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기억이란 우리가 믿는 것보다 훨씬 불완전하다. 기억의 불완전성에 다룬 유명한 작품으로 영화 <라쇼몽>이 있다. 같은 사건을 사람에 따라 다르게 기억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실제로 일어났던 일의 선후관계를 뒤죽박죽으로 기억하기도 한다. <사악한 자매>의 도입부는 그런 기억의 불완전성에 관한 내용이다. 주인공인 레이첼은 어머니를 죽인 기억을 가지고 있다. 레이첼은 어머니의 삶을 빼앗았다는 죄책감 때문에 15년 동안이나 스스로를 정신병원에 감금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어머니를 죽였다는 자신의 기억이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사건의 진상을 찾아 정신병원을 떠난다. 소설은 현재 레이첼의 시점, 그리고 레이첼의 어머니인 제니의 과거 시점으로 번갈아가며 진행된다. 진실을 알기 위해 분투하는 레이첼의 현재와 서서히 진상을 드러내는 제니의 과거가 교차되며 독자의 마음을 들었다 놓았다 한다. 이렇게 시점을 교차하는 방식이 재미를 더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라고 느꼈다. 흥미가 고조되는 부분에서 내용이 다른 시점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뒷 내용을 알고 싶어서 책을 빨리 읽게 된다. 레이첼은 동물이나 곤충과 이야기할 줄 안다. 레이첼은 그런 자신이 잘못된 것이고, 사실은 병 때문에 동물과 대화할 줄 안다고 착각하는 건 아닌지 계속해서 고민한다. 독자의 고민도 이어진다. 레이첼은 정신적 병증이 있는 인물로 보인다. 레이첼이 진짜 자기 부모를 죽인 건 아닐까? 아니면 정말 다른 진범이 있는 것일까?
과거의 제니와 현재의 레이첼의 이야기가 각각 전개되면서 드러나는 한 인물이 있다. 바로 레이첼의 언니이자 제니의 큰딸인 다이애나다. 레이첼과는 9살 터울인 다이애나는 아름답지만 위험한 여성이다. 내용 누설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자세히 쓰지는 않겠지만, 제니가 다이애나의 어린 시절에 대해 서술한 부분을 읽고 있으면 가슴이 서늘해지고 손발이 차가워지는 느낌이 든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어린아이의 태연한 악의, 그리고 그 악의를 감당할 수 없지만 아이를 지켜야 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무서우면서도 안타깝다. 결국 레이첼은 어렸을 때 가족들과 함께 살던 숲 속의 집으로 향한다. 그 숲 속의 집은 분명 레이첼이 아름답고 행복한 기억들을 잔뜩 만들었던 공간이지만, 현재의 레이첼에게는 거대한 악의와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곳일 뿐이다.
<사악한 자매>는 여름에 읽기 딱 좋은 스릴러 소설이다. 섬뜩한 분위기, 과거와 현재가 세련되게 교차하는 장면들을 보면 영화로 만들어져도 재미있을 것 같다. 수많은 야생동물들이 살아가는 숲,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고 뭐든 배울 수 있는 큰 별장. 제니는 그 숲속에서 하얀 곰 새끼를 목격하기까지 한다. 말로만 들으면 아이들을 키우기에 아주 이상적인 환경일 것만 같다. 모든 게 괜찮아질 거라는 제니 부부의 마음이 이해가 가서 그들이 맞은 결말이 더 안타까웠다. 살아남은 레이첼이 마주한 진실은 무엇인지, 숲 속의 집으로 돌아간 레이첼이 어떤 결말을 맞는지에 대해서는 당연히 적지 않는다. 누군가가 인터넷에 써 놓은 줄거리를 읽는 것보다 직접 읽는 게 몇 배는 더 재미있을 소설이다. 한 번에 훌훌 읽어버릴 수 있는 스릴러 소설을 찾는다면 <사악한 자매>를 읽는 건 꽤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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