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3. 31. 21:10

 

 결혼하지 않기로 마음먹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 이유는 저마다일 것이다. 경제적으로 여의치 않아서 결혼을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고, 혼자만의 삶을 영위하고 싶어서 결혼하지 않을 수도 있다. 굳이 결혼을 하고 싶지 않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어쨌든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은 이제 구시대적이다. 이 책은 신기하게도 그런 사회 풍조에 역행하는 책이다. 저자는 결혼을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 논하고, 결혼생활을 행복하게 하는 법, 그리고 배우자를 선택하는 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개인적으로는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타인이 살아가는 방식에 간섭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결혼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의견이 궁금하기는 하다. 그래서 꽤 흥미롭게 읽었다. 

 

 책에서는 요즘 세대가 결혼을 기피하는 이유에 대해서 간략하게 다루고, 비혼주의자들 몇 명과 기혼자들 몇 명의 사례에 대해 이야기한다. 물론 저자의 결론은 결혼을 해야 한다는 쪽으로 이미 내려져 있기 때문에 사례가 아주 객관적이라고는 볼 수 없다. 저자는 결혼 경험자가 비혼자를 부러워하는 경우는 없다고 자신 있게 주장하고 있으나, 이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 책의 첫 번째 소제목이 '2030세대의 결혼 기피 이유, 과연 타당할까?'이다. 남의 인생에서 중요한 문제에 대해 타당하고 그렇지 않고를 제삼자가 논할 자격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2030세대 중에서도 분명 결혼을 하고 싶어 하지만 엄두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읽고 결혼하려는 마음을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결혼이라는 시스템이 점점 변화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남존여비 사상이나 가부장제와 같은 악습들이 갈수록 완화될 것이기 때문에 이전의 결혼과 지금의 결혼이 같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또한 결혼을 한다고 해서 평생을 함께해야 하는 건 아니라는 점에 대해서도 의견을 분명히 한다. 재혼을 하거나 '돌싱'으로 살아가는 건 전혀 나쁜 일이 아니고, 법적 결혼을 하지 않고 동거 생활을 유지해도 된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저자의 의견에 동의한다. 결혼제도나 혼인 관계를 지나치게 무겁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이 책에서는 결혼 생활을 만족스럽게 하는 방법, 배우자를 선택하고 검증하는 방법에 대해 아주 자세히 다루고 있다. 자세한 내용을 여기에 쓸 수는 없고 궁금하다면 책을 읽어 보면 될 것 같다. 결혼 전 협의서, 도중에는 중간 평가서를 쓰라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결혼을 하든 하지 않든 그건 개인의 자유지만, 결혼을 할 거라면 파트너를 자신의 생활 동반자로 여기고 지속적으로 서로 대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협의서나 평가서는 그런 대화의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아쉬운 건 결국 저자가 2030세대가 왜 비혼을 선택하는지에 대해 아주 심도 있는 고찰을 하지는 못한 것 같다는 점이다. 저자 역시 기성 세대의 사람이고, 결혼을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사고방식을 가졌기 때문에 비혼주의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고 공감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 책은 결혼에 대한 통찰이 녹아 있는 책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기성 세대 남성의 입장에서 결혼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결혼을 하고 싶은 사람은 결혼을 해서 잘 살고, 하지 않고 싶은 사람은 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Posted by 김미류
2020. 3. 8. 17:13

 

 나이가 차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야 한다. '정상'적인 가족은 양쪽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가족이다. 아직도 당연하게 이런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래도 요즘에는 다양한 이유로 결혼을 하지 않거나,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사실 결혼이나 출산, 육아와 같은 중대사는 본인이 충분히 숙고해서 결정하는 게 당연하다. 타인의 등을 떠밀어서 억지로 시키는 사람들이 책임을 져 주지도 않을뿐더러, 책임을 져 줄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연애, 결혼, 출산의 과정을 거치는 게 정상적이며 저 코스를 밟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딘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가 만연하다. <딩크족 다이어리>는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하고 살아가는 한 중산층 부부의 이야기이다. 개인의 견해와 경험담을 적어 놓은 책이기 때문에 복잡한 내용도 없으며 읽기에 어렵지 않다. 

 

 저자 부부를 포함해 많은 딩크족이 아이를 낳지 않고 살기로 결심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먼저 아이를 낳아서 기른다는 중대한 행동을 쉽게 결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부모 세대를 보면 다들 그냥 당연하다는 듯 아이를 낳아 길렀다. 아이를 낳는 것 자체도 힘든 일이지만 아이는 낳아 놓는다고 알아서 자라는 게 아니다. 아이는 부모나 주변인들의 시간적, 체력적, 경제적 희생을 요구한다. 물론 그게 아이의 잘못이라는 것도 아니고, 그런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사람들의 선택 역시 고귀한 것이다. 그러나 역시 출산과 육아는 충분히 고민해서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하는 게 맞지 않나 싶다. 저자 부부 역시 아이는 아이를 위해 모든 걸 희생할 각오가 되었을 때 갖는 것이 맞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아이를 낳아 기르기에는 그들이 희생하고 싶지 않은, 희생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그런 선택을 두고 이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제삼자는 아무도 없다.

 

 딩크족으로 살다 보면 아이를 낳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세대와 갈등을 빚게 된다. 특히 손주를 기다리는 양가 어른들을 설득하는 게 일이다. 잘 생각해 보면 부모라고 해도 부부 당사자에게 아이를 낳아라 말아라 명령할 권리는 없고, 부모의 의견도 결국 남의 의견이니 부부가 남의 의견을 따를 의무는 없다. 그러나 결혼은 개인의 일이면서 동시에 가족의 일이기 때문에 많은 부부가 아이를 바라는 가족들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한다. 다행히 저자 부부는 가족들과 그리 큰 갈등을 빚은 것 같지는 않다. 시간이 지나면서 시대가 흐르면 사람들의 사고방식도 달라지겠지만, 다른 이들의 편견 어린 시선도 딩크족에게는 피곤하고 힘든 일이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사람들에게 나름의 고충이 있는 것처럼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힘든 일이 있다.

 

 저자는 이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딩크족으로 살 것을 권유하거나,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낳는 것보다 좋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그저 자신이 선택한 삶의 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모든 선택이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할 뿐이다. 누군가는 딩크족으로 살기로 결심했다가 마음을 바꿀 수도 있고 그렇게 마음을 바꾸는 것도 역시 개인의 자유이다.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개인의 선택에는 관대한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이 책을 읽었다.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니 딩크족을 둘러싼 이야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Posted by 김미류
2020. 2. 5. 23:01

 

 원래 동물원과 아쿠아리움을 좋아했다. 평소에는 볼 일이 없었던 동물들을 직접 보고 나면 내가 사는 세계가 더 넓어진 것만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다. 절대 다수의 동물원이나 아쿠아리움이 동물들을 착취하고 학대하는 구조로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나중의 일이었다. 어딘가에서 그런 말을 읽은 적이 있다. 동물을 보고 싶다면 동물들이 사는 곳으로 찾아가야 한다고. 종 보존의 차원에서 인간의 도움이 필요한 동물들도 있을지 모르지만, 거의 대부분의 동물들은 자연 속 자신들의 서식지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 동물들의 모습이 보고 싶다면 그들의 서식지로 인간이 찾아가야 하는 것이다. <고래를 찾아 떠나는 오지여행>은 말 그대로 고래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떠나는 두 사람의 이야기이다.

 

 이 책은 읽고자 하는 사람의 목적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다. 먼저, 특정한 종의 고래들을 실제로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여행 가이드북으로 읽을 수 있다. 두 저자가 다녀온 지역들, 인천공항을 기준으로 그 지역들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 및 코스, 그 지역에서 볼 수 있는 고래의 종과 고래를 볼 수 있는 시기, 심지어 숙박 업소나 현지 식문화에 대한 간단한 정보들까지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제목은 '오지여행'이라고 하지만 반드시 오지에 속하는 지역들만 소개된 것은 아니다. 비교적 접근성 높거나 편리하게 갈 수 있는 곳들도 있고, 책에 소개된 지역들 중에는 한국의 울산도 있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 속 고래를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여행을 계획하는 데 큰 참고가 될 것 같다. 저자들이 직접 고래의 사진이나 영상을 찍었고, QR코드를 통해 동영상을 볼 수도 있다. 

 

 이 책에 소개된 지역들 중에서는 고래 관광을 주요 산업으로 삼은 지역들도 있지만, 생계를 위해 할 수 없이 제한적으로 고래를 사냥해야만 하는 지역들도 있다. 후자에 속하는 지역들의 간략한 역사와 상세한 설명 역시 나와 있다. 또 바위나 땅 등에 고래 그림이 그려진 장소들도 소개되어 있어서, '고래 덕후'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만족하며 읽을 만하다. 비슷하게 생긴 고래들을 구분하는 법이나 각각의 고래 종들이 가지는 특성을 책 중간중간에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책을 다 읽고 나면 고래에 대한 상식들이 어느 정도 쌓이게 된다. 제일 눈에 들어왔던 그림 하나를 업로드한다. 자세한 사진과 그림, 영상들은 책을 통해 직접 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고래를 보기 위해 최대 정원이 8명인, 통통배에 가까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저자들 역시 그런 경험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작은 배 안에는 화장실이 없는데, 만약에 화장실에 가고 싶어진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놀랍게도 이 책에는 작은 배에 탔을 때 화장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적혀 있다. 사소하지만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이 책에서 재미있는 부분 중 하나이니 여기에 직접 쓰지는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읽으면서 두 저자가 고래를 정말 좋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가지를 위해 불편과 위험을 감수하고 세계 곳곳을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게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다. 고래를 좋아하는 사람, 야생에 사는 동물들을 보기 위해 여행을 떠나고 싶은 사람, 여행기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Posted by 김미류
2020. 1. 31. 20:52

 

 에세이 읽는 걸 좋아한다. 나와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거나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는 게 즐겁다. <화영시경>의 저자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녹음도서 제작을 오랜 기간 해 왔다고 한다. 녹음도서 제작에 필요한 낭독봉사는 얼핏 보기에 재미있어 보여서 수많은 사람들이 흥미롭게 접근하곤 하지만, 그 중 꾸준히 봉사를 이어 나가는 사람들은 극소수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저자는 13년 동안 낭독봉사를 해 왔다고 하는데 그 정도로 꾸준하게 봉사를 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이 책에서 특히 좋았던 부분은 저자가 낭독봉사를 하며 만났던 책들을 소개하는 5부, '책 들려주는 시간'이었다. 몇몇 책들은 나도 읽어 본 작품이라서 더 친근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화영시경>은 다양한 주제와 다양한 감성의 글을 모아 놓은 책이지만 나는 그 중에서 책 이야기들이 가슴 깊이 다가왔다. 어릴 적 저자의 아버지가 육교에서 사다 주셨던 책 이야기, 라이너마리아 릴케 이야기, 메리 올리버의 <완벽한 날들>에 대한 이야기, 샬럿 브론테와 에밀리 브론테의 자매인 앤 브론테에 대한 이야기까지. 이 책의 문장들이 편안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작가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서가 아닐까. <제인 에어>와 <폭풍의 언덕>은 너무나 유명한 작품들이기 때문에 읽어 보았지만, 앤 브론테의 작품은 아직까지 읽어 본 적이 없었다. 애틋하고 안타까운 앤 브론테의 생애에 대해 알고 나니 앤 브론테의 작품도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리 올리버의 <완벽한 날들>은 평범한 나날이 주는 행복감에 대한 책이라고 한다. 사실 수많은 에세이가 그런 내용을 담고 있는데, 그 에세이들의 선구자격인 책은 아닐까. 역시 한 번 읽어 보고 싶어졌다.

 

 글들도 좋지만, 군데군데 적절하게 들어간 사진들도 책의 볼거리 중 하나다. 사진 구경하는 것도 좋아하는 편이라서 더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저자는 군데군데 패스트 패션에 대한 자신의 견해나 자신이 장기 기증 신청을 한 이유 등에 대해 밝히는데, 그런 부분에서는 생각할 거리를 남겨 주기도 하는 책이었다. <화영시경>은 책뿐 아니라 이런저런 영화, 역사 속 인물들의 일화 등에 대해 소개하는 이야기들도 있어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으면서도 지루하지 않았다. 나처럼 에세이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Posted by 김미류
2019. 12. 26. 21:06

 

 이야기는 화자의 여동생 '영화'의 가출로 시작된다. 가출이라고 하면 보통 청소년들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영화는 예순을 앞두고 있는 여성이다. 아들 수현과 싸우고 집을 뛰쳐나온 영화는 한동안 영남과 영남의 딸 부부가 함께 사는 집에 얹혀 지내게 된다. 조용하게 손주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하며 글을 쓰는 화자 영남과 달리 영화는 톡톡 튀는 할머니다. 많은 애인을 만나고, 화려한 옷을 입고 원색의 화장을 즐기고 술을 좋아한다. 이 소설은 서로 다른 노년의 자매를 중심으로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가족은 필연으로 얽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소중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져서 답답하기도 한 관계이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가족을 사랑하고 소중하게 생각하겠으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그리고 가족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언제나 가족에게 좋은 감정만을 품을 수는 없다. 영남은 동생 영화를 사랑하고, 딸인 태양과 손주들을 사랑한다. 하지만 자신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영화, 그런 영화를 불편해하는 태양은 이따금 영남을 괴롭게 한다. 다섯 살짜리 어린 손주는 영남에게 행복을 주지만 그럼에도 손주를 돌보는 일은 힘든 일이다. 매일 밤 손주가 깨지 않게 아주 흐릿한 불만을 켜 두고 글을 쓰는 영남의 시력은 점점 나빠진다. 영화 역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뒤늦게나마 자녀들과 시간을 보내고 가족과 함께 있어 주려고 하는 영화와 그의 자녀들은 잘 맞지 않는다. 그런 사소한 삐걱거림이 폭발하여 결국 영화는 집을 나오게 된다. 시간이 지나며 처음에는 영화를 환영했던 영남의 딸 태양도 점점 영화를 불편해하게 되고, 영화의 딸 수정도 영화에게 다시 집으로 돌아올 것을 채근한다. 자세한 전개와 결말은, 소설을 직접 읽어 보고 아는 쪽이 좋다고 생각되어 적지 않는다.

 

 영남의 집에 얹혀 사는 동안 영화는 충동적으로 제과제빵 학원에 다니기 시작한다. 영남은 영화가 오기 시작할 무렵부터 단편 소설을 하나 쓰고 있다. 영남이 소설을 완성하고, 영화가 학원을 졸업하는 것과 함께 가족들의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소설의 화자는 영남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예순이 되어서도 새로운 일을 배우려고 도전할 줄 아는 영화가 더 인상적인 인물이었다. 영화가 졸업한 것이 단지 제과제빵 학원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가출과 귀가 과정을 통해 영화는 물론 영화의 가족들 역시 인생의 한 단계를 졸업하게 된다. 

 

 머리말의 한 부분을 첨부한다. 머리말부터 인상적인 소설이었다. 저자는 하루를 구슬 알에 비유한다. 자연스레 나도 오늘은 구슬 알로 치면 어떤 하루였을까, 생각하게 된다. 이 소설을 읽었으므로 아주 나쁜 날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Posted by 김미류
2019. 12. 14. 18:52

 버킷리스트 만드는 걸 좋아한다. 매년 한 해의 목표를 세우고 그걸 하나씩 이뤄 나가는 게 큰 즐거움이다. 물론 그 중에 많은 것들은 지키지 못하고 내년의 버킷리스트로 넘어가곤 한다. 목표를 지키지 못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먼저 이루기 쉽지 않은 목표라서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조금만 노력하면 지킬 수 있지만 '다음에 하자'라는 생각으로 미루기 때문에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전자 같은 경우는 어쩔 수 없다고 치고, 후자 같은 패턴이 매년 반복되는 건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잘 고쳐지지 않는다.

 

 <이번이 마지막 다음입니다>의 주인공 기석은 솔직히 말해서 매력적인 인물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학생 때부터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그저 공부만 했다. 그래서 덕분에 좋은 직장에서 일하고 있지만, 나쁜 상사에게 수시로 시달린다. 일찍 일어나서 명상을 하고 영어 공부를 한다. 특이 사항으로는 연애를 해 본 적이 없다는데, 연애를 해 본 적이 없는 건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연애를 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그 점이 특히 매력이 없다. 말도 거의 나눠 본 적 없는 입사 동기와 사귀는 상상을 하거나, 연애하는 법에 대해 다룬 유튜브 영상을 6개월 동안 매일 보며 따라했다는 부분에서는 그런 매력 없음이 절정에 달한다. 그렇다고 해서 기석이 특별히 나쁜 사람인 건 아니다. 그냥 평범하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30대의 남자 직장인인 그는 어느 날 자신이 암 말기임을 알게 된다.  

 

 기석은 평범한 인물이다. 삶의 마지막을 받아들이는 그의 태도 역시 평범하다. 울고 절망하고 어쩔 줄 몰라하다가, 이내 자신이 얼마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천천히 직시한다. 그는 언젠가, 혹은 다음에, 하고 생각하며 그 동안 하지 않았던 일들을 하기 시작한다. 아주 멋지거나 특별한 일들은 아니다. 부모님을 찾아가고, 우연히 만난 옛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좋아했던 사람을 찾아가고,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싶은 친구에게 편지를 보낸다. 아마 내가 어느 날 시한부라는 이야기를 듣더라도 그와 비슷하게 행동할 것이다. 그는 죽음을 앞둔 평범한 사람들이 할 법한 일들을 한다. 그에게 기적 같은 일들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의 모습이 평범한 사람들인 우리에게서 그다지 멀지 않기 때문에 그가 마지막을 맞아야 한다는 사실이 더 안타깝게 다가온다.

 

 만약 내가 오늘부터 두 달 정도밖에 살지 못한다면 나는 예전에 만들어 놓은 버킷리스트를 다 이룰 수 있을까? 아마 그럴 수 없으리라. 내 버킷리스트에는 외국어 원서로 된 책 한 권 읽기, 같은 항목들이 있다. 삶이 두 달 남은 시점에서 내가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듯 외국어를 공부하고, 책을 읽을 수준에까지 다다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다음에, 나중에, 언젠가, 이런 말들로 미루다 보면 언제까지나 외국어로 된 책을 읽을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외국어로 된 책을 읽고 싶다면 지금부터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 이번이 마지막 다음일지도 모르니까. 

Posted by 김미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