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8. 25. 19:13

 

 '남들이 뭘 몰라서 저러는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결단코 단 한 번도 없는가?' 이 책의 표지에 쓰여 있는 문장이다. 양심적으로 고백하자면 당연하게도 한 번도 없지 않다. 나와 다른 의견을 갖고 있는 사람을 보고 그가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거라고 생각한 적도 많다. 물론 나만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가진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드물지 않을까? <내 안의 차별주의자>라는 제목은 그런 의미에서 참 적절하다. 차별주의적인 면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나를 포함해 거의 모든 사람들은(이하는 편의상 '사람들'이라고 줄여 쓴다) 자신과 다른 존재들과 자신 사이에 선을 긋는다. 나와 성별이 다른 사람,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적은 사람, 나와 사회적 계급이 다른 사람, 나와 다른 종교를 믿거나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을 그 선 바깥으로 밀어낸다. 그 바깥에 있는 이들을 적극적으로 배척하거나 박해하지 않는다고 해도, 선을 긋는다는 행위 자체가 그런 차별의 시작이 될 수 있다. <내 안의 차별주의자>는 사람들이 어떻게 내 편과 네 편을 나누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책의 목차를 훑어보면 일, 성, 이주, 빈부 격차, 범죄, 소비, 관심, 정치라는 키워드로 내용이 분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일' 파트는 노동에 대한 내용이다. 저자는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말, 열정을 가지라는 말이 보여주지 않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많은 이들의 멘토가 되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이들은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건 그들이 좋아하는 일을 해서 성공을 거뒀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려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의 열정을 착취당한다. '열정 페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또, 육체적 노동과 정신적 노동이 분리되면서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종류의 노동을 하는 이들을 타자화하게 되었다. '성' 파트에서는 말 그대로 성차별에 대해 다룬다. 이 책은 노동 시장과 가족 관계 안에서의 성차별부터 시작해서, 남성과 여성이 차지하는 공간의 차이, 여성의 목소리 높낮이가 변화한다는 사실, 피임과 성행위에서의 불평등에 대해서도 짚는다. 사회가 남성에게 남성다움을 강요함으로써 남성과 여성 모두를 좋지 않은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다는 중요한 사실에 대해서도 빠뜨리지 않는다. 다른 주제들에 관해서도 '소속 범주로서의 '우리'가 노동, 성별, 이민, 빈곤, 재산, 범죄, 소비, 관심, 정치의 영역에서 어떤 구조를 띠는지, 또 그 안에서 '남들'을 바라보는 독선적 시선이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살핀다'(서문,14p).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게 읽은 건 '소비'파트였다. 모든 사람들은 무언가를 소비하며 살아간다. 내가 소비하는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낸다. 하다못해 그냥 닭고기를 먹을지, 동물복지 닭고기를 먹을지, 닭고기를 먹지 않을지 선택할 수 있는 사람과 선택할 수 없는 여건에 놓여 있는 사람이 있다. 저자는 유기농, 동물복지, 공정무역, 친환경과 같은 의식이 담긴 소비가 사회적 신분을 드러낸다고 말한다. 스와로브스키의 상속인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테라스에 채소를 심어 먹으면 된다'라는 조언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테라스에 채소를 심어 먹을 수 있는 시간적, 공간적, 경제적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존재하리라는 생각은 할 수 없었던 걸까? 덧붙이자면 나는 지속 가능한 소비에 분명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의식적 소비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소비하는 것을, 어떤 제품을 사는 것을 아예 포기하는 게 지속 가능한 세상을 만드는 길이라는 저자의 의견은 분명 생각해 볼 만하다. 친환경 기업에서 화장품을 열두 개 사는 쪽보다는 화장품을 사지 않는 쪽이 더 친환경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다른 기업에서 화장품을 열두 개 사는 쪽보다는 친환경 기업에서 사는 쪽이 더 낫겠지만. 어떤 기업들은 분명 자신들이 더 윤리적이라는 이유로, 더 친환경적이라는 이유로 소비를 부추긴다. 그런 소비를 하는 사람들이 '도덕적인 주체로서 돈이 없고 시간이 없으며 소비 문제에 무지한 사람들'(189p)을 무시하게 된다는 점은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독선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는 문장으로 이 책을 마무리한다. 다른 사람들이 나와는 달리 별 생각 없이 살아간다고 단정짓는 건 매우 쉬운 일이다. 그렇게 단정짓고 나면 타인에 대해 이해할 필요도 없고, 타인이 무슨 행동을 하든 한심하게 여기면 끝이다. 하지만 사람이란 그렇게 별 생각 없지도 납작하지도 않은 존재다. 내가 하는 행동에 이유가 있다면 다른 사람이 하는 행동에도 이유가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게 옳다. <내 안의 차별주의자>는 타인에게 조금 더 관대해지고 싶은, 그리고 자신에게는 조금 더 엄격해지고 싶은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되어 줄 좋은 책이다.

Posted by 김미류
2020. 6. 8. 21:19

 

 무슨 의미로 이런 제목을 썼을까, 생각하게 되는 책이다. '이렇게 될 줄 몰랐다'라는 말은 부정적인 의미로도 많이 쓰이는데, 표지의 일러스트 속 가족의 모습은 행복해 보이니까. <이렇게 될 줄 몰랐습니다>는 저자인 '재수'와 저자의 아내인 '대장님', 두 사람과 세 고양이가 모여 만든 한 가족의 이야기다. SNS를 많이 하는 사람이라면 저자의 그림을 한 번 정도는 볼 일이 있었을 것이다(나도 본 적 있다). 저자 부부의 첫 만남부터, 서로를 사랑하며 더 좋은 사람이 되어 가는 두 사람의 모습, 고양이들과의 일상 이야기까지 빠뜨릴 내용 없이 재미있다. 에세이 형식의 글과 만화가 번갈아 가며 실려 있어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만화 장면을 찍어 올리지는 않을 생각이지만, 이 책의 주제를 관통하는 대사는 서평에 꼭 싣고 싶었다.

 

 "이렇게 마냥 행복해도 되는 걸까?"

 "그러려고 결혼했는데?"

 혼자서 잘 살 수 있는 사람이 연애도 결혼생활도 잘 할 수 있다는 말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완벽하지 않은 개인들이 만나 서로를 더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는 있지 않을까. 많은 이들이 내 삶을 행복으로 이끌어 줄 누군가를 찾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저자 부부는 그렇게 만났다. 서로의 다른 점을 알아가며 받아들이고, 상대방을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관계라니. 사랑하는 사람의 자존감을 올려 주기 위해 이유가 명확한 칭찬을 자주 함으로써 빛을 비춰 주었다는 '대장님'의 말이 마음 깊이 날아와 닿았다. 그런 가족이 있다면 일상의 시련들을 힘차게 이겨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대장님'은 꾸밈 없이 솔직하고 직설적인 성격이라고 한다. 처음에 저자는 그런 솔직함 때문에 상처를 받거나 마음앓이를 하기도 했다는 모양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내는 사람을 상대하는 태도가 건강하고 정직한 태도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이내 거기에 익숙해졌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 부분을 읽으면서 조금 부러웠다. 있는 그대로를 꾸미지 않고 건강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상대방의 정직함을 믿기 때문에 상처 받지 않을 수 있는 사람도. 

 

 읽다 보면 왠지 마음이 찡해지는 이야기도, 웃음을 터뜨리며 볼 수 있는 이야기도 있다. 자리 잡고 앉아 한 번에 훌훌 읽어 버리기에도, 자투리 시간에 가벼운 마음으로 집어들어 몇 장 읽고 아껴 두기에도 좋은 책이다. 개인적으로 일상의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들은 아무리 읽어도 질리지 않는다. 아마 그 책들을 만든 이들 각각의 일상이 비슷하면서도 조금씩은 다 다르기 때문이겠지. 이 책의 193페이지에는 '꽃밭을 일구는 사람'이라는 글이 있다. 누군가가 향유하는 모든 것들이 그 사람의 꽃밭이라는 말이 좋았다. 다른 사람의 '덕질'을 쓸모 없다거나 한심하다고 쉽게 말하는 이들을 자주 만난다. 무언가를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고 자신만의 꽃밭을 가꾸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는 내 꽃밭에 이 책 한 권을 심었다. 

 

 

 

  

Posted by 김미류
2020. 5. 10. 16:13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다이어트를 하지 않는 여성을 주변에서 찾기가 어려웠다. 어떤 친구들은 굶기와 폭식을 반복했다. 지나치게 많이 먹었다 싶으면 억지로 토하는 게 습관이 된 친구도 있었다. 저체중이었지만 자신의 허벅지나 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친구도 있었다. 많은 여성들이 체중이나 몸매에 대한 강박 때문에 다른 중요한 것들을 놓치거나 잃어버렸다. 사회가 이상적으로 여기는 여성의 몸은 사실 도달하기 불가능한 것에 가깝다. 팔다리가 길고 가늘지만 가슴은 크고 허리는 잘록하고 배는 납작한 몸매. 몸에 '여성적인' 곡선이 없거나, 과체중이거나, 허벅지나 발목이 굵다는 이유로 수많은 여성들이 비하를 당하고 기준 미달이라는 취급을 받았다. 여성들이 불가능해 보이는 이상에 도달하기 위해 스스로를 학대하던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먹을 때마다 나는 우울해진다>는 우리가 어떤 음식을 어떻게 먹는지가 우리의 감정을 보여 준다고 말한다. 섭식장애에 대한 책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음식과 마음의 상관관계에 대해 탐구하는 책이라고 하는 쪽이 조금 더 적합할 것 같다.

 

 거식증이나 폭식증, 먹고 토하는 행위, 특정 음식에 대한 과도한 집착 등 섭식장애에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저자는 섭식장애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철저한 식단을 짜고 그 식단을 준수하려고 하는 것은 그리 효과적이지 않다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굶거나 폭식을 하거나 토하거나 음식에 집착하는 데에는 마땅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탐구해야 한다. 예를 들어 책에서 소개한 어떤 여성은 가족에게 관심을 받기 위해 음식을 먹지 않음으로써 '아픈 아이'가 된다. 성적 폭행을 당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어떤 여성은, 무의식적으로 성적인 대상이 되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고 폭식을 하게 된다. 외모나 체중에 대한 압박 때문에 섭식장애를 갖게 된 여성들도 많을 것이다. 마음의 문제를 들여다보고 해결하는 과정 없이 의지만으로 섭식장애에서 벗어나는 일은 어렵다. 오히려 철저하게 짠 식단을 지키지 못함으로써 더한 자기혐오나 좌절감에 빠질 수도 있다. 

 

 저자는 우리 내면에 두 개의 그릇이 있다고 가정한다. 하나는 음식과 물처럼 몸의 자양분을 담는 호리병 모양의 그릇, 다른 하나는 관심이나 애정, 인정과 같은 마음의 자양분을 담는 하트 모양의 그릇이다. 우리는 종종 이 두 그릇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마음의 허기를 몸의 허기로 착각하고 음식을 꾸역꾸역 먹곤 한다. 하지만 음식으로 채울 수 있는 건 앞의 그릇뿐이기 때문에, 음식을 먹는 것만으로는 마음의 허기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진짜 문제는 음식이 아니라 마음에 있다. 문제가 마음에 있다는 걸 알고 나면, 당장 제대로 된 식생활을 영위할 수 없더라도 일상을 버티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저자는 섭식장애를 개선하기 위한 방법으로 식사 일지 쓰기를 권한다. 어떤 음식을 언제 먹거나 마셨는지, 먹기 직전에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감정이었는지, 배가 고팠는지를 가능하면 바로 기록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꾸준히 기록하다 보면 자신의 감정과 자신이 먹는 음식의 상관관계를 알 수 있다. 나의 경우는 스트레스가 심할 때마다 맵고 자극적인 음식을 찾는 경향이 있었다. 일지를 쓰다 보면 배가 고프지 않았는데도 특정한 감정 때문에 음식을 먹은 경우를 꽤 많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배가 고프지 않았는데도 음식을 먹었다고 자책할 필요는 없다. 그 사실을 깨닫고 받아들이는 과정 역시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각 챕터에는 신화나 동화, 옛날 이야기가 하나씩 소개되곤 한다. 짧은 이야기들을 읽어 보며 마음의 문제를 어떻게 인지할 것인지, 그 문제가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해 차근차근 생각하다 보면 스스로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리라 생각된다. 책이 하는 말은 많지만 섭식장애에서 벗어나려면 스스로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도록 노력하고, 자신을 보살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여러 여성들의 사례가 소개되어 있어 그 중 누군가에게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책이다. 

Posted by 김미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