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9. 7. 20:05

 

 <헝거 게임>시리즈 영화를 올해 정주행했다. 강인하고 심지 굳은 주인공 캣니스 에버딘의 캐릭터는 참 매력적이었고, 캐피톨과 12구역 사이의 대립에 대해 묘사한 세계관 역시 보는 이를 흥미롭게 하는 탄탄함을 갖추고 있었다.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헝거 게임은 무고한 소년소녀들이 서로 죽이도록 만드는 잔혹한 시스템이다. 헝거 게임 시리즈를 보다 보면 그 잔혹한 시스템의 한 축을 떠받들고 있는 인물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 바로 판엠의 독재자인 코리올라누스 스노우다. 헝거 게임 시리즈에서 스노우는 잔혹하지만 거짓말은 절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는, 그리고 피와 장미를 동시에 떠올리게 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노래하는 새와 뱀의 발라드>는 그 코리올라누스 스노우의 이야기다. 인정사정 없는 독재자인 스노우에게도 당연히 소년 시절이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치밀하고 잔인한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되겠는가.

 

 헝거 게임 시리즈 프리퀄의 주인공이 스노우라는 건 좀 놀라웠다. 독자들이 좀 더 우호적으로 느낄 만한 다른 좋은 인물들이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래하는 새와 뱀의 발라드>를 읽는 동안에는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에 대한 생각은 접어둘 수 있다. 스노우의 앞에 닥친 일들에 대해 생각하기에도 모자라니까. 코리올라누스 스노우는 한때 고귀했지만 지금은 완전히 몰락해 버린 스노우 가문의 마지막 남은 둘(나머지 하나는 그의 사촌 누이인 티그리스다)중 하나다. 나이가 들고 아무런 힘도 없는 그의 할머니, 가족을 위해 밤낮으로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 티그리스가 그의 가족이다. 스노우 일가의 세 명은 완전히 낡은 아파트에서, 그들이 몰락해 버렸다는 사실을 숨긴 채 살아간다. 그러던 와중 음식조차 풍족하게 먹지 못하며, 빈곤을 숨기는 게 급선무인 스노우의 삶을 바꿀 계기가 찾아온다. 바로 스노우가 제 10회 헝거 게임의 학생 멘토로 선정된 것이다. 헝거 게임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건 스노우 본인의 인생을 역전할 기회이자 가문을 재건하기 위한 시발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스노우와 짝을 짓게 된 조공인은 우승하는 데 가장 불리하다고 평가받는 12구역의 여자아이인 루시 그레이 베어드다. 스노우는 루시 그레이 베어드를 최대한 이용할 마음을 먹게 된다.

 

 루시 그레이 베어드는 어딘가에서 구한 화장을 하고, 무지갯빛 알록달록한 드레스를 입고 나타난다. 그녀는 스스로를 처음으로 보이는 자리에서 노래를 함으로써 모두의 주목을 끈다. 루시에게 음식을 구해다 주고, 루시의 삶에 대해 들으며 스노우는 점점 루시라는 인물에게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스노우 본인과 루시 모두를 위해 루시를 헝거 게임에서 우승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한편 학생 멘토들을 둘러싸고 이런저런 사고가 발생한다. 어떤 멘토는 헝거 게임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전에 살해당하고, 어떤 멘토는 뱀에게 물려 끔찍한 독을 주입당하고 정신적으로 불안해진다. 구역에서 캐피톨로 이주했지만 여전히 자신을 구역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세자누스의 돌발 행동들 역시 헝거 게임의 분위기를 심상치 않게 만든다.

 

 스노우는 루시 그레이 베어드가 헝거 게임에서 우승하게 만들 수 있을까? 헝거 게임이 끝난 뒤 스노우는 어떻게 될까? 이런 자세한 내용에 관해서는 서평에 쓰지 않는다. 하지만 독자는 스노우의 미래에 대해 확실히 알고 있다. 수십 년이 지난 후 그는 판엠의 독재자가 된다. <노래하는 새와 뱀의 발라드>의 재미있는 점은 바로 거기에 있다. 거의 대부분의 독자는 코리올라누스 스노우가 잔혹한 독재자가 되는 미래를 알고 있다. 그랬던 스노우에게도 누군가를 동정하고, 가족들과 사소한 행복을 맛보고, 사랑에 빠지고 달콤한 꿈을 꾸고, 갈팡질팡하고 초조해했던 과거가 있다. 소설을 읽다 보면 스노우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 그럴 때마다 이런 소년이 나중에는 그 스노우가 된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씁쓸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씁쓸함과는 별개로, 이 책은 헝거 게임 시리즈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훌륭한 선물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몰랐던 판엠, 캐피톨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본편에는 나오지 않은 또 다른 매력적인 캐릭터들까지. <노래하는 새와 뱀의 발라드>는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좀처럼 놓을 수가 없는 소설이다. 

Posted by 김미류
2020. 8. 26. 14:10

 

 사람의 기억이란 우리가 믿는 것보다 훨씬 불완전하다. 기억의 불완전성에 다룬 유명한 작품으로 영화 <라쇼몽>이 있다. 같은 사건을 사람에 따라 다르게 기억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실제로 일어났던 일의 선후관계를 뒤죽박죽으로 기억하기도 한다. <사악한 자매>의 도입부는 그런 기억의 불완전성에 관한 내용이다. 주인공인 레이첼은 어머니를 죽인 기억을 가지고 있다. 레이첼은 어머니의 삶을 빼앗았다는 죄책감 때문에 15년 동안이나 스스로를 정신병원에 감금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어머니를 죽였다는 자신의 기억이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사건의 진상을 찾아 정신병원을 떠난다. 소설은 현재 레이첼의 시점, 그리고 레이첼의 어머니인 제니의 과거 시점으로 번갈아가며 진행된다. 진실을 알기 위해 분투하는 레이첼의 현재와 서서히 진상을 드러내는 제니의 과거가 교차되며 독자의 마음을 들었다 놓았다 한다. 이렇게 시점을 교차하는 방식이 재미를 더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라고 느꼈다. 흥미가 고조되는 부분에서 내용이 다른 시점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뒷 내용을 알고 싶어서 책을 빨리 읽게 된다. 레이첼은 동물이나 곤충과 이야기할 줄 안다. 레이첼은 그런 자신이 잘못된 것이고, 사실은 병 때문에 동물과 대화할 줄 안다고 착각하는 건 아닌지 계속해서 고민한다. 독자의 고민도 이어진다. 레이첼은 정신적 병증이 있는 인물로 보인다. 레이첼이 진짜 자기 부모를 죽인 건 아닐까? 아니면 정말 다른 진범이 있는 것일까?

 

 과거의 제니와 현재의 레이첼의 이야기가 각각 전개되면서 드러나는 한 인물이 있다. 바로 레이첼의 언니이자 제니의 큰딸인 다이애나다. 레이첼과는 9살 터울인 다이애나는 아름답지만 위험한 여성이다. 내용 누설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자세히 쓰지는 않겠지만, 제니가 다이애나의 어린 시절에 대해 서술한 부분을 읽고 있으면 가슴이 서늘해지고 손발이 차가워지는 느낌이 든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어린아이의 태연한 악의, 그리고 그 악의를 감당할 수 없지만 아이를 지켜야 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무서우면서도 안타깝다. 결국 레이첼은 어렸을 때 가족들과 함께 살던 숲 속의 집으로 향한다. 그 숲 속의 집은 분명 레이첼이 아름답고 행복한 기억들을 잔뜩 만들었던 공간이지만, 현재의 레이첼에게는 거대한 악의와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곳일 뿐이다.

 

 <사악한 자매>는 여름에 읽기 딱 좋은 스릴러 소설이다. 섬뜩한 분위기, 과거와 현재가 세련되게 교차하는 장면들을 보면 영화로 만들어져도 재미있을 것 같다. 수많은 야생동물들이 살아가는 숲,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고 뭐든 배울 수 있는 큰 별장. 제니는 그 숲속에서 하얀 곰 새끼를 목격하기까지 한다. 말로만 들으면 아이들을 키우기에 아주 이상적인 환경일 것만 같다. 모든 게 괜찮아질 거라는 제니 부부의 마음이 이해가 가서 그들이 맞은 결말이 더 안타까웠다. 살아남은 레이첼이 마주한 진실은 무엇인지, 숲 속의 집으로 돌아간 레이첼이 어떤 결말을 맞는지에 대해서는 당연히 적지 않는다. 누군가가 인터넷에 써 놓은 줄거리를 읽는 것보다 직접 읽는 게 몇 배는 더 재미있을 소설이다. 한 번에 훌훌 읽어버릴 수 있는 스릴러 소설을 찾는다면 <사악한 자매>를 읽는 건 꽤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Posted by 김미류
2020. 8. 25. 19:13

 

 '남들이 뭘 몰라서 저러는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결단코 단 한 번도 없는가?' 이 책의 표지에 쓰여 있는 문장이다. 양심적으로 고백하자면 당연하게도 한 번도 없지 않다. 나와 다른 의견을 갖고 있는 사람을 보고 그가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거라고 생각한 적도 많다. 물론 나만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가진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드물지 않을까? <내 안의 차별주의자>라는 제목은 그런 의미에서 참 적절하다. 차별주의적인 면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나를 포함해 거의 모든 사람들은(이하는 편의상 '사람들'이라고 줄여 쓴다) 자신과 다른 존재들과 자신 사이에 선을 긋는다. 나와 성별이 다른 사람,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적은 사람, 나와 사회적 계급이 다른 사람, 나와 다른 종교를 믿거나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을 그 선 바깥으로 밀어낸다. 그 바깥에 있는 이들을 적극적으로 배척하거나 박해하지 않는다고 해도, 선을 긋는다는 행위 자체가 그런 차별의 시작이 될 수 있다. <내 안의 차별주의자>는 사람들이 어떻게 내 편과 네 편을 나누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책의 목차를 훑어보면 일, 성, 이주, 빈부 격차, 범죄, 소비, 관심, 정치라는 키워드로 내용이 분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일' 파트는 노동에 대한 내용이다. 저자는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말, 열정을 가지라는 말이 보여주지 않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많은 이들의 멘토가 되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이들은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건 그들이 좋아하는 일을 해서 성공을 거뒀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려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의 열정을 착취당한다. '열정 페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또, 육체적 노동과 정신적 노동이 분리되면서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종류의 노동을 하는 이들을 타자화하게 되었다. '성' 파트에서는 말 그대로 성차별에 대해 다룬다. 이 책은 노동 시장과 가족 관계 안에서의 성차별부터 시작해서, 남성과 여성이 차지하는 공간의 차이, 여성의 목소리 높낮이가 변화한다는 사실, 피임과 성행위에서의 불평등에 대해서도 짚는다. 사회가 남성에게 남성다움을 강요함으로써 남성과 여성 모두를 좋지 않은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다는 중요한 사실에 대해서도 빠뜨리지 않는다. 다른 주제들에 관해서도 '소속 범주로서의 '우리'가 노동, 성별, 이민, 빈곤, 재산, 범죄, 소비, 관심, 정치의 영역에서 어떤 구조를 띠는지, 또 그 안에서 '남들'을 바라보는 독선적 시선이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살핀다'(서문,14p).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게 읽은 건 '소비'파트였다. 모든 사람들은 무언가를 소비하며 살아간다. 내가 소비하는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낸다. 하다못해 그냥 닭고기를 먹을지, 동물복지 닭고기를 먹을지, 닭고기를 먹지 않을지 선택할 수 있는 사람과 선택할 수 없는 여건에 놓여 있는 사람이 있다. 저자는 유기농, 동물복지, 공정무역, 친환경과 같은 의식이 담긴 소비가 사회적 신분을 드러낸다고 말한다. 스와로브스키의 상속인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테라스에 채소를 심어 먹으면 된다'라는 조언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테라스에 채소를 심어 먹을 수 있는 시간적, 공간적, 경제적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존재하리라는 생각은 할 수 없었던 걸까? 덧붙이자면 나는 지속 가능한 소비에 분명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의식적 소비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소비하는 것을, 어떤 제품을 사는 것을 아예 포기하는 게 지속 가능한 세상을 만드는 길이라는 저자의 의견은 분명 생각해 볼 만하다. 친환경 기업에서 화장품을 열두 개 사는 쪽보다는 화장품을 사지 않는 쪽이 더 친환경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다른 기업에서 화장품을 열두 개 사는 쪽보다는 친환경 기업에서 사는 쪽이 더 낫겠지만. 어떤 기업들은 분명 자신들이 더 윤리적이라는 이유로, 더 친환경적이라는 이유로 소비를 부추긴다. 그런 소비를 하는 사람들이 '도덕적인 주체로서 돈이 없고 시간이 없으며 소비 문제에 무지한 사람들'(189p)을 무시하게 된다는 점은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독선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는 문장으로 이 책을 마무리한다. 다른 사람들이 나와는 달리 별 생각 없이 살아간다고 단정짓는 건 매우 쉬운 일이다. 그렇게 단정짓고 나면 타인에 대해 이해할 필요도 없고, 타인이 무슨 행동을 하든 한심하게 여기면 끝이다. 하지만 사람이란 그렇게 별 생각 없지도 납작하지도 않은 존재다. 내가 하는 행동에 이유가 있다면 다른 사람이 하는 행동에도 이유가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게 옳다. <내 안의 차별주의자>는 타인에게 조금 더 관대해지고 싶은, 그리고 자신에게는 조금 더 엄격해지고 싶은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되어 줄 좋은 책이다.

Posted by 김미류
2020. 8. 17. 23:16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고 싶어도 마음처럼 잘 되지 않는 시기다. 평소에도 여행에 관한 책을 좋아하는 편인데, 요즘은 정말 여행 책을 읽는 게 삶의 낙 중 하나가 되었다. <세계로 나간 일기도둑>은 '프로 백수'를 꿈꾸는 저자가 세계를 돌아다니며 겪은 일들과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미국, 브라질, 모로코와 몰타, 러시아, 리가, 에스토니아 등 수많은 나라들을 여행했다. 즐거운 일을 겪기도 했고 별로 좋지 않은 일을 겪기도 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그 중에서는 친절하고 유쾌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잘 이해가 가지 않고 불쾌한 사람들도 있었다. 여행이 즐거운 일이라고 해도 여행의 모든 순간이 행복하기만 할 수는 없다. 이 책에는 여행 중에 겪을 수 있는 즐거운 이야기도 힘든 이야기도 있다. 혼자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는 저자의 모습은 용감하고 거침없지만, 때로는 그냥 평범한 청년 같기도 하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 저자가 조금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 책은 여행 정보 책이라기보다는 여행 에세이다. 하지만 저자가 여행을 다니며 얻은 소소한 팁이나 정보에 대해서도 잘 나와 있다. 크루즈 여행에 대해 설명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유럽 내에서는 크루즈 여행을 하는 일이 많다고 한다. 이동하는 동안에도 배 안에서 즐길 거리가 많다는 게 장점이다. 크루즈 여행에 사용되는 배는 보통 17층 높이의 초대형 선박이라고 하는데 상상이 잘 가지 않는다. 그 정도로 큰 배라면 배멀미에 대한 고민도 좀 덜 수 있을 테니, 나중에 여행을 다닐 수 있는 시기가 된다면 큰 배를 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를 잡는 방법에 대해서도 여행지에 사는 누군가의 집에서 무료로 잘 수 있는 카우치 서핑, 다른 사람과 집을 교환해 숙박하는 홈 익스체인지, 단기간 동안 일을 하고 그 대가로 숙박을 하는 워크어웨이와 같은 방법들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거의 모든 방법들을 적극적으로 시도해 본 모양이었다. 

 

 저자는 위에 말한 것처럼 다양한 나라를 여행했고 다양한 경험을 했다. 도중에는 브라질의 아마존 정글에서 7박 8일 동안 머물기도 했다. 여행사를 통해 아마존에서 생활하는 프로그램을 예약했는데, 요즘에는 온수도 에어컨도 잘 나오고 저자가 방문했을 때 벼락 때문에 인터넷이 끊겨 있었지만 원래는 인터넷 선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마존에서 며칠 동안 지내게 된다면 인터넷 같은 건 되든 안 되든 그만이 아닐까. 처음에야 조금 불편하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자연 경관은 아름답고, 사람들은 느긋하고, 요리는 자연에서 구한 재료로 만들어진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도 있다. 투어 가이드가 지도나 시계, 나침반을 쓰지 않고 나무나 강의 흐름을 보고 길을 찾아간다는 것이다. 낚시를 하고 싶으면 어장이 아니라 그 물고기가 사는 곳으로 간다. 동물이 보고 싶으면 그 동물을 가두어 둔 곳이 아니라 그 동물을 부를 수 있는 곳으로 간다. '투어의 대부분이 환경은 내버려두고 이를 관찰하는 것'이라는 저자의 말이 재미있었다. 브라질에서의 경험들은 저자에게 천천히 즐기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항상 무언가에 쫓기며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 사람들이 깨닫기 어려운 즐거움이다. 

 

 <세계로 나간 일기도둑>은 정말 저자의 일기장을 읽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 주는 책이다. 가끔은 말하는 주제가 다른 곳으로 튀기도 하고, 누군가의 불평을 하거나 흉을 보기도 하고, 별로였던 도시나 별로였던 사람에 대해서는 별로였다고 말한다. 저자 자신의 버킷리스트나 저자가 해 봤던 다른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런 점이 조금 산만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나는 다른 사람의 시시콜콜한 이야기 듣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서 재미있게 읽었다. 여행을 떠날 수 없는 요즘 답답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시원하게 만들어 줄 만한 소탈한 책이었다. 

Posted by 김미류
2020. 8. 5. 15:35

 

 인터섹스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설을 읽은 건 처음이었다. 혹시나 오해를 살까 봐 첨언하자면 그런 소설이 지금까지 없었다는 게 아니라, 내가 그런 소설을 읽는 게 처음이라는 뜻이다. 인터섹스란 생식기나 염색체, 성 호르몬 등 신체적 특징이 남성 혹은 여성의 성별이분법적 구조에 정확히 들어맞지 않는 사람을 의미한다. 인터섹스에 대해 이야기하면 어떤 사람들은 '그런 게 어디 있냐'와 같은 반응을 보이곤 한다. 거의 대부분의 인터섹스는 출생 이후 또는 성장 과정에서 남성 혹은 여성으로 정정당한다. 부모나 의료인이 외모 혹은 외부 생식기의 모양을 바탕으로 인터섹스 당사자를 남성이나 여성으로 편입시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인터섹스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남성이나 여성으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하여튼 인터섹스는 사회적으로 매우 소수이고 또한 약자이다. 소설집 <적어도 두 번>의 첫 번째 단편인 <호르몬을 춰줘요>의 주인공인 도림은 인터섹스다. 도림은 자신이 남성으로 살아가기를 결정하든 여성으로 살아가기를 결정하든 그 과정에서 매우 많은 돈이 들어갈 거란 사실을 알고, 그에 대한 대비책으로 몰래몰래 로또를 산다. 그(성별중립적인 표현으로 사용한다)는 자신이 여중에 가야 할지 남녀공학에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이 사회에서 인터섹스 당사자들은 그 자신으로 살지 못하고 다른 어떤 존재가 되어야만 한다. 저자가 도림의 고민을 아주 비참하고 처절하게만 그려 놓지 않았다고 한들 우리는 그 고민이 결코 가볍지 않음을 간접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다.

 

 소설집 <적어도 두 번>에는 인터섹스뿐 아니라 장애인(단편 '적어도 두 번')이나 레즈비언(단편 '물질계') 역시 비중 있게 다뤄진다. 소수자들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소수자들은 자신들이 소수자임을 어디에서나 마음껏 드러낼 수 없기 때문에, 얼핏 보기에는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약한 사람들은 그들에게 굳이 신경을 쓰지 않는 이들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단편 <홍이>에는 한 노인이 지하의 작은 방에서 고독사한 뒤 무려 7개월 가량 발견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단편 <에콜>의 화자는 몇 년째 공시 준비에 매달려 있는 공시생이다. '좁고 가파른 땅 위에 최대한 많은 사람이 살 수 있게 만들어놓은 시멘트 무더기 같은 집'에 살면서 매일같이 옆집 여자가 전화하는 목소리를 듣는다. 옆집 여자는 손님에게 여자들을 보내고, 늙고 병든 부모를 부양한다. 단편을 읽다 보면 에콜의 사장이라는 옆집 여자가 어떤 일을 하는지, 그 여자의 삶이 얼마나 피로할지에 대해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리고 얇은 벽 너머로 옆집 여자의 일상을 하나하나 들을 수밖에 없는 화자 역시 적잖이 힘들고 피로한 삶을 살고 있으리라 짐작 가능하다. 

 

 소설가 구병모는 이 소설집에 대해 '당신은 이 소설들을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는 읽을 수 없다. 이 책과의 만남이 편안하고 유쾌한 경험을 보장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전적으로 이 말에 동의한다. 이 소설집에 실린 거의 모든 단편을 읽는 내내 조마조마하거나, 불쾌하거나, 찝찝하거나 씁쓸했다. 하지만 누군가 내게 이 책이 싫었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 같다. 나는 이 소설을 읽고 싶었다. 정확히는 이런 소설을 읽고 싶었다. 이 책은 약하고, 불안하고,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성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이야기다. 나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어쩌면 우리가 상상조차 해본 적 없을 누군가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읽은 단편은 <모여 있는 녹색 점>이었다. 이 소설은 사전 정보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한 호흡으로 읽어내려가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용에 대해서는 굳이 쓰지 않는다. 책을 읽는 데 걸린 시간보다 책을 읽은 뒤 이 책에 대해 생각한 시간이 더 길었다. 이 작가의 차기작이 나온다면 그 책도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Posted by 김미류
2020. 8. 5. 12:22

 

 예전부터 내가 예민한 편이라고 생각했었다. 좋은 의미로도 그렇고, 물론 나쁜 의미로도 그렇다. 다른 사람의 반응을 지나치게 신경 쓰는 바람에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면 그 사람의 표정이나 말투, 목소리의 높낮이를 살폈다. 내가 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는 않았는지, 그 사람이 나를 싫어하지는 않는지가 항상 걸렸다. 물론 상대방의 표정이 좋지 않거나 목소리에 힘이 없는 건 나와 대화하면서 불편한 점이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제 잠을 제대로 못 잤거나, 체했거나, 집에 좋지 않은 일이 있거나, 큰 고민이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서 나는 예전처럼 상대방의 눈치를 샅샅이 살피지는 않게 되었다.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인 저자가 제목처럼 예민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먼저 예민한 사람들의 보편적인 특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음으로는 예민한 기질을 가진 유명인들과 수많은 일반인의 사례를 소개하고, 예민한 기질을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설명한다.

 

 사례들을 읽어 보니 나 자신에게 해당되거나 주변에서 본 것 같은 이야기들이 많았다. 겉보기에는 화려하지만 공허한 내면을 가지고 자해를 하는 사람이라거나, SNS에 집착하고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받아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층간소음에 너무나 민감해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 건강 염려증이 심한 사람……. 비행 공포증이 있는 사람도 있고, 강박장애가 있는 사람도 있다.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으면 몸 상태가 좋지 않아지는 사람도 있다. 책에는 그 밖에도 다양한 문제점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례와 사례에 적합한 조언들이 실려 있다. 개인적으로는 저자가 우울증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고 싶다는 사람에게 직장을 먼저 그만두기보다 직장 생활을 하며 치료를 병행하려는 시도를 해 보라는 조언을 한 부분이 인상깊었다. 물론 우울증을 앓는 상태로 직장 생활을 하는 게 쉬운 건 아니지만,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라면 직장을 바로 그만두었다가 좋지 않은 상황이 될 수 있다. 고정적인 수입과 소속이 없다는 압박감이 우울증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휴직을 하거나 직장 생활 중에 치료를 받으려는 시도를 해 본 뒤, 직장을 그만두는 게 가장 좋은 선택이라는 결론이 나면 그 때 직장을 그만두어도 늦지 않다. 저자의 조언이 현실적이라서 좋았다. 

 

 저런 사례들을 보면 예민한 기질이 나쁜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예민한 사람들은 잠도 잘 못 자고, 긴장도 많이 하고, 우울하기도 하고, 하여튼 이런저런 곤란한 일들을 겪는 게 아닌가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 보면 일을 완벽하게 처리하지 못해 조바심을 내는 사람은 일을 완벽하게 처리하려는 노력을 한다는 뜻이다. 사소한 것 하나라도 거슬려하는 사람은 꼼꼼한 사람일 수 있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자기관리 방법, 예민성을 관리하여 에너지를 유지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예를 들면 자연스러운 표정과 말투를 만드는 방법, 쉴 때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완전히 쉬는 방법, 수면을 컨트롤하는 방법 등이다. 나는 쉬고 있을 때도 완전히 쉬지 못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타입인데, 책에서 소개한 긴장 이완 훈련이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 밖에도 자는 시간보다 깨는 시간에 집중해서 수면 시간을 조절하라는 것도 유효한 조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은 전문가가 쓴 책이기 때문에 다양한 통계, 의학적 근거를 이용해 내용을 뒷받침한다. 그 점에서 좀 더 신뢰가 가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사례를 많이 다루었고 쉽고 간단한 조언들이 대부분이라 어렵지 않은 마음으로 읽을 수 있다. 예민성과 주요 우울증상을 자가 진단할 수 있는 테스트지가 실려 있어 스스로의 상태를 간단히 알아볼 수 있다. 물론 자가 진단은 자가 진단일 뿐이므로 우울증이라는 생각이 들면 지체 말고 병원에 가는 게 좋다. 요즘은 신경정신과 진료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많이 옅어졌고,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등 정신적 질환을 아예 앓고 있지 않은 사람 쪽이 더 드물 정도다. 예민한 기질이나 우울증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일단 이 책을 읽어 보는 것도 좋다. 공감 가는 내용이 많은 책이었다. 

Posted by 김미류
2020. 7. 27. 03:03

 

 <교토의 디테일>은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지만 아주 본격적인 여행 가이드북은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만약 교토로 다시 여행을 떠나게 된다면 나는 이 책을 챙겨 가고 싶다. 이 책은 제목처럼 저자가 교토에서 주목한 크고 작은 디테일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디테일이라는 개념이 처음에는 그리 잘 와 닿지 않을 수도 있는데, 세심한 아이디어라고 쉽게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책 초반부에는 간사이 공항의 우산 제공 서비스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우산 제공 서비스란 공항 안에서 주인이 없이 버려진 우산들을 회수해서, 그 중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멀쩡한 우산들을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비치해 두는 정책을 말한다. 여행지에서 비나 눈이 오면 우산을 사기가 영 번거롭다. 여행객들은 우산을 사더라도 잠깐 쓰고 공항에서 버리고 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공항에 버려진 우산들 중에는 멀쩡한 우산이 꽤 많다. 책을 읽으며 이런 정책을 다른 공항에서도 도입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토 여행을 다녀온 게 오래 전인데도 책을 읽다 보니 내가 다녔던 장소들과 그에 연관된 추억들이 떠올라 신기했다. 저자는 기요미즈데라와 긴카쿠지를 언급하며 그 관광지들의 특색 있는 입장권에도 주목한다. 긴카쿠지의 입장권을 받았을 때 부적처럼 생긴 모습이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기요미즈데라까지 올라가는 길은 그 길 자체만으로 관광지가 될 정도로 교토 특유의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 길가에 있는 커피 트럭 중 하나는 교토의 랜드마크 모양들을 쿠키 모양으로 만들어 음료 위에 꽂아 준다고 한다. 긴카쿠지로 연결되는 철학의 길 역시 많은 관광객들이 걸어 보는 명소다. 그 길에는 '스즈키 쇼후도'라는 일본 전통종이 공예품 가게가 있다. 전통종이는 물론이고, 전통종이로 만든 온갖 다양한 상품들을 판매한다. 교토를 방문하는 관광객이라면 일본 전통 문화에 관심을 가진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전통종이는 일본 문화의 특색을 담고 있으면서도, 부피가 작고 망가질 가능성이 낮아 기념품으로 안성맞춤이다. 교토의 관광지에 잘 어울리는 가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교토에 방문했을 때 이런 가게를 찾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었다. 

 

 다양한 문구나 기발한 아이디어 상품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으며 정신없이 메모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수백 가지 털실과 뜨개질 키트를 판매하는 로컬 실 브랜드 '아브릴', 직원들이 손글씨로 직접 상품들을 큐레이션해 놓은 소품샵 '네오 마트', 한국에도 많은 매장이 있어 이제는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한 '무인양품', 온갖 물건들이 있는 잡화점 '로프트', 각각의 제품 옆에 그 제품과 관련된 책을 놓아 둔 선물 가게 '투데이 이즈 스페셜' 등 물건을 구경하는 걸 취미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꼭 방문해 보고 싶은 가게들을 잔뜩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인상깊었던 점은 로프트에서 우산 판매 코너에 저울을 두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위에서도 말했듯 우산은 짐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우산의 무게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당연히 많다. 그래서 우산의 무게를 재 보고 비교할 수 있도록 저울을 두었다는 모양이다. 이런 가게들을 방문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것저것 살펴보게 된다. 나중에 교토에 가게 된다면 방문하고 싶은 마음에 가게 이름들을 잘 적어 두었다.

 

 <교토의 디테일>에서는 교토의 숙소, 방문해 볼 만한 카페나 식당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다. 저자가 그 장소들을 방문하거나 이용했을 때 발견하고 느낀 점들을 세심하게 정리해 두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저자는 단순히 여행을 즐기는 것을 넘어서 여행지에서도 공부를 한 것이다. 저자가 공부 노트를 쓰는 대략적인 요령은 책에 정리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서평에 쓰지 않는 쪽이 좋을 것 같아 쓰지 않는다. 저자의 기록물을 보고 나니 저자의 다른 저서인 <도쿄의 디테일>도 읽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교토 여행을 떠나고 싶은 사람은 물론이고, 마케터로서 자신만의 공부를 하고 싶은 사람에게도 도움이 될 만한 책이다. 

Posted by 김미류
2020. 7. 27. 01:37

 

 재미있다. 이 책의 서평을 어떤 문장으로 시작할지 한참 동안 고민했다. 일단 재미있다. 이 책은 <내 어머니의 기억>이라는 작품으로 끝난다. 주인공인 '나'의 어머니는 고칠 수 없는 병을 앓고 있어 2년밖에 살 수 없다. 어머니는 '나'를 오래오래 보기 위해 우주 여행을 떠난다. 우주선 안에서는 시간이 천천히 흐르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우주 여행을 하다가 몇 년에 한 번씩 딸을 만나러 지구에 들르고, 짧은 시간을 딸과 함께한 후 다시 우주로 떠난다. '나'는 사실상 어머니 없이 자란다. 생리를 시작했을 때도, 브래지어를 골라야 할 때도 어머니는 곁에 있어 주지 못했다. 자라면서 어머니를 원망하기도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아주 짧은 작품이지만 그만큼 강렬하다. 이 소설집에 실린 대부분의 작품들은 가족에 대해 이야기한다. 소설 속 많은 사람들은 인간에게 정해진 한계를 뛰어넘으려 하고, 어떤 이들은 실제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인간 같지 않은 존재가 된다. 이 책에는 정해진 삶을 살고 죽는 사람도 영원에 가까운 삶을 사는 사람도 나온다. 그리고 전자에 속하는 이와 후자에 속하는 이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서로 사랑한다고 해서 서로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 책에 실린 싱귤래리티 3부작, <카르타고의 장미>, <뒤에 남은 사람들>, 단편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를 읽어 보면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카르타고의 장미>의 서술자는 자신의 동생인 리즈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리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히치하이킹만으로 미국 대륙을 횡단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아버지가 허락해 주지 않자 집을 나간다. 그리고 미국 곳곳에서 가족들에게 엽서를 보내며 여행을 다니다 세 달만에 돌아온다. 시간이 흘러 리즈는 대학에 가고, 인공지능에 대해 공부하고, 인류가 몸이라는 그릇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며 스스로의 두뇌를 그 연구의 실험체로 사용하기로 한다. <카르타고의 장미>는 리즈라는 인물이 걸어온 그 모든 순간들을 언니인 서술자가 옆에서 지켜보는 구성이다. 몸에서 벗어나기 위한 리즈의 여행이 어떻게 끝났는지에 대해서는 여기서 언급하지 않는다. 직접 소설을 읽어 보는 편이 가장 좋다.

 

 <뒤에 남은 사람들>에서는 독자에게 싱귤래리티라는 개념이 무엇인지 알려 준다. 소설 속 문장을 조금만 인용해서 아주 간단하게만 짚는 게 좋을 것 같다. "나는 싱귤래리티 원년에 태어났다. 인간이 처음으로 기계 속에 '업로드'된 해였다." 많은 사람들은 육체를 포기하고 정신만으로 영원히 살아가기로 한다. 그리고 '뒤에 남은 사람들'은 시뮬레이션이 되는 대신 '진짜 현실'을 살아가기로 결정한다. 떠나 버린 사람들과 남겨진 사람들, 어느 쪽이 옳은 선택을 한 건지, 어떤 선택을 한 사람들이 진짜 행복한 건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싱귤래리티 3부작의 마지막 단편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에는 물질 세계를 경험해 본 적 없는 아이가 서술자로 등장한다. 아이의 어머니는 서술에 의하면 "싱귤래리티 이전의 사람, 고대인이다". 실체를 가지고 살아가는 그는 우주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아이와 함께 여행을 한다. 거기에서 순록 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싱귤래리티 3부작은 사랑하지만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가족들의 이야기다. 그 차이에서 오는 어긋남이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순간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우리는 누군가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해도 그를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인간의 노화를 막을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는 세계를 배경으로 한 단편 <호>역시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그 기술이 개발되기 전에 태어난 주인공은 죽음을 예비하는 인간으로 살아가지만, 이내 영원히 살 수 있게 된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의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련의 과정들을 몇 번이고 반복한다. 하지만 결국에는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인간이 영원히 살아간다면 언젠가는 모든 것으로부터 권태를 느끼지 않을까? 나는 영원히 살아가는 걸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시대의 사람이니까 이런 의문을 갖게 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원격으로 간병을 할 수 있는 기술에 대한 소설 <곁>, 사랑하는 아내를 빼앗아 간 달과 싸우는 남자의 이야기 <만조>, 등 그 밖에도 SF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단편들로 가득 차 있다. <모든 맛을 한 그릇에 : 군신 관우의 아메리카 정착기> 역시 읽는 내내 조마조마함을 느끼게 해 준 신선한 소설이었다. 

 

 저자 켄 리우는 머리말에서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결국 누구도 아닌 자기만의 이야기를 쓴다. 이로써 우리는 자기 운명의 저자가 된다." 과연 이런 이야기들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할 법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는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와 이어진다는 경험을 하게 해 준 책이다. 이런 독서 경험은 마음 속에서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Posted by 김미류
2020. 7. 26. 00:55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은 기본적으로 재미있다. 말장난 같지만,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을 읽을 만한 사람이라면, 보통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책에 대한 책을 재미있다고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토록 재미난 집콕 독서>는 책에 대한 책이다. 저자는 자신의 일상과 잡학을 자연스럽게 책에 엮을 줄 아는 사람이다. 이 책에는 스물여섯 편의 이야기가 각각 다른 책과 엮여 소개된다. 사람들은 온갖 것들을 소재나 주제로 삼아 책을 쓴다. 이 책에 소개된 책들만 해도 맥주, 연필, 제사, 빵, 부적, 보자기, 잡초, 곤충이나 늑대, 심지어 영국 집사까지 다양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는 잡다한 지식을 쌓는 걸 꽤 좋아하는 편이다. 누군가는 그런 지식들이 '먹고 사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며 평가절하하지만,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물건들부터 얼핏 보기에 나와는 별 상관이 없어 보이는 개념들에 대해 읽고 생각하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른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하여튼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이런 책만큼 재미있는 책이 없다. 시간도 잘 가고 읽는 맛도 있는데 인문학적 소양까지 쌓을 수 있으니까.

 

 도스토옙스키는 가족을 사랑하는 책임감 있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임신한 아내가 아이를 낳을 때 산파를 찾아가지 못할까 봐 집에서 산파의 집까지 찾아가는 길을 매일매일 연습 삼아 왕복했다는 일화가 책에 실려 있다. 도박 중독으로 고생을 하긴 했지만 죽은 형의 빚을 대신 갚아 주며 형의 가족들까지 책임졌다. 저자는 도스토옙스키의 생애와 철학에 대해 소개한 책 <매핑 도스토옙스키>를 소개하며 이런 이야기들을 늘어놓는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매핑 도스토옙스키>라는 책까지 읽어 보고 싶어진다. <주석 달린 셜록 홈즈>를 소개하면서 하는 이야기도 흥미롭다. 셜록 홈즈 시리즈에는 당시 영국의 사회 모습, 풍습, 경제, 법률 등이 아주 사실적으로 드러나 있다는 것이다. 셜록 홈즈 시리즈를 다 읽긴 했지만 홈즈가 당시 영국에서 이루어졌던 신속한 우편 배달 서비스의 수혜자라는 사실은 몰랐다. 셜록 홈즈 시리즈를 다시 한 번 읽으면서 숨은 그림 찾듯 당시 사회를 세밀하게 보여 주는 부분들을 짚어 보는 것도 재미있어 보인다. 

 

 <이토록 재미난 집콕 독서>에서 다루는 흥미로운 내용들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딱 하나만 자세히 밝히자면, 연필은 왜 육각형일까? 그에 대한 답이 이 책에 나와 있다. 연필은 붓을 모방한 물건이었기 때문에 초창기에는 둥글었다고 한다. 하지만 연필 생산량이 늘며 생산에 손이 덜 가는 사각 형태로 바뀌었다. 거기에서 사각보다는 쓰기 편하고 원통형보다는 만들기 쉬운 팔각형 연필이 나온 것이다. 삼각형 연필은 손에 잘 맞고 잘 구르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음에도 나무를 지나치게 낭비한다는 비난을 받아서 주류가 되지 못했다고 한다. 연필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헨리 페트로스키의 <연필>이라는 책에서 읽을 수 있다. 그 밖에도 이 책에는 책의 역사와 발전, 빵의 역사와 발전,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오해와 사실들, 역사 속에 존재해 왔던 극한직업들에 대한 이야기, 육식에 대한 고민과 성찰 등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가득하다. 

 

 이 책을 길잡이 삼아 다른 책들을 읽어 나갈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개인적으로는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을 읽어 보고 싶어졌다. 집에서 기르는 오리는 야생 오리와 비교했을 때 날개보다 다리가 더 발달한다는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갑작스러운 위험에 마주할 일이 적고, 날 일보다는 걸을 일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종의 기원>을 완독한다는 건 꽤 어려운 일이다. 매 해 버킷리스트를 쓸 때마다 독파하고 싶은 책들을 적어 보곤 하지만 그 중 반도 제대로 읽지 못한다. 하지만 어떤 책을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만으로도 어제보다는 발전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이토록 재미난 집콕 독서>는 독서에 대한 동기를 부여해 주는 책이다. 그것도 재미있는 방식으로.  

 

 

 

 

Posted by 김미류
2020. 7. 23. 15:13

 

 청소년기를 지나쳐 어른이 된 사람들 각각은 스스로의 청소년기에 대해 다르게 회상할 것이다. 누군가는 활기차고 즐거운 시절이었다고, 누군가는 공부에 지쳐 너무 힘든 시기였다고, 누군가는 연애를 좀 더 많이 해 볼 걸 그랬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어떻게 보면 청소년기는 무력한 나날의 연속이다. 어른들의 세계에는 편입되지 못하면서도, 어른들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영향에는 그대로 노출된다. 그들은 물론 자신들의 세계에서도 매일 흔들린다. 청소년들은 나쁜 선생님, 나쁜 친구들, 나쁜 부모가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뒤집어놓을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아름답고 발랄한 기억들로만 청소년기를 추억하는 어른들은 아마 운이 좋았거나, 자신이 이미 지나온 시절을 미화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청소년들 역시 고통스러운 문제를 마주하며 치열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부모의 불화나 이혼, 형제와의 비교로 인한 스트레스, 집단 따돌림이나 괴롭힘과 같은 일들은 결코 어른들이 겪는 문제보다 사소하지 않다.  

 

 <코끼리새는 밤에 난다>에는 여섯 편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다. 모두 청소년들의 이야기다. 소설 속 청소년들은 풋풋한 연애를 하던 남자친구를 떠나보내기도 하고, 다른 학생들의 놀림 때문에 고통받기도 한다. 짝사랑에 눈이 멀어 바보 같은 공개 고백을 저지르기도 하고, 천재인 열 살 연하의 동생과 자신을 비교하며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작품 속 주인공들은 그 밖에도 부모의 이혼, 가장 친한 친구와 좋아하는 남자 아이 사이에서의 삼각관계 등 각자의 문제를 끌어안고 살아간다. 저자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들에 대해 너무 가볍지도, 그렇다고 짓눌려 버릴 정도로 너무 무겁지도 않게 썼다는 점이 좋았다. 작품들 각각의 매력이 있었지만 가장 좋았던 단편을 하나만 꼽으라면 다섯 번째 단편인 <힘과 중력, 한밤의 드라이브>를 꼽고 싶다. 주인공인 유진은 부모가 이혼한 뒤 엄마와 함께 살게 된다. 함께 여행을 떠난 유진과 유진의 엄마는 말싸움을 하다가 주유소를 지나치고, 기름이 떨어져 꼼짝없이 발이 묶인다. "관성의 법칙이 공기와 중력이 없는 곳에서나 유지될 수 있는 것처럼,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도 그런 곳에서나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자면 저 우주에서나 말이다." 유진이 변해 버린 부모의 마음에 대해 생각할 때 이런 대목이 나온다. 딱 세 문장만 더 인용하고 싶다. "불행히도 우리는 중력의 영향을 안 받고 살 수 없는 지구인일 뿐이다. 한때 세상 달달하던 두 사람은 뜨겁게 사랑하다 결혼했지만, 그 사랑은 나라는 흔적만 남긴 채 사라져버렸다. 나는 변해버린 부모님 사이가 슬프기보다 사람이 그런 존재라는 게 서글펐다."

 

 이 책에서 언급되는 건 관성의 법칙뿐이 아니다. 케플러, 코끼리새, 어깨걸이극락조, 0.99와 1이라는 수. 과학이나 수학의 영역에 속하는 개념들이 나온다고 해서 거부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뒷표지에 적힌 "우리의 일상 갈피갈피에는 대체 얼마나 많은 우주가 스며 있는 걸까?"라는 문장에서 알 수 있듯, 작가는 이야기 속에 딱 어렵지 않을 정도로만 우주를 녹였다. 수학이나 과학과는 담을 쌓고 살아온 나에게도 아무렇지 않게 읽히는 걸로 보아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많은 걸 알지 못해도 우주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늘 재미있으니까. 인간도 우주의 일부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즐겁게 읽을 수 있는 단편집이었다. 아무도 보지 않는 밤에만 자유로워진다는 코끼리새들이 태양 아래에서도 자유롭게 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Posted by 김미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