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는 말로 하는 캐치볼이다.’ 책을 받아서 살펴볼 때 인상깊게 다가온 문장이었다. 캐치볼을 할 때는 공을 너무 세게 던져도, 너무 살살 던져도 좋지 않다. 공을 너무 세게 던질 경우에는 상대방이 잡기가 힘들고, 공을 너무 살살 던지면 상대방에게 다다르지도 못한 채 땅에 떨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대화가 캐치볼이라는 비유는 한 번에 와 닿으면서 이 책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게 되었다. 먼저 공을 놓치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라면 모를까, 캐치볼은 오래도록 서로 공을 주고받도록 만드는 사람이 잘 하는 사람이다. 대화도 기본적으로는 그렇다. 상대방과의 말싸움에서 이기려는 게 아니라면 원활한 소통을 추구하는 게 옳다.
대화할 때도 마찬가지다. 지나치게 말을 빨리 하는 것도 느리게 하는 것도 좋지 않다. 혼자만 말을 많이 하는 것도 오랫동안 상대가 혼자 말하도록 두기만 하는 것도 좋지 않다. <말에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합니다>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대화의 기술에 관한 책이다. 이 책은 침묵을 활용하는 법, 비언어적 표현 활용하는 법, 좋은 질문을 하는 법 등 다양한 대화 기술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그 중에서도 침묵하는 법에 대해 중요하게 다룬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말을 능란하게 하며 대화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는 사람을 두고 말을 잘 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이 책에 따르면 대화에서 침묵의 역할은 아주 크다. 끊임없이 말하기만 하는 쪽보다는 침묵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쪽이 대화를 통해 목적을 이루기에 더 좋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언급되는 용어 중에 ‘자이가르닉 효과’라는 말이 있다. 자이가르닉 효과란 ‘달성한 일보다 달성하지 못했거나 중단된 일을 더 잘 기억하는 현상’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TV 프로그램에서 중요한 장면이 나오기 전에 “잠시 후 공개됩니다!”같은 말과 광고가 나오면 사람들은 채널을 잘 돌리지 않게 된다. 중요한 장면을 마저 보지 못했기 때문에 신경이 쓰여서 채널을 돌려 버릴 수 없는 것이다. 침묵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대화할 때 듣는 사람의 주목을 끌 수 있다는 점이다. 중요한 말, 즉 요지를 말하기 전에 잠깐 침묵하게 되면 상대는 다음 말을 빨리 듣고 싶다고 생각하기 쉽다. 침묵이 중요한 다른 이유는, 침묵하는 동안 상대가 말하기를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이다. 상대에게 질문을 한 이후에 바로 자신의 말을 이어 하게 되면 상대는 말할 타이밍을 놓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제대로 된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다.
그 외에도 저자는 전문성을 드러내기 위한 복장의 중요성, 프레젠테이션을 잘 하는 법, 의견이 다른 상대방을 설득하는 법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다만 대화의 기술로 소개되는 이러한 전략들은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사용하거나, 혹은 상대방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강제로 빼앗아 내기 위해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대화의 방향은 서로 우호적인 신뢰 관계를 쌓아서 양쪽 모두가 기분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쪽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책을 살펴보면 질문을 통해 상대의 특정한 대답을 유도하는 법도 나와 있지만 내가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런 일을 겪는다면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대화의 전략은 상대방의 반감을 사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사용해야 할 것이다.
나는 특히 계속해서 말하는 것보다 잘 듣는 것이 상대방을 설득하기 좋다는 말이 신기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신뢰를 살 수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이끌어 가고 싶은 사람, 대화를 좀 더 능숙하게 하고 싶은 사람, 상대방을 설득하는 데 자신이 없는 사람들은 이 책 <말에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합니다>를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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