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유령 골든 햄스터로 바꿔야 하나
하지만 카사가 유령이 됐는지 아닌지는 모르는 거잖아요? 그냥 쓰던 대로 쓸랍니다. 사진도 그냥 귀여운 걸로 적당히 골랐습니다.
카사가 죽은 지 한 달이 좀 넘게 지났다. 나는 대단하게도 출근도 하고 밥도 잘 먹고 사람들도 만나고 그러면서 지냈다. 그러는 동안에도 어딘가에서 햄스터들은 계속 버려졌고 그 중 늦지 않게 좋은 분들을 만날 수 있었던 햄스터들은 살아남았으며 어떤 햄스터들은 죽었다. 어떤 사람은 털도 나지 않은 아기 햄스터들을 페트병에 넣어서 버렸다. 예전에 미필적 고의라는 개념을 배운 적이 있었다. 미필적 고의란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범죄가 되는? 상황이 발생하리라는 사실을 예견하면서도 그 행위를 강행하는.. 뭐 그런 건데(배운 지 오래돼서 혹시 개념 틀렸을 수 있으니 양해 바랍니다) 예를 들면, 내가 옥상에서 돌을 던지면 누군가가 맞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돌을 던지는 그런 경우가 있겠다. 이 날씨에 젖도 못 뗀 아기 햄스터들을 페트병에 넣어서 버린 행동도 미필적 고의에 해당하나? 잠깐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닌 것 같다. 옥상에서 돌을 던지면 누군가가 맞을 수도 있고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젖도 못 뗀 아기 햄스터들을 페트병에 집어넣고 버리면 그 햄스터들은 무조건 죽는다. 그러니까 햄스터를 버린 새끼는 자신의 행동이 생명을 죽이는 거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을까? 나는 잘 모르겠다.
카사가 사용하던 케이지나 용품들은 그대로 내 침대 옆에 쌓여 있다. 절대 버리지는 못할 것 같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 중이다. 옷장 안에 처박힌 리빙박스들을 죄다 카사 집으로 교체하면 내가 이사를 다니는 한 계속 쓰게 되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도 해 보았고, 다른 햄스터를 임보입양하는 일에 대해서도 당연히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다른 아이를 덜컥 데리고 오는 건 여러 가지 이유로 망설여진다. 먼저 나중에 또 햄스터를 기르게 된다면 카사에게 제공한 것보다 훨씬 좋은 환경을 제공해 주고 싶다. 나는 월세살이를 하는 도시빈민의 형편이고 지금의 장비나 용품 상태는 많이 부족한 느낌이 든다. 다음으로 카사의 빈자리가 너무나도 크게 느껴지는 지금 다른 친구를 데려오는 건 카사에게도 그 친구에게도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노파심에서 말하자면 햄스터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다른 햄스터를 데려오신 다른 분들에게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순전히 저의 성격, 현재 상황과 심리 상태를 기준으로 하는 이야기이니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 나는 카사를 완전히 보내지 못했고 매일 밤 잠들기 전에 카사 생각을 한다. 지금도 카사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고 가끔은 감정을 추스르는 일이 힘들다. 물론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사람들은 모두 힘들고 모두 슬프겠지만 나에게 카사를 떠나보낸 고통은 아직까지도 너무나도 생생한 현재의 고통이다. 그 고통을 전혀 극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다른 동물을 집에 들이는 건 그리 좋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게다가 다른 친구에게 또 정을 붙이고 살 수 있다고 해도 그 다음에 찾아올 이별은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 아직은 그 다음을 생각하면 그저 갑갑하기만 하다. 햄스터처럼 수명이 짧은 동물과 계속 함께 산다는 건 즐겁고 행복한 시간과 작별로 인한 고통의 시간이 빠르게 순환한다는 뜻이다. 내가 그 순환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익숙해질 때가 오면 다른 햄스터와 함께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월세살이 도시빈민으로서의 삶이 끝난다면 방 하나에 단일케이지 하나씩 놓고 임보입양을 하겠지만 말이다...
카사는 나 없이 살 수 없었다. 그야 내가 밥을 주고 물을 주고 집을 치워 주지 않으면 살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나도 카사 없이는 살 수 없었다. 햄스터가 쳇바퀴 돌리는 소리가 내 수많은 밤을 지켜 주었고 그 작고 따뜻한 온기가 내 마음속에 불을 켜 주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든 그 사실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카사에게 먹이려고 샀던 이유식이나 영양제 같은 물건들은 다른 햄스터들에게 보내기로 했다. 포장해 놨으니까 내일 출근하면서 부쳐야지. 솔직히 말하자면 그것들을 카사가 다 먹지 못하고 갔다는 사실이 한처럼 맺혀 자꾸 고통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헛생각이 들 때마다 부러 카사는 이미 떠났고 한 줌도 안 되는 채로 내 방 책장 위에 올라가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카사는 이미 떠났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계속 생각하고 있다. 나중에 카사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그 앞에서 떳떳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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