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이름이 낯설었다. '김리뷰'라고 하니까 그 사람이구나, 싶었다. 기성 세대의 입장에서 90년대생을 이해하고 분석하려고 했던 책 <90년생이 온다>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90년대생은 기성 세대와 다를까? 확실히 다를 것이다. 하지만 어떤 점에서 다른지, 왜 다른지, 기성 세대와 90년대생들이 그 차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마카롱 사 먹는 데 이유 같은 게 어딨어요?>는 90년대생 저자가 90년대생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기성 세대는 90년대생의 사고방식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궁금한 게 많다. 왜 그토록 목표하던 대학에 가자마자 온 몸에 힘이 빠진 것처럼 무기력해지는지, 왜 그렇게 들어가고 싶었던 회사를 금방 그만두려고 하는지, 왜 얼마 되지도 않는 돈을 벌면서 한 개에 몇천 원이나 하는 마카롱을 사 먹는지. 왜 게임, 아이돌, 유튜브 방송 같은 데 시간과 감정을 그렇게 많이 쏟아 붓는지. 저자는 그런 현상을 깊이 분석하거나 자세히 파헤치지 않는다. 그냥 우리는 이렇다, 나는 이래서 이랬다, 같은 말투로 이야기할 뿐이다. 90년대생이라면 이 책을 읽으면서 당연히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성 세대에 속하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음으로써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못마땅한 감정을 누그러뜨릴 수 있을까?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다행히 이 책에 대한 반응을 보니 저자의 이야기에 기성 세대마저 이해시킬 만한 힘이 있는 모양이다.
대학 가면 살 빠져. 대학 가면 예뻐져. 대학 가면 남자친구(여자친구) 생겨. 누구든 한국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녔더라면 이런 말을 안 듣는 게 더 어려웠을 것이다. 고등학생은 그렇다 치고, 초등학생에게도 좋은 대학에 가는 것만이 인생의 최종적인 목표이며 좋은 대학에 가기만 하면 모든 일이 잘 풀리는 것처럼 말하는 어른들이 있다는 건 정말 충격이었다. 누구나 나이를 먹으면서, 성장하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고민들이 있다. 내 얼굴이 너무 못 생긴 것 같다든가, 살이 너무 많이 찐 것 같아 걱정이라든가, 남자친구 여자친구를 만들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든가, 스스로가 문득 한심하게 느껴진다든가,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어른들이 그걸 인정해 주지 않는다든가. 이 사회가 '좋은 대학' 그리고 '좋은 회사'가 어린 세대의 그런 고민들을 한 방에 해결해 줄 치트키 같은 것인 양 말했던 게 사실이다. 그런 말을 듣고 자란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그런 말들을 정말 믿었다가 나중에 배신감을 느끼는 사람들, 그런 말들을 처음부터 믿지 않고 어른들에 대한 환멸과 실망을 느끼며 살아온 사람들. 그 배신감과 실망감, 환멸감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90년대생이 미래가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큰 이유 중 하나는 사회가, 어른들이 그들에게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식이다. 고작해야 마카롱쯤 되는 고급 간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 혹은 있었다는 것에서 퍽 대단한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런 게 우리의 밋밋하고 추레한 삶에 아주 작은 특별함이나마 부여해주는 것 같아서." 45페이지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우리는 왜 마카롱을 먹을까? 한 입에 사라져 버릴 수도 있는 간식은 어른들 눈에 낭비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저자가 말했듯 'SNS에 올린 사진은 사라지지 않는다'. 90년대생은 SNS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삶을 본다. 자신과는 처음부터 출발선이 다른 사람들, 내가 사 먹으려면 큰 맘 먹어야 할 만한 음식들을 아무렇지 않게 매일 먹는 사람들, 날이면 날마다 비행기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 말이다. 타인의 삶을 보며 내 삶이 초라해진다는 생각이 들 때면 그런 생각을 털어내려 하기 마련이다. 마카롱을 사 먹는 것 역시 그런 노력의 연장선일지도 모르겠다.
<마카롱 사 먹는 데 이유 같은 게 어딨어요?>는 긴 제목과는 상반되게 작고 얇은 책이다. 어려운 이야기를 하지도 않는다. 그 자리에서 한 번에 다 읽어 버린 다음에도 몇몇 페이지를 다시 뒤적여 보게 된다. 나만 이런 생각을 하며 사는 게 아니구나, 나만 이렇게 느낀 게 아니구나, 그렇게 공감하면서. 90년대생을 이해하고 싶은 어른들이라면 이 책을 읽어 보면 좋을 것 같다. 위로와 공감이 필요한 90년대생 당사자들에게도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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