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골든 햄스터 한 마리와 같이 산 지 일 년 반이 조금 넘었다. (이 위에 올린 사진이 우리 집 햄스터임) 보통 골든 햄스터의 수명은 대략 2년 정도라고 한다. 오래 전부터 햄스터에 대한 글을 하나 쓰려고 생각했지만 좀처럼 마음이 잘 먹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요 며칠 동안 잠자는 햄스터의 머리숱(?)이 예전같지 않은 걸 보면서 햄스터 이야기를 한 번 써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우리 집 햄스터는 이제 슬슬 아저씨에서 할아버지가 되어 가고 있고, 아직 건강하긴 하지만 나와 아주 오랫동안 같이 살지는 못할 것이다. 햄스터를 처음 만났을 때의 이야기와 인상깊었던 몇몇 사건들, 햄스터와 같이 살면서 느낀 점들을 솔직하게 적어 놓고 나중에 다시 보면서 추억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처음으로 햄스터와 같이 살았던 건 초등학교 4~5학년 즈음이었다. 당시 친한 친구네 집 햄스터가 새끼를 낳았다. 그 중 두 마리를 데려가지 않겠냐는 권유를 받았고, 두 마리를 데려와서 기르게 되었다. 햄스터는 무조건 한 케이지에 한 마리만 길러야 한다. 변명을 할 생각은 없고, 당시는 지금처럼 햄스터에 대한 사육 정보가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았던 시기였다. 그나마 불행인지 다행인지 햄스터는 두 마리 다 암컷이었다. 그래서 무분별하게 출산을 하고 새끼가 늘어나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햄스터들은 신기할 정도로 오래오래 살아서 내가 중학생이 될 때까지 살아 있었다. 이런저런 힘든 일이 있었던 어린 시절에 햄스터가 쳇바퀴 돌리는 모습을 구경하던 기억은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행복한 기억이 있었던 만큼 햄스터들이 내 곁을 떠난 다음의 상실감이 더 컸다. 어른이 되고 나서도 한참 동안 그 햄스터들이 살아 있을 때, 내 옆에 있을 때 더 잘 해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를 했다. 햄스터가 꿈에 여러 번 나오기도 했다. 햄스터 애호가들 사이에서 유명한(?) 악몽은 돌아가면서 다 꾼 것 같다. 햄스터 수십 마리가 막 섞여서 버려져 있는 꿈, 다른 동물이 햄스터를 잡아먹는 꿈, 사람이 햄스터를 죽이려고 하는 꿈 등등.
이사를 했고, 고정적인 수입이 생기자 햄스터와 같이 사는 걸 다시 진지하게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SNS나 햄스터 관련 커뮤니티를 둘러보면서 내 머릿속에 있는 햄스터 사육 정보들을 천천히 업데이트했다. 그리고 마트나 샵에서 햄스터를 사지 않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유기 햄스터를 입양할 수 있는 이런저런 경로들을 알아보았다. 필요한 공간이나 비용 등을 가늠하면서 유기 햄스터 관련 정보들을 찾아보면서 새로 알게 된 사실이 참 많았다. 먼저,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유기된 햄스터들을 구조해서 병원에 보내고 아픈 곳을 치료한 다음 좋은 가족을 찾아 주려고 노력하는 분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대형마트 같은 곳에서 햄스터를 판매하는 가격이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직도 햄스터는 너무 쉽게 살 수 있는 동물이고, 또 너무 쉽게 버려진다.
꼭 어떻게 생긴 햄스터를 기르고 싶다는 생각은 딱히 하지 않았다. 내가 전에 같이 살던 햄스터들은 드워프 햄스터였다. 같은 드워프 햄스터여도 좋았고, 골든 햄스터여도 좋았다. 털 색이나 무늬 같은 건 뭐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햄스터를 사고 파는 업자들에게 인기가 있는 털 색이 있다는 사실도 새로 알게 되었다. 특히 골든 햄스터는 무분별한 교배와 판매의 대상이었다. 인기 있는 털을 가진 새끼를 뽑아내기 위해 근친교배를 반복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털을 가진 새끼들이 태어나면 버리고... 그런 이야기들을 접하며 유기 햄스터를 데려와야겠다는 생각은 점점 더 강해졌다. 어떤 햄스터와 가족이 되어야 할까, 고민하던 시기에 대전에서 어떤 사람이 열 마리가 넘는 골든 햄스터를 한꺼번에 버렸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새끼들도 있었다. 그 새끼들의 절반 정도, 그리고 엄마 햄스터는 죽었다. 실시간으로 공유되는 내용들을 보며 마음이 너무 좋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거기에서 다행히 건강하게 구조된 수컷 햄스터를 우리 집으로 데려오기로 했다. 흰 털과 오렌지색 털이 섞인(시나몬 밴디드라고 한다는 모양이다), 거의 다 자란 햄스터였다.
햄스터는 건강했다. 구조해서 병원까지 데려가 주시고 돌봐 주신 분들 덕분이었다. 나는 집에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지역의 지하철역에 가서 햄스터를 보호해 주시던 분을 만났다. 그 분은 먹던 사료를 챙겨 주시며 내가 들고 간 이동장으로 조심스럽게 햄스터를 옮겨 주셨다. 햄스터가 스트레스를 받을까 봐 이동장을 천 가방으로 가린 채로 조심조심 집으로 돌아왔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는 사이에 햄스터 이동장을 들여다보고는 너무 사랑스러워서 발을 동동 굴렀다. 보호해 주시던 분은 햄스터가 아주 순한 아이지만 겁이 많다고 하셨다. 집으로 돌아와 미리 꾸며 둔 케이지에 넣어 주자 햄스터는 경계하면서도 이내 조금씩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밥도 잘 먹고 쳇바퀴도 잘 탔다. 정말 착한 친구였다. 지금까지 일 년 반 넘게 같이 지내면서 햄스터가 내 손을 문 건 한 번밖에 없었다. 그것도 피가 날 정도로 세게 문 게 아니라 살짝 물어 본 정도였다.
스트릿 출신이라 그런지 가리는 음식도 없고 야채도 나보다 잘 먹었다. 햄스터가 먹어도 되는 과일이나 야채들을 검색해 본 다음 가끔 생야채나 과일을 주곤 했다. 처음으로 바나나를 먹였을 때가 아직도 기억난다. 조금씩 찹찹 맛을 보더니 이내 와구와구 볼에 밀어넣었다. 생야채나 과일을 줄 때면 혹시나 볼 안에서 음식이 상할까 봐, 아니면 탈이 날까 봐 양을 조절했다. 삶은 감자를 주기도 했고, 햄스터를 귀여워하는 친구들이 샐러드를 만들다 남은 야채들을 컵에 싸 주기도 했다. 브로콜리나 케일, 파프리카, 당근, 삶은 달걀과 메추리알,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주기도 했다. 하나같이 잘 먹었는데 특이하게도 딸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바나나를 너무 잘 먹길래 다른 과일도 좋아할까 싶어서 딸기도 먹여 보았더니 딸기는 몇 입 먹다가 고개를 돌리곤 했다. 너무 달아서 그런가? 밀웜도 잘 먹지만 새우와 연어는 먹지 않는다. 해산물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다. 집에는 햄스터용 건조 새우와 건조 연어가 쌓여 있다. 건조 연어나 건조 새우를 좋아하는 햄스터가 있다면 주고 싶다.
오늘은 햄스터 집 청소를 했는데, 햄스터들은 자기가 자고 싶은 곳에 둥지를 꾸린다. 그 둥지를 제멋대로 건드려 놓으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수밖에 없고 나도 햄스터에게 미움을 받고 싶지 않기 때문에 둥지는 몰래 치우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러나 결국 몰래 치우는 데 실패하고 잠깐 동안 이동장에 넣어 둔 뒤 급하게 청소를 했다. 이동장 안에서 바깥을 내다보는 가련한 표정을 한 장 찍어 봤다. 아저씨 골든 햄스터는 지금 옆에서 열심히 접시 모양의 놀이기구를 타고 있다. 나이를 먹긴 했지만 아직 밥도 잘 먹고, 잘 놀고 똥도 잘 싸고 건강한 편이다. 인간 때문에 갖은 고생을 했을 친구인데 지금까지 건강하다는 게 참 대단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그렇다. 가능하다면 앞으로 십 년만 더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중에 더 쓰고 싶어질 때 햄스터 이야기를 이어 써 봐야지.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5월 2일 일기 (0) | 2021.05.03 |
---|---|
5월 1일 일기 (0) | 2021.05.03 |
아저씨 골든 햄스터 이야기 (4) (0) | 2021.04.23 |
아저씨 골든 햄스터 이야기 (3) (0) | 2021.02.13 |
아저씨 골든 햄스터 이야기 (2) (0) | 2021.0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