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2. 22. 23:38

 

 <삶이 고이는 방, 호수>는 저자 개인의 이야기이지만 우리 사회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저자는 그저 자신이 지냈던 어떤 집들에 대한, 그리고 그 집들을 거쳐 온 저자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늘어놓을 뿐이다. 하지만 독자가 이 책에서 느끼고 깨달을 수 있는 바는 조금 더 크지 않나 싶다. 저자는 고시원과 원룸텔, 투룸을 전전했다. 기록을 보면 저자가 처음 살았던 서울 종로의 한 고시원은 2006년에 월세가 무려 32만원이었다. 보증금이 없다는 점과 빠르게 입주하고 방을 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창문 하나 없는 고시원 쪽방 월세가 32만원이라니. 책에 2006년 당시의 최저임금이 적혀 있지 않았더라면 내가 찾아서 적을 뻔 했다. 2006년의 최저임금은 3,100원이었다. 이래서야 제대로 된 주거환경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하더라도 안정된 생활을 하기 어렵다. 2020년인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2006년에 비하겠냐마는, 10년이 넘게 지났으니 지금 사람들의 주거환경이 2006년에 비해 그나마 나아진 건 다행스럽고 감사할 일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다. 더구나 최근에도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의 주거환경 문제가 수면으로 올라오고 있다. 비가 많이 오면 무너질 것 같은 쪽방촌에서 월세를 내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 아직도 창문 없는 고시원은 널리고 널렸다. 열악한 집에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는 집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싼 월세 때문에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끌어올리기 어렵다. 게다가 열악한 집은 사람의 마음에서 가장 약한 부분을 파고 들어간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행복해지기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가야만 한다는 사실은 얼마나 불공평한가. 

 

 물론 이건 일반론적인 이야기고 일개 독자인 내가 저자의 삶을 판단하며 이 시기의 저자는 이랬을 것이다, 하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다만 저자가 서러워서 쓰지 않았다는 어떤 이야기들, 뭐 이런 것까지 쓰나 싶어서 지웠다는 이야기들 중에서는 힘들고 마음 아프고 괴로웠던 순간들이 아주 많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 된 집을 찾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수많은 청년들, 청년이 아니라도 집을 삶의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살아가는 어떤 사람들은 절박할 수밖에 없다. 부동산 문제야말로 우리 사회의 수많은 문제점을 여과 없이 보여 준다. 누구나 호화로운 집에 살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누구나 사람이 살 만한 집에는 살아야 하지 않을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읽는 걸 좋아한다. 물론 저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은 책이라고 해서 다 재미있거나 좋은 건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저자에게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거나, 저자만의 고유한 경험에 대해 담담하게 서술하는 책을 좋아하는 편이다. <삶이 고이는 방, 호수>는 딱 그런 책이었다. 저자가 숨을 돌리기 위해 옥상, 마포 08번 버스, 카페와 같은 장소들을 떠돌았다는 경험이 남 일 같지 않았다. 모든 경험은 경험할 가치가 있다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했다는 말도 가슴 깊이 와 닿았다.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곳이 존재하지 않아서 여기저기를 떠돌았던 시간들을 돌이켜 보면, 추억으로 남은 부분도 적지 않지만 기본적으로는 피곤하고 힘든 시기였다. 저자와 나를 포함한 수많은 이들이 몸과 마음을 편히 할 만한 공간에서 지낼 수 있기를 바라 본다.

 

 독립출판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관심은 오래 전부터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찾아보거나 많이 구매하지는 않았다. 올해부터 슬슬 독립서점을 찾아다니고 독립출판물들을 읽어 보고 있다. 독립출판으로 자신의 책을 내는 사람들이 아주 많아진 것 같다. 그렇게 범람하는 독립출판물 속에서 내 마음에 드는, 나에게 오래 남는 책을 찾았을 때의 즐거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삶이 고이는 방, 호수>는 우연히 만나서 가볍게 펼쳤지만 마음에 오래 남을 것 같은 책이다. '집다운 집'을 찾아 헤매는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도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Posted by 김미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