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7. 23. 15:13

 

 청소년기를 지나쳐 어른이 된 사람들 각각은 스스로의 청소년기에 대해 다르게 회상할 것이다. 누군가는 활기차고 즐거운 시절이었다고, 누군가는 공부에 지쳐 너무 힘든 시기였다고, 누군가는 연애를 좀 더 많이 해 볼 걸 그랬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어떻게 보면 청소년기는 무력한 나날의 연속이다. 어른들의 세계에는 편입되지 못하면서도, 어른들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영향에는 그대로 노출된다. 그들은 물론 자신들의 세계에서도 매일 흔들린다. 청소년들은 나쁜 선생님, 나쁜 친구들, 나쁜 부모가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뒤집어놓을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아름답고 발랄한 기억들로만 청소년기를 추억하는 어른들은 아마 운이 좋았거나, 자신이 이미 지나온 시절을 미화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청소년들 역시 고통스러운 문제를 마주하며 치열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부모의 불화나 이혼, 형제와의 비교로 인한 스트레스, 집단 따돌림이나 괴롭힘과 같은 일들은 결코 어른들이 겪는 문제보다 사소하지 않다.  

 

 <코끼리새는 밤에 난다>에는 여섯 편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다. 모두 청소년들의 이야기다. 소설 속 청소년들은 풋풋한 연애를 하던 남자친구를 떠나보내기도 하고, 다른 학생들의 놀림 때문에 고통받기도 한다. 짝사랑에 눈이 멀어 바보 같은 공개 고백을 저지르기도 하고, 천재인 열 살 연하의 동생과 자신을 비교하며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작품 속 주인공들은 그 밖에도 부모의 이혼, 가장 친한 친구와 좋아하는 남자 아이 사이에서의 삼각관계 등 각자의 문제를 끌어안고 살아간다. 저자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들에 대해 너무 가볍지도, 그렇다고 짓눌려 버릴 정도로 너무 무겁지도 않게 썼다는 점이 좋았다. 작품들 각각의 매력이 있었지만 가장 좋았던 단편을 하나만 꼽으라면 다섯 번째 단편인 <힘과 중력, 한밤의 드라이브>를 꼽고 싶다. 주인공인 유진은 부모가 이혼한 뒤 엄마와 함께 살게 된다. 함께 여행을 떠난 유진과 유진의 엄마는 말싸움을 하다가 주유소를 지나치고, 기름이 떨어져 꼼짝없이 발이 묶인다. "관성의 법칙이 공기와 중력이 없는 곳에서나 유지될 수 있는 것처럼,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도 그런 곳에서나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자면 저 우주에서나 말이다." 유진이 변해 버린 부모의 마음에 대해 생각할 때 이런 대목이 나온다. 딱 세 문장만 더 인용하고 싶다. "불행히도 우리는 중력의 영향을 안 받고 살 수 없는 지구인일 뿐이다. 한때 세상 달달하던 두 사람은 뜨겁게 사랑하다 결혼했지만, 그 사랑은 나라는 흔적만 남긴 채 사라져버렸다. 나는 변해버린 부모님 사이가 슬프기보다 사람이 그런 존재라는 게 서글펐다."

 

 이 책에서 언급되는 건 관성의 법칙뿐이 아니다. 케플러, 코끼리새, 어깨걸이극락조, 0.99와 1이라는 수. 과학이나 수학의 영역에 속하는 개념들이 나온다고 해서 거부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뒷표지에 적힌 "우리의 일상 갈피갈피에는 대체 얼마나 많은 우주가 스며 있는 걸까?"라는 문장에서 알 수 있듯, 작가는 이야기 속에 딱 어렵지 않을 정도로만 우주를 녹였다. 수학이나 과학과는 담을 쌓고 살아온 나에게도 아무렇지 않게 읽히는 걸로 보아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많은 걸 알지 못해도 우주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늘 재미있으니까. 인간도 우주의 일부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즐겁게 읽을 수 있는 단편집이었다. 아무도 보지 않는 밤에만 자유로워진다는 코끼리새들이 태양 아래에서도 자유롭게 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Posted by 김미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