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21. 6. 1. 18:50

 

 

 제목을 유령 골든 햄스터로 바꿔야 하나

 하지만 카사가 유령이 됐는지 아닌지는 모르는 거잖아요? 그냥 쓰던 대로 쓸랍니다. 사진도 그냥 귀여운 걸로 적당히 골랐습니다.

 

 카사가 죽은 지 한 달이 좀 넘게 지났다. 나는 대단하게도 출근도 하고 밥도 잘 먹고 사람들도 만나고 그러면서 지냈다. 그러는 동안에도 어딘가에서 햄스터들은 계속 버려졌고 그 중 늦지 않게 좋은 분들을 만날 수 있었던 햄스터들은 살아남았으며 어떤 햄스터들은 죽었다. 어떤 사람은 털도 나지 않은 아기 햄스터들을 페트병에 넣어서 버렸다. 예전에 미필적 고의라는 개념을 배운 적이 있었다. 미필적 고의란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범죄가 되는? 상황이 발생하리라는 사실을 예견하면서도 그 행위를 강행하는.. 뭐 그런 건데(배운 지 오래돼서 혹시 개념 틀렸을 수 있으니 양해 바랍니다) 예를 들면, 내가 옥상에서 돌을 던지면 누군가가 맞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돌을 던지는 그런 경우가 있겠다. 이 날씨에 젖도 못 뗀 아기 햄스터들을 페트병에 넣어서 버린 행동도 미필적 고의에 해당하나? 잠깐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닌 것 같다. 옥상에서 돌을 던지면 누군가가 맞을 수도 있고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젖도 못 뗀 아기 햄스터들을 페트병에 집어넣고 버리면 그 햄스터들은 무조건 죽는다. 그러니까 햄스터를 버린 새끼는 자신의 행동이 생명을 죽이는 거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을까? 나는 잘 모르겠다.

 

 카사가 사용하던 케이지나 용품들은 그대로 내 침대 옆에 쌓여 있다. 절대 버리지는 못할 것 같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 중이다. 옷장 안에 처박힌 리빙박스들을 죄다 카사 집으로 교체하면 내가 이사를 다니는 한 계속 쓰게 되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도 해 보았고, 다른 햄스터를 임보입양하는 일에 대해서도 당연히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다른 아이를 덜컥 데리고 오는 건 여러 가지 이유로 망설여진다. 먼저 나중에 또 햄스터를 기르게 된다면 카사에게 제공한 것보다 훨씬 좋은 환경을 제공해 주고 싶다. 나는 월세살이를 하는 도시빈민의 형편이고 지금의 장비나 용품 상태는 많이 부족한 느낌이 든다. 다음으로 카사의 빈자리가 너무나도 크게 느껴지는 지금 다른 친구를 데려오는 건 카사에게도 그 친구에게도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노파심에서 말하자면 햄스터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다른 햄스터를 데려오신 다른 분들에게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순전히 저의 성격, 현재 상황과 심리 상태를 기준으로 하는 이야기이니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 나는 카사를 완전히 보내지 못했고 매일 밤 잠들기 전에 카사 생각을 한다. 지금도 카사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고 가끔은 감정을 추스르는 일이 힘들다. 물론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사람들은 모두 힘들고 모두 슬프겠지만 나에게 카사를 떠나보낸 고통은 아직까지도 너무나도 생생한 현재의 고통이다. 그 고통을 전혀 극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다른 동물을 집에 들이는 건 그리 좋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게다가 다른 친구에게 또 정을 붙이고 살 수 있다고 해도 그 다음에 찾아올 이별은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 아직은 그 다음을 생각하면 그저 갑갑하기만 하다. 햄스터처럼 수명이 짧은 동물과 계속 함께 산다는 건 즐겁고 행복한 시간과 작별로 인한 고통의 시간이 빠르게 순환한다는 뜻이다. 내가 그 순환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익숙해질 때가 오면 다른 햄스터와 함께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월세살이 도시빈민으로서의 삶이 끝난다면 방 하나에 단일케이지 하나씩 놓고 임보입양을 하겠지만 말이다...

 

 카사는 나 없이 살 수 없었다. 그야 내가 밥을 주고 물을 주고 집을 치워 주지 않으면 살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나도 카사 없이는 살 수 없었다. 햄스터가 쳇바퀴 돌리는 소리가 내 수많은 밤을 지켜 주었고 그 작고 따뜻한 온기가 내 마음속에 불을 켜 주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든 그 사실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카사에게 먹이려고 샀던 이유식이나 영양제 같은 물건들은 다른 햄스터들에게 보내기로 했다. 포장해 놨으니까 내일 출근하면서 부쳐야지. 솔직히 말하자면 그것들을 카사가 다 먹지 못하고 갔다는 사실이 한처럼 맺혀 자꾸 고통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헛생각이 들 때마다 부러 카사는 이미 떠났고 한 줌도 안 되는 채로 내 방 책장 위에 올라가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카사는 이미 떠났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계속 생각하고 있다. 나중에 카사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그 앞에서 떳떳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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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미류
일상2021. 5. 13. 13:38

 

 

 저번 달 말에 카사가 떠났다.

 벌써 2주 가량의 시간이 지났는데도 첫 문장을 쓰자마자 눈물이 솟는다. 글을 써야지 써야지 했는데 좀처럼 제대로 된 상태로 글을 쓸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이 감정들이 날아가서 옅어지기 전에 글을 써 두는 게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짧게나마 써 보려고 한다.

 카사는 다행히 내 휴일 전날 밤에 떠났고 휴일에 무사히 장례를 치러 줄 수 있었다. 수염과 털을 몇 가닥 자르고 이동장에 넣은 뒤 이동장은 내 침대 머리맡에 두었다. 밤새도록 음악을 틀어 주고 시간을 보냈다. 카사는 사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집 밖을 돌아다니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케이지에서 꺼내서 시간을 보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카사가 내 침대에 나와 같이 있다는 사실이 매우 이상하게 느껴졌다. 마지막 날 밤에 카사를 몇 번이고 쓰다듬었다. 다음 날 아침이 되면 화장을 하러 가야 하니까, 내가 좋아했던 쫑긋거리는 귀, 약간 차갑고 촉촉한 느낌이 드는 발, 분홍색 코, 부드러운 털과 작은 꼬리까지 그 모든 게 세상에서 사라지기 전에 충분히 보고 느껴야 했다. 몸은 차가웠지만 당연하게도 털은 부드러웠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 온갖 생각을 했다. 이대로 냉동보관해서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되살릴 수 없을까? 그런 조금 SF 같은 생각부터, 지금 내 머리맡에 있는 카사의 몸은 어제까지와 똑같은데 대체 뭐가 달라져서 이렇게 되어 버린 걸까, 영혼이라는 게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 영혼은 지금 어디 있는 걸까, 그런 오컬트 계통(?)의 생각도 했다. 당연하게도 그냥 햄스터랑 같이 죽어버릴까, 뭐 그런 생각도 했다. 하여튼 달이 바뀌었는데도 나는 여전히 살아 있지만 말이다.

 햄스터가 2년 정도 살았다면 제 수명을 채우고 간 거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최근 몇 달 동안에는 이제 카사가 살 만큼 살았다는 걸 항상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카사는 다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3년을 넘기고, 4년을 넘기고 5년을 넘기고 내가 중년이 되어도 내 방에서 쳇바퀴를 타고,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하염없이 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기네스북에 오르고 세상에 이런 일이 뭐 그런 프로그램에서 취재를 오고 그럴 수도 있다고. 그 사이에 나는 집을 옮기고 카사 집도 더 크고 넓은 곳으로 옮기고 그럴 수도 있다고 말이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카사가 쓰던 케이지는 아직도 내 방 옷장 옆에 그대로 있다. 물병 하나, 밥그릇 하나도 치우지 않았다. 좀처럼 치울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카사의 유골함은 며칠 동안 내 침대 머리맡에 두다가 책장 한 칸을 비워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다 못 먹은 간식과 마지막으로 쓰던 둥지의 베딩을 담아서 옆에 뒀다. 내 책장의 가운데 칸을 내어주는 게 카사한테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라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는다. 이미 카사는 떠났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내 책장 가운데 칸에 있든 내 침대 머리맡에 있든, 내 서랍 속에 있든 어디 뒷산에 뿌려주든 카사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것이다. 영정사진을 두고 유골함을 두고 간식을 놓아주는 건 다 나를 위한 일이다. 카사가 돌아오지 않아도 나는 앞으로 계속 살아가야 하니까.

 

 카사가 살아 있을 때 이따금 터널을 이로 갉곤 했었다. 나는 잠귀가 밝은 편이라 그 소리가 들리면 곧장 잠에서 깼다. 내가 잠에서 깨서 케이지 앞으로 가면 보통 카사는 앞발을 들고 문 쪽을 바라본 채로 서 있었다. 그러면 내가 이름을 불러주고 이런저런 간식을 집어주곤 하는 게 우리 사이의 습관 같은 거였다. 며칠 전 자다가 터널 갉는 소리에 깼다. 마치 용수철이 튕겨 올라가는 것처럼 퍼뜩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당연히 케이지는 내가 내버려 둔 그대로였고 텅 비어 있었다. 시간을 보니 아침 여섯 시였다. 망연자실한 채로 방금까지 꾸던 꿈의 내용을 떠올렸다. 형체 없는 무언가가 내 방에 들어와 여기저기를 걸어다니고 있었다. 책장에 놔둔 카사의 유골함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다 떠났다. 나는 영혼이나 사후세계의 존재를 믿지는 않지만 정말 그런 게 존재한다면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큰 위안이 되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당분간은 다른 햄스터를 들일 생각이 없다. 먼저 내게는 카사의 빈자리가 너무 크고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다른 햄스터를 기르는 건 서로에게 결코 좋지 못한 일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나중에 다른 햄스터를 기르게 된다면 카사에게 해주지 못했던 더 좋은 것들을 많이 누리게 해 주고 싶기 때문에 그러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기되는 햄스터들에 대한 소식은 계속 이런저런 창구로 접하고 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 이것저것 열심히 해 보려고 한다.

 

 다행히도 카사는 수많은 사진과 영상으로 남아 있다. 틈만 나면 케이지 앞에 핸드폰을 들이밀고 사진이며 영상을 찍었던 보람이 있는 셈이다. 얼마 전에는 혼자 카사 동영상 상영회를 했다. 영상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나기도 했고 눈물이 나기도 했다. 작은 쥐 한 마리가 사람의 감정을 이렇게 좌지우지할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카사의 밥과 물을 주고 카사가 잘 자리를 마련해주고 카사가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고 카사의 집을 치워준 건 나지만 내가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용기를 줬던 건 카사였다. 수많은 무력하고 힘든 밤 그저 작은 쥐 한 마리가 쳇바퀴를 돌리고 밥을 먹고 물을 마시는 모습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내가 이런저런 일을 겪고 짜증나는 세상의 풍파를 정면으로 맞아야 했을 때도 내 방 한쪽에는 언제나 햄스터 케이지가 있었다. 그 케이지를 들여다볼 생각을 하면 세상을 살아갈 마음이 들었다. 이제 카사가 없다고 해도 카사가 만들어 준 그 마음이 아예 사라지는 건 아니다. 나는 주황색 햄스터 한 마리를 만나기 전의 나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고 다른 사람인 채로 앞으로 계속 살아간다. 카사는 나에게 최고의 햄스터였고 완벽한 인생의 동반자였다.

 원래 장례식장 이야기나 뭐 그런 거 쓰려고 했는데 나중에 써야겠다. 카사를 사랑해주신 분들, 카사의 건강을 빌어주신 분들, 카사가 좋은 곳으로 갔기를 기도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카사는 떠났지만 카사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또 글을 쓸게요. 우리 모두 햄스터에게 잘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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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미류
일상2021. 4. 23. 13:40

어젯밤에 찍은 사진

 

 이런저런 일에 쫓겨 햄스터 이야기를 못 쓴 지 몇 달이 지났는데 그 사이에 우리 햄스터는 아저씨가 아니라 할아버지가 되었다. 햄스터는 보통 2년 정도를 살면 제 명을 살았다고 하고 몸이 약한 아이거나 병이 생긴다면 2년을 못 채우는 경우도 많다. 우리 햄스터는 나와 같이 산 지 22개월 정도가 되었다. 구조되었을 때 이미 거의 다 자라 있었으니까 못 해도 태어난 지 한 달은 지난 상태였겠지? 그러면 이제 우리 햄스터는 2년 정도 살았다고 봐야 한다. 햄스터가 노년에 접어들면 나이를 먹는 게 훅훅 체감이 된다. 피부병이 있는 것도 아닌데 예전에는 빵실하게 차올라 있던 털도 조금씩 듬성듬성해진다. 눈이 안 좋아지고 원래는 숨겨 두어도 잘만 찾던 간식을 눈 앞에 가져다 줘도 잘 못 받아먹기도 한다. 하지만 나이를 좀 먹었을 뿐 우리 햄스터는 우리 햄스터다. 얼굴 표정이나 화장실에 갈 때의 모습이나 간식을 먹는 자세를 보면 처음에 우리 집에 왔을 때와 똑같다. 할아버지 햄스터가 되었다고 해서 사랑스럽지 않은 게 아니다. 사랑스러운 우리 햄스터는 나이를 먹어서 사랑스러운 할아버지 햄스터가 되었다. 그래도 제목은 통일해야 하니까 아저씨라고 써야겠다.

 

 우리 햄스터는 가끔 터널이나 구조물을 갉곤 하는데 그 소리가 그리 작지는 않다. 오늘도 햄스터가 잠을 깨워 아침 일곱 시 반쯤 일어나야 했다. 햄스터는 이갈이를 하는 동물이고 그러니까 뭔가를 갉는 건 이 친구들에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좀 더 다양한 물체를 갉으면 좋을 것 같아서 나는 햄스터가 터널이나 구조물을 갉는 소리가 들리면 하던 일을 멈추고 이갈이용 장난감이나 간식들을 넣어 주곤 한다. 이렇게 쓰면 별 것 아닌 일로 보이지만 사실 나는 중증 불면증 환자였다. 지금은 수면제를 끊었지만 한때는 수면제 없이 절대 잠에 들지 못할 정도였다. 잠에 들어도 작은 소리나 자극만으로도 금방 깨 버리곤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햄스터가 이갈이를 하는 소리 때문에 잠에서 깨는 건 그리 싫거나 화가 나지 않았다. 처음에는 너무 시끄러워서 당황스럽기도 하고 잠에서 깨는 게 짜증스럽기도 했는데, 조금 시간이 지나서 익숙해지자 이상할 정도로 아무렇지 않아졌다. 특히 우리 햄스터가 나이가 들수록 이갈이 소리를 듣는 게 조금 즐겁기까지 했다. 햄스터를 키우는 사람들은 햄스터가 나이를 먹기 시작하면 잠을 자는 모습만 봐도 무섭다고 한다. 이게 잠을 자는 건지, 나를 두고 어딘가로 가 버린 건지 얼핏 봐서는 구분이 잘 가지 않기 때문이다. 햄스터를 길러 본 사람이라면 잠자는 햄스터에게 조심스레 다가가 숨을 쉬는지 확인해 본 적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갈이 소리가 들린다는 건 햄스터가 아직 내 곁에 멀쩡하게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이갈이 소리를 듣는 게 즐거운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가끔 내가 모르는 우리 햄스터의 과거를 상상한다. 어떤 털을 가진 엄마와 아빠 밑에서 태어났을지, 우리 집에 오기 전에 이가 부러진 상태였다고 들었는데 그 이는 어쩌다 부러졌을지(설치류라 다시 나서 지금은 완전 건치다), 혹시 내가 모르는, 가장 좋아했던 간식이나 야채 같은 게 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그 모든 의문에 대한 답을 얻는 게 영영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내가 이 작은 생명체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와 별개로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우리 햄스터는 인간으로 치면 청소년기쯤 버려졌기 때문인지 체구가 그리 크지 않다. 밥과 각종 영양간식들을 잘 먹어도 살이 잘 찌지 않는다. 성장기에 많이 먹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오해를 살까 봐 덧붙이자면 나는 햄스터가 사람을 잘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햄스터가 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 손을 무서워하는 바람에 병원에서 조금 불편한 것만 빼면 우리 햄스터는 아주 완벽한 최고의 햄스터다. 하지만 우리 햄스터가 처음부터 겁이 많은 성격이 아니었다면? 아기 햄스터일 때는 용감하고 씩씩한 성격이었는데 별로 좋지 않은 어린시절을 보낸 뒤 버려져서 겁이 많은 성격이 된 거라면? 그런 생각을 하면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다. 나는 우리 햄스터가 우리 집에 오기 전에 보냈을 시간들에 대해 영영 알 수 없고 그 시간들이 우리 햄스터에게 끼친 영향을 거의 어떻게 할 수 없다. 그저 지금의 햄스터를 사랑할 뿐이다.

 

 오늘은 이갈이용 덴탈츄를 주면서 햄스터 손을 내 네 번째 손가락으로 살짝살짝 만졌다. 웬일인지 싫어하지 않았다. 그 작고 부드러운 것의 감촉을 원동력 삼아 오늘 하루를 살아야겠다. 할아버지 햄스터는 내 옆에서 쿨쿨 자고 있다. 나는 이제 이 글을 마무리하고 햄스터 똥오줌을 치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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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미류
일상2021. 2. 8. 22:17

 최애 간식인 밀웜을 마지막 남은 부스러기까지 싹싹 긁어먹는 사진으로 오늘의 글을 시작해야지. 골든 햄스터와 같이 살면서 알게 된 점이 몇 가지 있다. 먼저 햄스터는 그루밍을 해서 스스로의 털을 관리한다. 그래서 햄스터는 절대로 물 목욕을 시켜서는 안 된다. 물 목욕을 시켰다가 순식간에 감기나 저체온증으로 크게 아프거나 죽을 수 있다. 우리 집 햄스터도 우리 집에 온 이래로 한 번도 물로 씻긴 적이 없지만 항상 나보다 깨끗하다. 샤워를 하지 않아도 항상 뽀송뽀송하고 부드러운 털을 자랑하며 냄새도 나지 않는다. 한때는 인간의 입장에서 그게 좀 불공평하다고 느낀 적이 있었다. 인간은 며칠만 샤워를 하지 않아도 털이 떡지고 몸에서는 냄새가 나는데... 햄스터는 샤워도 안 하면서 왜 매일 뽀송뽀송할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햄스터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항상 정신없이 그루밍을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햄스터의 입장에서는 그게 샤워하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햄스터가 나보다 깨끗한 건 햄스터가 나보다 자주 씻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이 조그만 동물도 매일 몸을 관리하고 깨끗하게 유지하는데, 내가 씻기 귀찮다는 생각을 하는 건 영장류로서 한심한 일이 아닐까?

 이 작은 동물의 놀라운 점은 그것뿐이 아니다. 골든 햄스터는 무려 소변을 가린다. 물론 개체 차이가 있기 때문에 철저하게 잘 가리는 햄스터와 때로 실수(?)를 하는 햄스터, 다소 자유분방한 햄스터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 햄스터는 철저하게 잘 가리는 편이다. 부드러운 모래로 화장실을 만들어 주면 그 구역에만 소변을 보는데, 그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는 매우 큰 충격을 받았다. 그렇게 똑똑해 보이지도 않는(햄스터 무시가 아니라 실제로 햄스터는 설치류 중에 지능이 높지 않은 편이다) 햄스터가 소변을 가리다니... 인터넷에서 이유를 찾아보았다. 야생의 햄스터는 먹이사슬 최하위에 있는, 가장 약하고 힘이 없는 동물이기 때문에 스스로의 냄새를 지우려는 본능이 있다고 한다. 햄스터 소변 냄새는 굉장히 강하다. 그래서 소변 냄새를 어느 정도 가릴 수 있는 모래 같은 곳에 소변을 보고 그 자리를 파묻는 것 같다. 그래서 화장실에서 햄스터가 소변을 본 모래만 치우면 집을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다. 대변은 가리지 않는다... 아무 데나 보고 던져 놓고 구석에 모아 놓기도 하기 때문에 가끔 청소를 하다 보면 경악할 때가 많다. 물론 햄스터의 대변은 그렇게 냄새가 나지도 않고 더럽지도 않으니까 그냥 청소용 숟가락이나 삽 같은 걸로 푹푹 퍼서 버리면 된다.

 그루밍을 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눈치챌 수 있는 부분이긴 한데, 햄스터는 몸이 굉장히 유연하다.

 대충 이런 느낌이다. 그래서 가만히 햄스터만 보고 있어도 시간이 슥슥 잘 간다. 그루밍할 때는 온갖 기이한 자세를 취하고, 동그랗게 몸을 말았다가 길게 쭉 폈다 하기도 하고, 쳇바퀴를 탈 때는 최선을 다한다. 베딩을 앞뒷발로 파기도 하고 종이를 볼에 넣어서 옮겨 둥지를 만들기도 한다. 어떻게 해야 햄스터가 조금이라도 더 재미있게 지낼 수 있을까 많은 고민을 한다. 터널이나 장난감 같은 것들을 사서 넣어 주기도 하고, 은신처도 이것저것 사곤 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큰 맹점이 있는데 바로 햄스터는 마음에 드는 것만 쓴다는 것이다. 게다가 햄스터 집에 넣어 줄 수 있는, 햄스터에게 해롭지 않은 장난감 같은 건 한정적이다. 오늘도 새로 들어온 상품이 없나, 뭔가 참신한 게 없나 하고 햄스터 쇼핑몰을 구경하곤 한다. 몇 개를 사도 햄스터가 쓰는 건 정해져 있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위에 이야기한 것들에 비하면 사소하지만 골든 햄스터는 발바닥에 젤리가 있다. 그리고 발이 약간 차갑고 촉촉한 느낌이 든다. 설마 오줌 싸고 밟고 다녀서 그런 건 아니겠지..? 이족보행을 하지는 못하지만 앞발을 어느 정도 손처럼 쓸 수 있어서 귀여운 모습이 자주 나온다. 뒷발로 서서 앞발로 씨앗을 까 먹거나 간식을 먹는 햄스터의 모습은 꽤 잘 알려져 있다. 가끔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을 주면 앞발에 힘을 주고 빼앗아 가기도 하는데, 우리 집 햄스터는 보기보다 힘이 굉장히 세다. 손으로 간식을 주고 싶어서 들고 주다가 빼앗기고 황망한 마음으로 햄스터를 쳐다보기만 할 때가 많다. 억지로 만지면 당연히 싫어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만지지 않는데, 가끔 배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잡고 뒤집어 봐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버둥버둥거리는 힘을 보면 이 녀석... 아직 한창이군...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안심이 된다.

 아까 잠깐 언급한 것처럼 햄스터는 그리 지능이 높은 동물이 아니다. 게다가 아주 독립적인 동물이다. 그래서 기르는 사람을 알아본다거나 애교를 부린다거나 그런 건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하지만 밥을 줄 때가 되어서 밥그릇을 들고 나가면 밥 때인 걸 알고 밥그릇 두는 2층으로 올라온다거나, 가끔 자기가 내킬 때면 손으로 올라와서 팔을 타고 등반을 한다거나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개체에 따라서는 사람의 손 위에서 잠들거나 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우리 집 햄스터는 원래 성격이 그런 건지 어렸을 때 유기된 영향인지 겁이 매우 많고 사람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 나도 가끔은 햄스터를 쓰다듬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러면 햄스터 집에 손을 넣고 가만히 있거나 간식을 주며 살살 구슬린다. 햄스터가 내키지 않아한다면 어쩔 수 없으니 쿨한 척 돌아선다. 그러다 보면 가끔은 제가 먼저 친한 척을 해 줄 때도 있는 법이다.

 이 글은 나중에 햄스터가 내 곁을 떠나고 나서 햄스터를 추억하기 위해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너무 일찍부터 주책을 떠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우리 집 햄스터는 쌩쌩하다. 지금도 열심히 똥을 던져 놓고 옆에서 그루밍을 하고 있다. 그래도 일찍부터 써서 나쁠 건 없지. 오늘의 글을 마무리하고 햄스터 똥이나 치우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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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미류
일상2021. 2. 4. 23:47

 

 나는 골든 햄스터 한 마리와 같이 산 지 일 년 반이 조금 넘었다. (이 위에 올린 사진이 우리 집 햄스터임) 보통 골든 햄스터의 수명은 대략 2년 정도라고 한다. 오래 전부터 햄스터에 대한 글을 하나 쓰려고 생각했지만 좀처럼 마음이 잘 먹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요 며칠 동안 잠자는 햄스터의 머리숱(?)이 예전같지 않은 걸 보면서 햄스터 이야기를 한 번 써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우리 집 햄스터는 이제 슬슬 아저씨에서 할아버지가 되어 가고 있고, 아직 건강하긴 하지만 나와 아주 오랫동안 같이 살지는 못할 것이다. 햄스터를 처음 만났을 때의 이야기와 인상깊었던 몇몇 사건들, 햄스터와 같이 살면서 느낀 점들을 솔직하게 적어 놓고 나중에 다시 보면서 추억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처음으로 햄스터와 같이 살았던 건 초등학교 4~5학년 즈음이었다. 당시 친한 친구네 집 햄스터가 새끼를 낳았다. 그 중 두 마리를 데려가지 않겠냐는 권유를 받았고, 두 마리를 데려와서 기르게 되었다. 햄스터는 무조건 한 케이지에 한 마리만 길러야 한다. 변명을 할 생각은 없고, 당시는 지금처럼 햄스터에 대한 사육 정보가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았던 시기였다. 그나마 불행인지 다행인지 햄스터는 두 마리 다 암컷이었다. 그래서 무분별하게 출산을 하고 새끼가 늘어나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햄스터들은 신기할 정도로 오래오래 살아서 내가 중학생이 될 때까지 살아 있었다. 이런저런 힘든 일이 있었던 어린 시절에 햄스터가 쳇바퀴 돌리는 모습을 구경하던 기억은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행복한 기억이 있었던 만큼 햄스터들이 내 곁을 떠난 다음의 상실감이 더 컸다. 어른이 되고 나서도 한참 동안 그 햄스터들이 살아 있을 때, 내 옆에 있을 때 더 잘 해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를 했다. 햄스터가 꿈에 여러 번 나오기도 했다. 햄스터 애호가들 사이에서 유명한(?) 악몽은 돌아가면서 다 꾼 것 같다. 햄스터 수십 마리가 막 섞여서 버려져 있는 꿈, 다른 동물이 햄스터를 잡아먹는 꿈, 사람이 햄스터를 죽이려고 하는 꿈 등등.

 이사를 했고, 고정적인 수입이 생기자 햄스터와 같이 사는 걸 다시 진지하게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SNS나 햄스터 관련 커뮤니티를 둘러보면서 내 머릿속에 있는 햄스터 사육 정보들을 천천히 업데이트했다. 그리고 마트나 샵에서 햄스터를 사지 않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유기 햄스터를 입양할 수 있는 이런저런 경로들을 알아보았다. 필요한 공간이나 비용 등을 가늠하면서 유기 햄스터 관련 정보들을 찾아보면서 새로 알게 된 사실이 참 많았다. 먼저,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유기된 햄스터들을 구조해서 병원에 보내고 아픈 곳을 치료한 다음 좋은 가족을 찾아 주려고 노력하는 분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대형마트 같은 곳에서 햄스터를 판매하는 가격이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직도 햄스터는 너무 쉽게 살 수 있는 동물이고, 또 너무 쉽게 버려진다.

 꼭 어떻게 생긴 햄스터를 기르고 싶다는 생각은 딱히 하지 않았다. 내가 전에 같이 살던 햄스터들은 드워프 햄스터였다. 같은 드워프 햄스터여도 좋았고, 골든 햄스터여도 좋았다. 털 색이나 무늬 같은 건 뭐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햄스터를 사고 파는 업자들에게 인기가 있는 털 색이 있다는 사실도 새로 알게 되었다. 특히 골든 햄스터는 무분별한 교배와 판매의 대상이었다. 인기 있는 털을 가진 새끼를 뽑아내기 위해 근친교배를 반복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털을 가진 새끼들이 태어나면 버리고... 그런 이야기들을 접하며 유기 햄스터를 데려와야겠다는 생각은 점점 더 강해졌다. 어떤 햄스터와 가족이 되어야 할까, 고민하던 시기에 대전에서 어떤 사람이 열 마리가 넘는 골든 햄스터를 한꺼번에 버렸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새끼들도 있었다. 그 새끼들의 절반 정도, 그리고 엄마 햄스터는 죽었다. 실시간으로 공유되는 내용들을 보며 마음이 너무 좋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거기에서 다행히 건강하게 구조된 수컷 햄스터를 우리 집으로 데려오기로 했다. 흰 털과 오렌지색 털이 섞인(시나몬 밴디드라고 한다는 모양이다), 거의 다 자란 햄스터였다.

 햄스터는 건강했다. 구조해서 병원까지 데려가 주시고 돌봐 주신 분들 덕분이었다. 나는 집에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지역의 지하철역에 가서 햄스터를 보호해 주시던 분을 만났다. 그 분은 먹던 사료를 챙겨 주시며 내가 들고 간 이동장으로 조심스럽게 햄스터를 옮겨 주셨다. 햄스터가 스트레스를 받을까 봐 이동장을 천 가방으로 가린 채로 조심조심 집으로 돌아왔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는 사이에 햄스터 이동장을 들여다보고는 너무 사랑스러워서 발을 동동 굴렀다. 보호해 주시던 분은 햄스터가 아주 순한 아이지만 겁이 많다고 하셨다. 집으로 돌아와 미리 꾸며 둔 케이지에 넣어 주자 햄스터는 경계하면서도 이내 조금씩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밥도 잘 먹고 쳇바퀴도 잘 탔다. 정말 착한 친구였다. 지금까지 일 년 반 넘게 같이 지내면서 햄스터가 내 손을 문 건 한 번밖에 없었다. 그것도 피가 날 정도로 세게 문 게 아니라 살짝 물어 본 정도였다.

 스트릿 출신이라 그런지 가리는 음식도 없고 야채도 나보다 잘 먹었다. 햄스터가 먹어도 되는 과일이나 야채들을 검색해 본 다음 가끔 생야채나 과일을 주곤 했다. 처음으로 바나나를 먹였을 때가 아직도 기억난다. 조금씩 찹찹 맛을 보더니 이내 와구와구 볼에 밀어넣었다. 생야채나 과일을 줄 때면 혹시나 볼 안에서 음식이 상할까 봐, 아니면 탈이 날까 봐 양을 조절했다. 삶은 감자를 주기도 했고, 햄스터를 귀여워하는 친구들이 샐러드를 만들다 남은 야채들을 컵에 싸 주기도 했다. 브로콜리나 케일, 파프리카, 당근, 삶은 달걀과 메추리알,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주기도 했다. 하나같이 잘 먹었는데 특이하게도 딸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바나나를 너무 잘 먹길래 다른 과일도 좋아할까 싶어서 딸기도 먹여 보았더니 딸기는 몇 입 먹다가 고개를 돌리곤 했다. 너무 달아서 그런가? 밀웜도 잘 먹지만 새우와 연어는 먹지 않는다. 해산물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다. 집에는 햄스터용 건조 새우와 건조 연어가 쌓여 있다. 건조 연어나 건조 새우를 좋아하는 햄스터가 있다면 주고 싶다.

 오늘은 햄스터 집 청소를 했는데, 햄스터들은 자기가 자고 싶은 곳에 둥지를 꾸린다. 그 둥지를 제멋대로 건드려 놓으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수밖에 없고 나도 햄스터에게 미움을 받고 싶지 않기 때문에 둥지는 몰래 치우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러나 결국 몰래 치우는 데 실패하고 잠깐 동안 이동장에 넣어 둔 뒤 급하게 청소를 했다. 이동장 안에서 바깥을 내다보는 가련한 표정을 한 장 찍어 봤다. 아저씨 골든 햄스터는 지금 옆에서 열심히 접시 모양의 놀이기구를 타고 있다. 나이를 먹긴 했지만 아직 밥도 잘 먹고, 잘 놀고 똥도 잘 싸고 건강한 편이다. 인간 때문에 갖은 고생을 했을 친구인데 지금까지 건강하다는 게 참 대단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그렇다. 가능하다면 앞으로 십 년만 더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중에 더 쓰고 싶어질 때 햄스터 이야기를 이어 써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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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미류
2020. 5. 28. 00:19

 

 많은 동물의 시계가 인간의 시계보다 빠르게 움직인다. 동물과 함께 사는 인간들은 보통 동물을 먼저 떠나보내게 된다. 이별의 이유가 병이나 사고가 아니라고 해서 슬프지 않을 리는 없다. 동물 기준에서는 천수를 누리고 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들 남겨진 사람은 이별의 아픔을 끌어안고 살아가게 된다. 펫로스 증후군이란 반려동물의 죽음으로 인해 겪는 큰 상실감이나 우울감, 슬픔 등을 말한다. 한국에서는 아직 펫로스 증후군의 심각성이 과소평가를 받는 경향이 있다. 그게 동물의 생명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것과 비슷한 맥락의 정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여튼 반려동물에게 (보는 사람의 일방적인 기준에서)'필요 이상'으로 신경을 쓰는 사람들을 조금 이상한 사람으로 보는 시선이 팽배한 건 사실이다. 그런 상황에서 반려동물을 잃은 슬픔을 존중받기란 어려운 일이다. <펫로스 사랑한다 사랑한다>의 저자는 본인 또한 여러 동물을 반려하고 있는 수의사다. 이 책은 반려동물을 잃은 사람들이, 나이 든 반려동물과의 이별을 천천히 준비하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슬픔을 받아들이고 지난 시간들을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도록 도와 주는 책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몇 번인가 동물과 함께였던 적이 있었다. 어렸을 때 학교 앞에서 팔던 병아리나 친구에게서 입양한 어린 햄스터, 달팽이, 열대어에 대한 기억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수명을 전부 다 채우고 건강하게 살다 간 동물들도 있었고 병으로 일찍 죽은 동물들도 있었다. 함께 산 기간이 얼마나 되었든, 종의 특성상 신체적 접촉이 많았든 거의 없었든 모든 죽음은 갑작스러웠고 모든 이별은 마음 아팠다. 세 달을 함께 살았으면 덜 슬프고 십 년을 함께 살았으면 더 슬플까? 사람의 마음이란 건 그렇게 계량할 수가 없다. 정해진 수명 때문에 동물이 더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마음의 준비를 하는 일이 그리 쉽지는 않았다.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더라도 마음이 납득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모든 동물 반려인들이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살아 있을 때 더 함께해 주지 못한 미안함과 자신이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더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었으리라는 죄책감, 이별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데서 오는 분노. 저자는 그런 감정들이 당연한 것이라고 말한다. "각 감정들에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고 그 감정을 돌아보는 과정을 통해서야 비로소 감정의 치유가 시작됩니다." 라는 문장에서도 저자의 생각을 알 수 있다.

 

 이 책에는 나이 든 동물과 함께 살면서 염두에 두어야 할 점, 펫로스를 겪고 극복한 사람들의 실제 사례, 자신의 펫로스 증후군이 얼마나 심각한 정도인지 대략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자가진단 테스트와 같은 유용한 내용들이 실려 있다. 동물을 잃은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들도 몇 가지 소개되어 있었는데,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한다. 아무래도 반려동물과 살아 본 적이 있는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기가 더 쉬운 편이기 때문인 것 같다. 다만 이 책의 거의 모든 이야기와 사례는 개나 고양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이 조금 아쉽다. 소동물이나 특수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이라면 이 책의 내용이 조금 부족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물론 이 책이 하고자 하는 말은 모든 반려인들에게 위안이 되어 주리라 생각된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큰 위로로 다가온 문장은 다음과 같다. "이별의 순간이 지나갔다 하더라도 당신과 반려동물의 관계는 종료된 것이 아닙니다. 둘이 나눴던 시간과 감정을 통해 영원히 연결될 것입니다." 분명, 어떤 관계들은 죽음으로도 끝나지 않는다. 

 

 

Posted by 김미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