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5. 1. 23:02

 

 <초가속 : 파괴적 승자들>은 '속도의 경제'라는 개념을 다루는 디지털 경제학 서적이다. 가장 빠른 속도로 아이디어를 선점하여 새로운 변화를 이끄는 이가 승자가 되는 시대가 왔다. 초가속이란 빠르게 속도를 올려서, 뒤처지지 않도록 계속해서 변화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저자는 그러한 시대의 승자들을 파괴자라고 부르는데, 기존의 루틴을 파괴하여 변화를 선도한다는 의미로 그런 호칭을 쓰는 것으로 보인다. 이 책에서는 그러한 파괴자들이 누구고, 또 어떤 식으로 기존의 업계를 파괴하며 새로운 트렌드를 이끌었는지, 디지털 경제를 이끄는 6가지 파괴적 물결은 각각 무엇인지, 그리고 이러한 시대에 개인과 기업이 어떻게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테슬라, 아마존, 스타벅스, 나이키 등과 같이 많은 사람들이 잘 아는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 설명하고 있어 읽기 그리 부담스럽지는 않은 편이다.

 

 요즘은 OTT 서비스의 시대다. 애플이나 디즈니까지 여기에 뛰어들면서 이제 도대체 몇 가지를 구독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투정을 부리는 사람들도 많다. 당연한 일이다. 내가 당장 떠올릴 수 있는 서비스만 해도 몇 가지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넷플릭스가 OTT 서비스의 선두주자라는 걸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넷플릭스의 등장은 정말 충격적이었는데, 내가 보고 싶은 컨텐츠를 하나하나 찾아다니지 않고 한 군데에서 모아서 볼 수 있다니. 결제도 하나하나 할 필요 없이 구독만 걸어 두면 매달 자동으로 돈이 빠져나간다. 솔직히 말하자면 넷플릭스에서 보고 싶은 컨텐츠를 한 군데서 볼 수 있다는 장점은 많이 퇴색된 상태라고 생각한다. 이런저런 플랫폼에서 추가적으로 OTT 서비스를 시작하기도 했고, 그로 인해 넷플릭스에서 빠져 버린 컨텐츠가 상당히 많으니까. 하지만 넷플릭스는 오리지널 컨텐츠를 제작함으로써 단지 OTT 플랫폼에 머물러 있지 않기를 선택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한국 드라마인 <오징어 게임> 역시 넷플릭스가 투자해 제작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컨텐츠다.

 

 책에 소개된 예시 중에 신기했던 걸 하나만 꼽자면 역시 바이두의 안면인식 기술이라고 하겠다. 바이두의 안면인식 기술은 ATM에서 얼굴 인식으로 현금을 출력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그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을까 싶어 걱정스럽지만 그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으니까 상용화가 되었겠지 생각이 든다. 최근에는 고객이 패스트푸드점 문 안으로 들어서면 고객의 외모, 인상착의를 통해 나이와 성별을 추론해서 메뉴를 추천하는 서비스도 도입되었다고 한다. 두 번 이상 방문한 고객의 얼굴은 키오스크가 기억하도록 되어 있어서, 이전에 주문했던 음식이나 좋아할 것 같은 메뉴를 추천해 준다고 한다. 정말 신기하긴 한데 왠지 좀 무섭기도 하다. 내가 언제 KFC를 방문했는지 기계가 다 알고 있다니. SF 소설에서나 읽었던 일들이 현실에서도 가능해졌다는 느낌이 든다. 

 

 저자는 디지털 경제를 이끄는 6가지 파괴적 물결을 각각 비대면화, 탈경계화, 초맞춤화, 서비스화, 실시간화, 초실감화라고 소개한다. 보기만 해도 어떤 개념인지 대강 이해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고, 책으로 직접 읽어 보는 게 더 좋으니 구체적인 설명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초실감화 파트에 읽으면서 흥미로웠던 부분이 하나 있었다. 일본에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마치 오프라인처럼 안경을 써 볼 수 있는 서비스가 있다고 한다. 얼굴형이나 헤어스타일에 맞춰 어울리는 안경테를 소개해 주기 때문에 실제로 가게에 방문하지 않아도 비교적 편하게 안경을 구입할 수 있는 모양이다. 국내에도 비슷한 서비스가 도입되었으면 좋겠다! 이미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밖에도 온라인 여행과 같은 서비스도 소개되어 있었는데, 솔직히 온라인으로 이용하면 좋은 서비스들이 참 많지만 여행은 그냥 직접 가는 쪽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초가속의 시대에서는 모든 정보와 데이터들이 넘쳐나고, 그렇기 때문에 그 중에 나에게 필요하고 유효한 정보가 무엇인지 찾는 게 중요하다. 이렇게 모든 게 빠르게 흘러가는 시대에는 자신에게 필요한 데이터를 찾고, 그 데이터의 맥락을 이해하여 활용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또 저자는 협업 능력을 강조하는데,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기술, 로봇, 사물 등 함께 일하는 업무 환경에서 상호작용하는 모든 대상과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 새삼 의사 소통의 중요성이 더 강해지는 시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통의 대상이 인간으로 한정되지 않을 뿐이다. <초가속 : 파괴적 승자들>은 디지털 경제에 대해 비교적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Posted by 김미류
2020. 12. 12. 12:16

 

 <정의란 무엇인가>로 전 세계를 휩쓸었던 마이클 샌델의 신간이다. 이번 책 <공정하다는 착각> 역시 정의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대부분은 능력주의 신화에 사로잡혀 있다. 능력주의 신화란, '하면 된다'라는 말로 요약된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이 사회는 나의 능력에 맞는 대우를 해 줄 것이며, 내가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노력하기만 한다면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겠다. 능력주의란 자수성가 신화나 아메리칸 드림과도 연결되는 개념이다. 얼핏 듣기에 능력 있는 자라면 그 출신 성분에 관계없이 사회의 가장 높은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말은 굉장히 매력적이다. 특히나 인종, 성별, 사회적 계급, 장애, 성적 지향 및 성 정체성과 같은 수많은 요소들이 개인을 차별하는 근거가 되는 요즘 사회에서는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샌델은 이 책에서 바로 그 능력주의 신화를 낱낱이 비판한다. 처음에는 책이 많이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생각한 것보다 쉽게 읽혀서 신기했다. 

 

 능력주의에 대한 샌델의 비판은 간략하게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먼저 현대 사회에서 능력주의는 결코 공정하게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샌델은 주로 미국의 예시를 근거들로 이 주장을 뒷받침한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한국 사회 역시 미국에 비해 딱히 공정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가장 먼저 나오는 이야기이자 책에서 중점적으로 다뤄지는 이야기는 미국의 대학 입시에 관한 내용이다. 저자는 먼저 거액의 기부금을 대가로 명문 대학에 입학하는 이들을 언급한다. 또 미국 전역을 뒤흔든 입시 부정 스캔들에 관해서도 이야기한다. 거기에도 물론 적지 않은 돈이 든다. 부자 부모들은 자녀를 명문대에 입학시키기 위해 어마어마한 금액을 쓴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법적으로 및 도덕적으로 아무런 문제 없이 정정당당하게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 역시 경제적 불평등 구조 위에 서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이해하기 아주 간단한 문제다. 명문대에 들어갈 만한 입시 스펙을 만들고, 입학 시험을 위한 '족집게 과외'를 받는 데는 돈이 필요하다. 명문대의 등록금을 낼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 학생들은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우수하지 않으면 대학에 다니기 어렵다. 샌델이 언급한 바에 따르면 '아이비리그 대학생 삼분의 이 이상이 소득 상위 20퍼센트 이상 가정의 출신임은 놀랄 일이 아니다. 프린스턴과 예일에는 미국의 소득 하위 60퍼센트 출신 학생보다 상위 1퍼센트 출신 학생이 더 많다.' 누구도 이런 상황을 두고 능력 있는 학생이라면 사회적 계급에 관계없이 명문대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의 상황 역시 비슷하다. 즉 능력주의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능력주의가 완벽하게 작동한다 하더라도 그 상황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실 샌델이 정말 지적하고자 하는 부분은 이 점이다. 능력주의 신화에는 분명한 허점이 있다. 능력주의는 각각의 개인이 갖는 능력에 따라 그 개인들을 차별하는 것을 당연스럽게 정당화한다. 개인의 능력을 완벽하게 계량화하는 게 가능하고, 그로 인해 누구나 스스로의 능력과 노력만으로 충분히 높은 곳에 올라갈 수 있는 사회라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그렇게 능력주의가 완벽하게 작동하는 사회에서조차 높은 곳으로 올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상대적으로 능력이 부족한, 혹은 노력을 덜 하는 사람들은 가치가 없는 존재라고 말해도 좋은 걸까? 고등 교육을 받아 변호사가 된 사람과 상대적으로 낮은 학력을 가지고 그 변호사가 일하는 빌딩을 청소하는 사람을 노골적으로 차별하는 사회가 과연 옳은 사회인가? 물론, 능력 있는 사람이 그 자신의 출신 성분이나 성별, 장애 등의 요소로 성공할 수 없는 사회는 불합리하다. 하지만 능력 있는 사람들이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갈 가능성만을 보장하는 사회 역시 충분히 정의롭지 않다. 능력주의가 보장하는 건 능력 있는 누군가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올라갈 가능성이지, 필연적으로 낮은 곳에 위치할 이들의 인생이 아니다.

 

 샌델은 능력주의가 현대 사회에 가져온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간다. 대표적으로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을 꼽는다. 트럼프의 당선 요인에는 물론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샌델은 그 중에서도 엘리트주의의 심화, 그리고 능력주의가 팽배한 사회에서 자기효능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의 좌절과 그들이 품는 사회에 대한 분노를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는 미국의 전임 대통령이었던 오바마의 화법, 그리고 힐러리와 트럼프의 화법과 그들의 지지층에 대해서 분석하고 있는데, 잘 알지 못했던 부분이라 상당히 흥미로웠다. 그 밖에도 능력주의의 맹점을 하이에크의 자유시장 자유주의, 롤스의 복지국가 자유주의 이론과 엮어 설명하는 부분이 있다. 전문적인 내용임에도 이해하기 쉬운 설명이라서 읽으면서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책을 읽다 보면 그래서 이 능력주의를 어떻게 타파하면 좋은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샌델은 공동체 의식, 그리고 '일의 존엄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의 7장 마지막 문단 일부를 인용하고자 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능력주의적 인재 선별은 우리 성공은 오로지 우리가 이룬 것이라고 가르쳤고,그만큼 우리는 서로에게 빚지고 있다는 느낌을 잃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그런 유대관계의 상실로 빚어진 분노의 회오리 속에 있다. 일의 존엄성을 회복함으로써 우리는 능력의 시대가 풀어버린 사회적 연대의 끈을 다시 매도록 해야 한다."

 

 '사회적 연대의 끈'이라니 참 좋은 말이다. 2020년 말에 이 책을 읽게 된 게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요즘 친구들이나 지인들에게도 닥치는 대로 추천하고 있는데, 부족한 서평이나마 한 명이라도 더 <공정하다는 착각>을 읽는 데 기여하게 된다면 좋겠다. 2020년은 특히나 더 사회적 연대의 끈이 간절한 해였다. 더 많은 이들이 시민 사회를 살아가는 일원으로서 다른 이들과 연결된다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 보면 좋겠다.

Posted by 김미류
2020. 6. 1. 18:46

 

 거의 모든 사람들은 늙고 싶지 않아 한다. 분명 사람들 사이에서는 젊음을 숭상하는 분위기가 있다. 젊음은 무한한 가능성과 활력을 동반하는 것처럼 여겨지고, 늙는다는 건 그 가능성들을 조금씩 잃어버리며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것인 양 치부된다. <석세스 에이징>은 일반적인 사람들이 노화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들을 깨고, 나이들어 가는 몸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방법들을 알려 준다. 표지에 쓰여 있듯 이 책은 노화를 신경과학, 심리학, 그리고 뇌과학의 관점에서 집대성한 책이다. 아주 쉬운 책은 아니지만 읽다 보면 흥미로운 내용이 많아서 몰입하게 된다. 어려운 내용들 속에서도 재미있고 인상적인 이야기가 꽤 많다. 예를 들어 1부의 초반부에서는 사람의 성격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다. 책에 따르면 성격의 5대 요인은 외향성, 우호성, 성실성, 정서적 안정성 대 신경증, 경험에 대한 개방성 + 지적 능력이라고 한다. 성격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는, 한 사람이 어떤 노년기를 보내느냐가 그 사람의 성격의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이다. 경험에 대한 개방성, 그리고 지적 능력이나 호기심이란 그 사람이 새로운 것에 얼마나 열려 있는지를 말한다. 새로운 활동을 시작하거나 이전부터 하던 창조적인 활동을 계속함으로써, 정체되지 않고 활력 있게 살아가는 것은 장수의 요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개방적인 사람은 대체 의학이나 사이비 의학에도 개방적인 태도를 보임으로써 병을 치료하지 못한 채 죽을 수도 있다. 이런 내용들이 아주 흥미로웠다. 1부는 전체적으로 우리의 뇌와 노화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기억이란 무엇인지, 지능이란 무엇이며 정말 나이가 들면 지적 능력이 퇴화하는지, 행복과 같은 개인적 정서와 사회적 요인이 노화에 끼치는 영향은 무엇인지 등 재미있는 주제들로 구성되어 있다.

 

 2부에서는 쉽게 말하자면 건강하게 늙는 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주 간단하게는 우리가 모두 다 알 만한 말들로 요약할 수도 있다. 생체 리듬, 식습관, 운동하는 습관과 수면이 노년의 건강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생체 리듬에 관한 내용이 조금 생소하게 받아들여졌다. 사람마다 고유한 생체 리듬을 가지고 있으리라는 사실은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어떤 사람은 소위 말하는 아침형 인간이고, 어떤 사람은 저녁형 인간이다. 그 리듬에 맞춰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게 우리의 신체에 아주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현실적으로 우리는 출근이나 등교, 다른 많은 일들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자신의 신체가 추구하는 고유의 리듬을 찾아 생활하는 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생체 리듬을 찾아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의 2부에 그 방법이 실려 있으니 실험 삼아 실행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식습관이나 수면, 운동과 관련된 많은 조언들은 언제나 내 한쪽 귀로 들어와서 반대쪽 귀로 빠져나가곤 한다. 그러나 운동과 관련된 내용에서는 아주 기쁜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정말 아주 작은 움직임이라도 뇌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의자에 앉아서 오랫동안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물론 주기적으로 피트니스 클럽에 다니거나 트레이너와 운동하는 게 좋겠지만) 한 번씩 의자에서 일어나 방을 걸어다니는 것만으로도 아예 움직이지 않는 것에 비하면 괄목할 만한 변화를 가져온다고 한다. 실제로 이 책에는 활기찬 노년을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이 예시로 소개되어 있는데, 그들은 대부분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수면과 관련한 내용들을 읽으면서는 그리 기분이 좋지 않았다. 불면증이나 수면 부족이 알츠하이머 발병의 원인이 된다는 내용을 읽었기 때문이다. 달라이 라마는 매일 하루에 9시간씩 잠을 자는 걸 건강의 비결로 꼽았다고 한다. 현대의 한국인들이 하루에 9시간씩 자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저자는 숙면을 취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요법이나 약 등을 소개하기도 한다. 

 

 3부는 인간의 수명에 대해, 그리고 노화를 받아들이고 죽음을 준비하는 방법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간의 정해진 수명이 어느 정도인지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어떤 과학자들은 인간의 수명이 무한할 수도 있다는 가설을 세웠다고 한다. 인간이 굳이 무한히 살 필요가 있을까 싶기는 하지만, 수명에 관련된 연구가 재미있는 이야깃거리인 건 확실하다. 책을 읽다 보면 늙음에 대한 몇 가지 편견을 깰 수 있다. 다른 사람들과 긍정적인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늙는다는 것과 같은 당연한 사실들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사람들이 늙어서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늙어서 잘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두께가 두껍고 어려운 것처럼 보이는 책이지만 생각보다 재미있다. 특히, 늙는 것에 대한 공포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아주 인상 깊게 읽을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Posted by 김미류
2020. 3. 13. 20:02

 

 플랫폼이란 말은 당연하게 사용되지만 플랫폼이라는 말이 시장에서 정확히 어떤 걸 의미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이 책을 읽고 나서야 플랫폼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다. 비즈니스 모델로서의 플랫폼이란 장과 같은 역할을 한다. 광장이나 시장을 생각하면 된다. 여러 공급자와 소비자들을 아우를 수 있는 장이 플랫폼이다. 책에서는 에어비앤비를 예시로 들고 있는데, 에어비앤비는 자신의 방을 내놓는 공급자와 마음에 드는 방을 찾아 다니는 소비자를 수용하는 광장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특히 이 책이 중점적으로 다루는 건 중국 플랫폼이다. 사업 모델로서 플랫폼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면, 중국 플랫폼들은 한국이나 미국의 플랫폼들과 다소 다른 양상을 띤다. 당연하게도 중국이 갖는 특수성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시장 경제에 매우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강한 규제를 가하는 편이다. 중국 플랫폼에 대해 이해하려면 당연히 중국에서 정부와 기업이 어떤 권력구조에 놓여 있는지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이 책은 중국 플랫폼들에 대해 소개하고, 그 플랫폼들이 어떻게 발전하였거나 정체하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기초적인 지식 없이 한 번에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쉬운 책은 아니지만 천천히 읽으면 크게 어렵지는 않다.

 

 알리바바, 바이두, 텐센트 등의 기업들은 외국인들에게도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 중에서 텐센트에 대해 소개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나도 텐센트가 가지고 있는 위챗이라는 메신저를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챗은 한국의 카카오톡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지금까지 만나 본 중국인들은 보통 연락처를 교환할 때 위챗 QR코드를 스캔하는 방식을 이용했다. 얼마 전에 중국 친구에게 어떤 게임의 중국 서버에 관련된 질문을 한 적이 있는데, 친구가 한자로 된 검색어를 알려 주고는 위챗 검색창에 그 검색어를 입력하면 내가 원하는 결과물을 볼 수 있다고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위챗으로 게임과 관련된 검색 결과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다시 생각해 보니 그 게임은 텐센트사 게임이긴 하다) 텐센트는 처음에 QQ라는 메신저를 통해 아주 폐쇄적인 서비스 제공을 했다. 책에 따르면 폐쇄적이라는 건 '모든 서비스를 QQ 운영자가 직접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텐센트는 사람들이 QQ를 통해 뉴스를 보고 음악을 듣고 게임을 할 수 있도록 했다. QQ는 중국 내에서 8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메신저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텐센트가 서비스를 개방하기 시작한 건 위챗의 탄생과 함께 이루어진 일이다. 텐센트가 철저하고 치밀한 모방 표절로 성장한 그룹이며, 중국의 다른 기업들과 다르게 초기부터 꾸준하게 수익을 내며 성장해 왔다는 부분을 읽을 때는 기분이 조금 복잡했다.

 

 텐센트 외에도 책에서는 중국 내 인터넷 상거래의 최강자인 알리바바, 중국의 구글이라고 불리는 바이두, 우버와 비슷한 차량 공유 플랫폼인 디디추싱, 음식 배달 플랫폼 메이투안, 그 외 다양한 플랫폼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알리바바의 타오바오는 외국인들도 많이 이용하고 있지만, 중국 플랫폼들은 대체로 중국 내부에서 강세를 보인다는 공통점이 있다. 중국 플랫폼의 한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그 이유로 중국 정부의 정책을 든다. 중국 기업들은 정부의 정책 방향이나 규제에 매우 크게 흔들린다는 것이다. 실제로 위에 언급된 텐센트도 2019년 수많은 중국인들이 텐센트의 게임에 빠져 있다는 이유로 정부의 철퇴를 맞은 적이 있다. 중국은 법이나 규정을 잘 지키지 않는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와 관련된 비판을 하기도 한다. 실제로 책에서 언급된 디디추싱의 사례가 있긴 하다. 차량 공유 플랫폼인 디디추싱 기사들에 대한 자격 검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남성 기사가 여성 승객을 강간하고 살해한 사건이 2018년에만 두 건이나 벌어진 것이다. 물론 서비스 공급자들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시장의 확장을 저해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서비스는 소비자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중국 플랫폼들이 눈부시게 성장하고 있는 건 분명 사실이지만, 중국 플랫폼을 둘러싼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쉽지 않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경영 분야의 책을 읽는 건 오랜만이라 재미있기도 하고 어렵기도 했다. 중국에 몇 번 방문했을 때나 중국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느낀 점들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어서 신기했다. 확실한 건 중국에서는 다양한 플랫폼들이 성립되어 성공하고 있으며, 사람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IT 산업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만한 책이다. 저자의 다른 저서로 <플랫폼의 생각법>이라는 책이 있다고 하는데, 그 책을 읽으면 플랫폼 산업 전반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Posted by 김미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