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멈춘 방>은 고독사에 대한 책이다. 특수청소를 하는 유품정리인인 저자에 따르면 고독사란 '아무도 모르는 사이 자택에서 사망한 이가 사후 상당한 날짜가 경과한 뒤 발견되는 상황'을 말한다. 저자는 일본인이지만, 한국에서도 최근 고독사 문제가 부각되며 관련 보도도 늘고 있다. 저자는 수많은 고독사 현장을 방문하며 느낀 점들을 세상에 환기하고 고인들의 마지막을 기억하기 위해 고독사 현장을 미니어처로 제작한다. 사람이 죽은 현장을 미니어처로 제작한다는 게 고인에게 무례가 되거나 유족들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까 염려하여 재가공을 거치고 죽은 사람이 특정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노력한다. 이 책에는 저자가 만든 고독사 현장 미니어처 사진들, 그리고 고독사에 관한 여러 가지 사연들과 저자의 의견이 실려 있다.
고독사가 늘어나는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먼저 1인 가구의 증가를 들 수 있겠다. 전통적인 정상 가족 제도가 해체되기 시작하면서 혼자 사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다. 게다가 이전처럼 이웃끼리 교류를 하는 일도 거의 없다 보니,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나이가 많거나 질병이 있거나 경제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이 고독사의 위험에 노출되기 쉬운데, 이들이 주변과 정기적으로 소통하며 안부를 물을 여건 자체가 주어지지 않는다. 저자가 경험한 고독사 현장들 중 사망 이후 가장 오랫동안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 건 2년이었다고 한다. 죽고 나서 자그마치 2년 동안이나 혼자 방 안에 방치되어 있어야 했던 사람의 삶은 어떤 삶이었을까. 확실한 건 그 사람에게도 자신의 인생이 있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고독사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미니어처를 만들고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책을 읽다 보면 분명 이게 미니어처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숨을 들이키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한 사람의 삶이 그런 식으로 끝을 맞이한다는 사실이 슬프다. 누구도 그렇게 혼자 방치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밖에도 저자가 특수청소를 하며 마주친 상황들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유품이 많은 집을 청소할 때면 어딘가에서 유품들 중 가치 있는 물건들을 빼앗아 가거나 훔쳐 가려는 사람들이 많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그런 사람들은 고인의 친구라고 주장하거나, 고인이 생전에 자신에게 이 물건을 남겨 주기로 약속했다는 거짓말을 한다고 한다. 심지어 집 안에 있는 현금을 달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는데, 죽은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조차 없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는 사실에 놀란다. 유족들은 유품을 정리하는 걸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은 모양이다. 고인의 물건을 어떻게 분류하고 처분해야 할지 모르거나, 유품이나 방을 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운 감정이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다행히 유품정리인들은 고인의 유족이 아닌 사람들에게 물건을 절대 넘겨주지 않는다고 한다. 사람의 죽음과 그로 인한 혼란스러운 상황을 이용하려 하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미니어처 사진들은 상당히 적나라한 편이다. 저자도 책에 밝혀 두었지만, 불안감을 느낄 만한 사람이나 어린이, 임산부는 책을 볼 때 주의할 필요가 있다. 책의 핵심적인 부분이기 때문에 미니어처 사진을 하나하나 올리지는 않고, 띠지에 실려 있는 사진 한 장만 찍어 올린다. 얇은 책이지만 읽기 쉬운 책은 아니다. 이 책을 읽으며 사람의 삶과 죽음이란 무엇인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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