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일에 쫓겨 햄스터 이야기를 못 쓴 지 몇 달이 지났는데 그 사이에 우리 햄스터는 아저씨가 아니라 할아버지가 되었다. 햄스터는 보통 2년 정도를 살면 제 명을 살았다고 하고 몸이 약한 아이거나 병이 생긴다면 2년을 못 채우는 경우도 많다. 우리 햄스터는 나와 같이 산 지 22개월 정도가 되었다. 구조되었을 때 이미 거의 다 자라 있었으니까 못 해도 태어난 지 한 달은 지난 상태였겠지? 그러면 이제 우리 햄스터는 2년 정도 살았다고 봐야 한다. 햄스터가 노년에 접어들면 나이를 먹는 게 훅훅 체감이 된다. 피부병이 있는 것도 아닌데 예전에는 빵실하게 차올라 있던 털도 조금씩 듬성듬성해진다. 눈이 안 좋아지고 원래는 숨겨 두어도 잘만 찾던 간식을 눈 앞에 가져다 줘도 잘 못 받아먹기도 한다. 하지만 나이를 좀 먹었을 뿐 우리 햄스터는 우리 햄스터다. 얼굴 표정이나 화장실에 갈 때의 모습이나 간식을 먹는 자세를 보면 처음에 우리 집에 왔을 때와 똑같다. 할아버지 햄스터가 되었다고 해서 사랑스럽지 않은 게 아니다. 사랑스러운 우리 햄스터는 나이를 먹어서 사랑스러운 할아버지 햄스터가 되었다. 그래도 제목은 통일해야 하니까 아저씨라고 써야겠다.
우리 햄스터는 가끔 터널이나 구조물을 갉곤 하는데 그 소리가 그리 작지는 않다. 오늘도 햄스터가 잠을 깨워 아침 일곱 시 반쯤 일어나야 했다. 햄스터는 이갈이를 하는 동물이고 그러니까 뭔가를 갉는 건 이 친구들에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좀 더 다양한 물체를 갉으면 좋을 것 같아서 나는 햄스터가 터널이나 구조물을 갉는 소리가 들리면 하던 일을 멈추고 이갈이용 장난감이나 간식들을 넣어 주곤 한다. 이렇게 쓰면 별 것 아닌 일로 보이지만 사실 나는 중증 불면증 환자였다. 지금은 수면제를 끊었지만 한때는 수면제 없이 절대 잠에 들지 못할 정도였다. 잠에 들어도 작은 소리나 자극만으로도 금방 깨 버리곤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햄스터가 이갈이를 하는 소리 때문에 잠에서 깨는 건 그리 싫거나 화가 나지 않았다. 처음에는 너무 시끄러워서 당황스럽기도 하고 잠에서 깨는 게 짜증스럽기도 했는데, 조금 시간이 지나서 익숙해지자 이상할 정도로 아무렇지 않아졌다. 특히 우리 햄스터가 나이가 들수록 이갈이 소리를 듣는 게 조금 즐겁기까지 했다. 햄스터를 키우는 사람들은 햄스터가 나이를 먹기 시작하면 잠을 자는 모습만 봐도 무섭다고 한다. 이게 잠을 자는 건지, 나를 두고 어딘가로 가 버린 건지 얼핏 봐서는 구분이 잘 가지 않기 때문이다. 햄스터를 길러 본 사람이라면 잠자는 햄스터에게 조심스레 다가가 숨을 쉬는지 확인해 본 적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갈이 소리가 들린다는 건 햄스터가 아직 내 곁에 멀쩡하게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이갈이 소리를 듣는 게 즐거운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가끔 내가 모르는 우리 햄스터의 과거를 상상한다. 어떤 털을 가진 엄마와 아빠 밑에서 태어났을지, 우리 집에 오기 전에 이가 부러진 상태였다고 들었는데 그 이는 어쩌다 부러졌을지(설치류라 다시 나서 지금은 완전 건치다), 혹시 내가 모르는, 가장 좋아했던 간식이나 야채 같은 게 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그 모든 의문에 대한 답을 얻는 게 영영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내가 이 작은 생명체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와 별개로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우리 햄스터는 인간으로 치면 청소년기쯤 버려졌기 때문인지 체구가 그리 크지 않다. 밥과 각종 영양간식들을 잘 먹어도 살이 잘 찌지 않는다. 성장기에 많이 먹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오해를 살까 봐 덧붙이자면 나는 햄스터가 사람을 잘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햄스터가 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 손을 무서워하는 바람에 병원에서 조금 불편한 것만 빼면 우리 햄스터는 아주 완벽한 최고의 햄스터다. 하지만 우리 햄스터가 처음부터 겁이 많은 성격이 아니었다면? 아기 햄스터일 때는 용감하고 씩씩한 성격이었는데 별로 좋지 않은 어린시절을 보낸 뒤 버려져서 겁이 많은 성격이 된 거라면? 그런 생각을 하면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다. 나는 우리 햄스터가 우리 집에 오기 전에 보냈을 시간들에 대해 영영 알 수 없고 그 시간들이 우리 햄스터에게 끼친 영향을 거의 어떻게 할 수 없다. 그저 지금의 햄스터를 사랑할 뿐이다.
오늘은 이갈이용 덴탈츄를 주면서 햄스터 손을 내 네 번째 손가락으로 살짝살짝 만졌다. 웬일인지 싫어하지 않았다. 그 작고 부드러운 것의 감촉을 원동력 삼아 오늘 하루를 살아야겠다. 할아버지 햄스터는 내 옆에서 쿨쿨 자고 있다. 나는 이제 이 글을 마무리하고 햄스터 똥오줌을 치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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