑같은 선택, 즉 희철과 무군을 떠났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역시 그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소설의 결말부에서 상아나 정숙이 많이 불행해지거나 파멸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거대한 시대에 휩쓸리며 살아온 개인들이 쓰라리지만 그립기도 한 과거를 추억할 수조차 없는 상황에 처한다는 것은 안타까우니까. 무군의 삶에 대한 언급이 상아와의 이별 이후로 끊겨 버렸다는 사실이 아쉽다는 반응도 많은 것 같은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천진 시절'은 상아의 이야기니까. 소설 속에서 한국어도 중국어도 제대로 못 하는 어딘가 모자란 사람 취급을 받고, '믿을 것이 못 된다'며 욕설을 들어도 싼 것이 조선족 여성들이었고 그 중 하나가 상아였다. 그런 상아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어서 좋았고, 상아가 불행하지 않아서 좋았다.  

Posted by 김미류
2019. 12. 11. 21:28

 어린 시절의 기억들 중에 아름답다고 할 만한 것들은 거의 없다. 나를 포함해서, 어른들은 종종 아이들이 해맑은 모습으로 즐겁게 살아간다고 믿는다. 물론 어른들에 비하면 아이들은 조금 더 해맑고 조금 더 즐거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어린이였을 때의 나는 언제나 필사적이었다. 하다못해 이사한 동네에 놀이터가 없어 옆 동네로 놀이터를 찾아 떠날 때조차 그랬다. 아이들에게도 아이들의 싸움이 있다. 스스로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바람에 그 사실을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것 같다. 이 책, <수영장의 냄새>는 내가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떠올리게 했다. 기억들 속에 녹아 있던 감정, 감촉이나 냄새까지도 아주 생생하도록. 

 

 주인공인 민선은 다행히 아주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는 것도 아니고, 아주 가난하지도 않다. 민선의 이야기에서 민선에게 폭행을 가하는 어른도 등장하지 않는다. (나는 어린아이가 어른에게 맞는 것을 현실과 창작물을 통틀어 별로 보고 싶지 않기 때문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민선의 삶 역시 필사적이다. 인기 있고 예쁜 희영의 눈에 들어야 하고, 하고 싶지 않은 수영을 해야 하고, 어쩌다 저지른 잘못을 숨겨야만 한다. 어른들은 쉽게 아이들을 바보 같다거나 단순하다고 생각하곤 한다. 인기 있고 예쁜, 그래서 힘이 있는 친구의 눈에 들어야만 학교 생활을 할 수 있나? 수영이 하기 싫으면 엄마한테 하기 싫다고 똑 부러지게 말하면 안 되나? 자기가 저지른 잘못을 솔직히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면 될 것을,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들어야만 하나? 그렇게 말해 버리곤 한다. 하지만 원래 사람은 남의 일에 대해서 쉽게 생각하고 쉽게 말하게 되는 법이다. 특히 상대방이 자신보다 어리고 약한 아이라면 더 그렇다. 

 

 어린 시절, 나는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희영 비슷한 존재도 되어 보고 민선도 되어 보았던 것 같다. 어느 날은 우리 집에 놀러 오고 싶어하는 친구들이 너무 많아서 그 친구들을 전부 다 데려왔더니, 안 그래도 한없이 좁은 우리 집이 꽉 차는 바람에 엄마가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반면, 인기 있고 반의 중심 인물이었던 친구의 생일 파티에 갔다가, 좋은 생일 선물을 준비하지 못해서 손가락질을 받은 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히 그 모든 일들은 아무 것도 아니다. 집이 좁아서 친구들과 놀 수 없으면 바깥으로 나가면 된다. 친구에게 비싼 선물을 사 주지 못해도 그게 나의 형편이라고 받아들이면 된다. 하지만 그 때 그럴 수 있었을 리가 없다. 지금의 내가 그 일들이 아무 것도 아니었다고 넘길 수 있는 건, 과거의 내가 그 일들을 직접 몸으로 겪어 보냈기 때문이다. 늘 지나간 일보다는 내가 당장 맞닥뜨려야 하는 일이 더 크게 느껴지니까. 

 

 

 인상적인 장면이 아주 많았지만, 모든 장면을 공유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가장 강렬했던 장면을 첨부해 본다. 누군가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익사할 수도 있다는 말이 쿵, 하고 다가왔다. 내게는 너무나 얕아 보이는 물에서도 누군가가 잠겨 죽을 수 있다. 나는 쉽게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일 때문에 누군가는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 특히 약한 사람들이 더 그렇다. 어리고 약하거나,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렵거나,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이 내가 볼 수 없는 곳에서 죽어 갈지도 모르는 일이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아이들에게도 아이들의 싸움이 있다. 그 싸움을 무시하지 않는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얕은 물 아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어른이 되고 싶다고. 

 

 책에는 수영장 이야기만 나오는 게 아니지만, <수영장의 냄새>라는 제목은 이 책에 아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영 강습을 받아 본 적은 없지만, 어렸을 때는 종종 수영장에 가곤 했다. 책을 읽는 내내 수영장의 소독약 냄새가 나는 기분이 들었다. 그 소독약 냄새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고는 하는데, 나는 그 냄새가 별로 좋지 않았고 물도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수영장에 간 건 오로지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서였다. 그 친구들 중에서는 희영처럼 예쁘거나 잘 생기고, 부모님이 학교에 자주 오고, 공부를 잘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언젠가부터는 입던 수영복이 작아져 더 이상 수영장에 가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아마 새 수영복을 살 여유는 없었으리라. 그래도 나는 어떻게든 잘 자라서 어린 시절에 수영을 배우지 못한 것도, 수영장에 많이 가지 못한 것도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어른이 되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네가 겪는 일이 별 거 아니라고 말하지 않는 어른이 되고 싶다. <수영장의 냄새>는 내 어린 시절에 대해서 돌아보게 만들어 주기도 했지만, 내가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 주기도 하는 책이었다. 

Posted by 김미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