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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2.04.29 [서평] 마일로, <크레이지 가드너 2>
  2. 2022.01.09 [서평] 마일로, <크레이지 가드너> 3
2022. 4. 29. 23:04

 

 모든 취미에는 권태기가 오기 마련이다. 하루하루 즐겁고 재미있던 일들도 어느 날 문득 귀찮고 지겨워진다. 그 시기를 잘 극복하면 그 취미는 계속되는 거고, 그 시기를 극복하지 못하면 취미를 접게 된다. 문제는 그 취미가 동물이나 식물처럼 살아 있는 생명과 관련되어 있을 경우에는 질린다고 던져 버릴 수 없다는 것이다. 물고기 돌보는 게 예전처럼 즐겁지 않고 물고기 밥을 안 주고 물을 안 갈아 주면 안 되니까. 내가 마음 같아서는 식물을 마구 들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순간 충동에 휩쓸려서 마구 일을 벌였다가 나중에 책임지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가드너들은 식물 돌보는 취미에 오는 권태기를 '식태기'라고 부른다고 한다. 식덕질에 푹 빠져 식물 만화를 그리고 2권까지 출판을 하게 된 마일로 작가조차 식태기를 피해 갈 수는 없는 모양이다. 다른 취미와 비슷하게 식태기가 오는 건 보통 가드닝이 잘 풀리지 않을 때다. 

 

 중요한 건 식태기가 아니라, 어떨 때 가드닝이 잘 풀리지 않는가이다. 식물에 벌레가 꼬이거나, 겨울에 너무 춥거나 여름에 장마가 지속되면서 식물들의 상태가 좋지 않아지거나, 식물들이 곰팡이병 등 병에 걸리면 가드닝이 힘들어진다. 한국은 계절별로 기온이나 습도 편차가 커서 식물들도 당연히 계절을 타게 된다고 한다. 물론 갖가지 장비들로 환경을 맞춰 줄 수는 있지만, 그게 어려운 상황이라면 상대적으로 적응력이 뛰어나고 강인한 식물을 골라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초보자가 기르기 쉬운 강인한 식물은 뭘까? 정보 자체는 굉장히 많다. 포털 사이트에 초보자가 기르기 쉬운 식물이라고 검색하면 온갖 식물이 다 나온다. 나도 몇 번 시도해 봤다가 적지 않은 식물을 죽였다. 또, 어디에는 기르기 쉽다고 나와 있는 식물이 또 다른 글을 보면 초보자에게 까다로운 식물이라고 언급되어 있는 경우도 많다. 도대체 뭘 믿어야 할까? 정말 기르기 쉬운 식물은 없을까? 식물을 기르고 싶은 초보자라면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할 거라 믿는다. 그래서 이 책에서도 추천하는 '기르기 쉬운 식물' 에 대해 나도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그 식물은 바로 스킨답서스다. 스킨답서스는 내가 가장 오래 기른 식물이었다. 처음에는 어항에 넣을 용도로 하나를 샀는데, 점점 커지고 증식해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란 적이 있었다. 문제는 커지고 나니까 오히려 관리하기가 더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보통 식물이 대품이 되면 관리하기가 쉬워진다는데, 나는 아무런 지식과 경험이 쌓이지 않은 채로 스킨답서스가 혼자 무럭무럭 자라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된 처지였다. 하여튼 스킨답서스는 정말 잘 자란다. 볕이 잘 들지 않아도 잘 자라고, 물에 꽂으면 말도 안 되게 잘 자라고, 비료를 안 줬는데도 잘 자란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난이도가 낮은 식물을 기름으로써 식물 기르는 일에 재미를 붙이고 싶은 사람에게는 스킨답서스를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2권에서는 흙을 직접 만드는 법, 비료의 종류와 장단점, 물 주는 법, 분갈이 할 때의 구체적인 팁 등 식물을 제대로 기르고 싶은데 아직 아는 게 별로 없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유용한 정보가 많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비료라고 하면 별로 좋지 않은 인상을 받고는 했는데, 식물을 잘 기르는 데는 비료가 가장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비료를 잘 주면 식물이 거의 사람이 약물로 도핑하듯 성장한다는 모양이다. 그리고 식물들은 빗물을 좋아한다고 한다. 이 사실도 꽤 놀라웠는데 나한테 비는 산성비, 화학물질 같은 이미지였기 때문이다. 세상에 불확실한 인상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는 일이 참 많다. 식물을 들이면 비료를 사고 빗물을 받아서 줘야지.

 

 <크레이지 가드너> 1권에서 게발선인장 이야기가 나와서 나도 게발선인장을 기르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는데, 지나가듯 이야기를 했더니 누가 새끼 게발선인장을 나눠 주겠다고 해서 올해도 결국 다시 화분을 들일 것 같다. 작년에 죽인 오렌지자스민에게 문득 미안해진다. 이번에는 제발 잘 기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크레이지 가드너> 2권을 보면서 배를 잡고 웃은 장면이 몇 장면 있는데, 여기 찍어 올리기에는 너무 아까워서 이 책을 읽을 사람이 나중에 느낄 즐거움으로 아껴 둔다. 

 

 

 

Posted by 김미류
2022. 1. 9. 02:55

 

 나는 작년에 오렌지자스민 하나를 죽였다. 식물을 잘 길러봐야지 하고 선물받아서 집에 온 지 며칠만에 꽃까지 피웠는데, 갑자기 언제부터인가 시들시들해지기 시작했다. 이게 물을 못 먹어서 이런 건지 물을 너무 많이 먹어서 과습으로 이런 건지 도저히 알 방법이 없었다. 이럴 때는 도박을 하는 마음으로 물을 잔뜩 주든지 아니면 물을 주지 않고 놔둬야 하는데, 보통 나 같은 원예 초보자들은 전자를 택한다. 그리고 망한다. 하여튼 오렌지자스민이 죽은 뒤에 죄책감을 느껴서 당분간은 식물을 기르지 않기로 했다.

 

 <크레이지 가드너>는 <극한견주>로 잘 알려진 마일로 작가의 최신작이다. 특유의 유머감각을 곁들이면서도 원예 초보자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조언들이 꽤 구체적으로 실려 있다. 특히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벌레들이 귀엽게 그려져 있다는 점이었다. 진딧물, 응애, 뿌리파리를 그렸는데 현실적으로 그렸다면 거기서 책을 덮었을지도 모르겠다. 마일로 작가 특유의 그림체로 귀엽게 그려져 있어서 거부감이 없었다. 내가 소소하게 식물을 키울 때도 도저히 뿌리파리를 감당할 수가 없어서 식물 갯수를 늘리지 않았었는데, 책을 읽어보니 뿌리파리를 잡기 위해서는 농약을 써야 한다고 한다. 파리 자체는 살충제만 뿌려도 죽지만 파리 애벌레가 식물의 뿌리를 갉아먹는다는 모양이다. 화분 몇 개를 건사하기 위해 농약까지 쳐야 하다니... 하지만 벌레들과 같이 살 자신도 없을뿐더러 뿌리파리가 있으면 식물을 제대로 기를 수가 없다. 식물이 많은 사람들은 해충별로 잘 듣는 살충제와 농약을 구비해 두고 쓰는 것 같았다. 

 

 

 취미로 화분 몇 개 정도 길러본 입장에서 처음 듣는 이야기들이 많아서 신기했다. 같은 식물들도 잎에 흰색이 섞여 있는지 아닌지 여부에 따라 가격과 생육 난이도가 다르다고 한다. 그리고 식물에도 '신상'과 같은 유행이 있고, 수입되는 식물들은 통관 여부에 따라 가격이 오르거나 내리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식물로 재테크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는데, 확실히 플랜테리어가 트렌드긴 하구나 싶었다. 기르기 쉬운 식물들, 특이하게 생긴 식물들, 유행하는 식물들에 대해 재미있게 소개하고 있다. 개그만화처럼 보이지만 작가의 특성상 식물들의 특징을 매우 잘 잡아서 그리기 때문에 그림만 봐도 식물의 실물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예전에 기르던 다육 몇 개는 그래도 몇 년 동안 잘 살아 있었지만 결국 지금까지 살아남지는 못했다. 작년에 오렌지자스민을 죽인 뒤로는 왠지 죄책감도 들고 자신이 없어서 새로운 식물을 집에 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재미있게 만화를 보다 보니 다시 식물을 길러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작가가 게발선인장을 키우고 싶은데 조금 촌스러운 이미지인가 고민하는 부분에서 공감이 갔다. 어렸을 때 할머니 집에 가면 커다란 게발선인장이 여러 개 있었는데, 선명한 색의 꽃을 피우던 게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그래서 크고 나서 나도 게발선인장을 길러볼까 잠시 고민하다가 요즘에는 기르는 사람이 적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물론 작가의 결론은 본인이 기르고 싶으니 기르겠다는 거였다. 매우 기르기 쉬운 식물이니 식물을 많이 길러 본 적이 없는 초보자들에게 추천한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기르기 쉽다는 식물도 죽이는 나에게는 역시 마리모가 딱이라는 생각에 지금은 마리모만 기르고 있다. 이 책에도 마리모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하나 실려 있는데, 작가가 과거에 실수로 마리모를 찢어 죽였다는 이야기다. 가짜 마리모가 워낙 많기도 하고 한 달이 넘게 물을 갈아 주지 않았는데도 마리모가 너무 멀쩡해 보여서 반으로 찢어 살펴보다가 쓰레기통에 버렸는데, 다음 날 일어나 보니 마리모가 갈색으로 변해 죽어 있었다고 한다(책에도 언급되지만 사실 찢겨 죽은 건 아니고 말라 죽은 거다). 사실은 나도 내가 기르는 마리모가 가짜가 아닌지 3년 동안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혹시 진짜면 미안하니까 찢어 죽이지는 말고 물을 열심히 갈아줘야겠다.

 

 결국 책을 읽다가 게발선인장이며 리톱스, 칼큘러스 등등 온갖 식물 이름을 인터넷에 검색해서 한참 동안 사진을 봤다. 사진을 보고 있으면 기르고 싶기도 하고, 막상 기르려고 집에 들이면 분갈이며 물주기며 벌레며 머리가 아프기도 하고 그렇다. 겨울이 지나면 새로운 식물을 집에 들이는 걸 진지하게 고려해야겠다. <크레이지 가드너>는 이제 1권이 출간되었는데, 뒷 내용과 이런저런 다른 내용들이 궁금해져서 웹 연재분을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식물 기르는 취미를 갖고 있거나, 갖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다. 공감이 가는 부분도 많고 워낙 재미있게 그려져 있어 읽다 보면 웃을 수밖에 없는 책이다.

 

 

Posted by 김미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