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2. 9. 20:07

 

 사후 세계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지는 않는다. 하지만 가끔 사후 세계라는 게 정말 존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는 있다. 예를 들면,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이 길렀던 동물이 저승길 마중을 온다는 이야기를 읽었을 때라거나. 사람이 불의의 사고나 큰 병에 걸릴 경우를 제외하면 보통 사람이 기르는 동물은 사람보다 빨리 죽게 될 것이다. 가족처럼 지내던 동물을 떠나보내는 마음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아프고 괴롭다. 오래 전 기르던 동물들이 죽었을 때 그런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소중한 마음으로 사랑할수록 이별이 더 마음 아프다는 사실은 짐짓 불공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은, 이별이 슬프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일임을 안다. 

 

 본문의 내용은 아주 짧기도 하고, 여기에 본문의 내용을 아주 자세히 쓸 수는 없을 것 같다. 간단하게만 말하자면, 책의 주인공은 오렌지색 고양이와 꽃을 좋아하는 할머니다. 고양이와 할머니가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따뜻하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는 가슴이 벅차기도 한다. 나는 오렌지색 고양이는 아니지만 오렌지색 햄스터를 기르고 있다. 세상의 수많은 햄스터들 중 한 마리지만, 나에게는 아주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햄스터다. 햄스터는 사람에 비하면 수명이 아주 짧기 때문에, 내가 갑작스런 사고를 당하지 않는 이상 나는 햄스터가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햄스터가 세상을 떠난 뒤의 일들을 생각하게 된다. 그 때의 나에게도 이 책에 나오는 고양이 나무와 같은 햄스터 나무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 고양이가 아니어도 다른 동물을 기르는 사람, 동물을 기르지 않아도 소중한 존재와 헤어져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 공감하고 이 책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동화책을 읽어 본 게 얼마만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왜 어른들도 때로는 동화책을 읽는지, 왜 동화를 좋아하는 어른들이 있는지 알 것 같다. <고양이 나무>는 따뜻한 위로가 되어 주는 동화다. 

Posted by 김미류
2019. 11. 28. 13:49

 스타벅스는 도대체 왜 플라스틱 빨대를 없앤 걸까. 휴지심으로 음료를 빨아먹는 기분이다. 얼마 전까지 내가 달고 살았던 말이다. 종이 빨대는 눅눅한 느낌이 나고, 입에 닿을 때의 질감도 마음에 안 들고, 왠지 종이 맛이 나는 것 같다면서 종이 빨대를 쓸 때마다 욕을 하곤 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솔직히 지금도 종이 빨대를 사용하는 게 그리 달갑지는 않다. 플라스틱 빨대가 환경에 안 좋은 걸 누가 몰라. 그런데 내가 한 달에 음료를 얼마나 마신다고, 내가 쓰는 플라스틱 빨대 때문에 지구가 망하나?

 

 결론만 말하자면, 지구가 망한다고 해도 내가 쓰는 플라스틱 빨대 때문은 아닐 거다. 하지만 절대 재활용되지 않는 플라스틱 빨대는 지구를 천천히 좋지 않은 방향으로 몰고 가고 있다. 그리고 절대 재활용되지 않는 수많은 플라스틱 빨대들 속에 내가 30분 정도 쓰고 버릴 빨대들이 섞여 있을 거라 생각하면 기분이 좋은 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빨대 자체를 가급적 사용하지 않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요즘 주변에서 에코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는 친구들이 하나 둘 늘기 시작했다. 그들은 환경 운동과 여성 운동을 연결시켜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을 나름대로 행해 가고 있었다. 나도 환경 문제와 여성 문제에 둘 다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뭔가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고, 관심만 갖고 있었지만. 어쨌든 에코 페미니즘에 대한 책을 한 번쯤 읽고 싶었던 참에, 마침 운 좋게 <원하는 모습으로 살고 있나요?>를 읽게 되었다.

 

 여성 운동과 환경 운동의 접점이란 무엇일까? 두 운동은 권력구조에 대항한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그 대항이란 잘못된 구조로 인해 약자, 억압받는 것들이 된 존재들을 해방시킨다는 것이다. 약자에 대한 보호와 환경 운동이 방향을 같이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환경 악화로 인한 폐해가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본문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 중 하나는, 환경 호르몬 물질이 지방 친화적이기 때문에 체지방률이 높은 여성에게 더 치명적으로 작용한다는 내용이었다. 특히 지방 조직이 밀집되어 있는 유방과 같은 신체부위는 암에 노출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것이다. 사용할 사람의 건강을 고려하지 않고 적당히 만든 '나쁜 생리대'로 피해를 입는 것은 여성들이다. 특히 생리 용품을 선택하기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는 어리거나 가난한 여성들이 더 취약하다. 

 

 물론 위에서 말한 것처럼 환경 문제가 나 혼자 일회용 빨대를 쓰지 않는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나 하나 정도는, 이라고 생각한 수많은 사람들이 버렸을 플라스틱 쓰레기들을 생각하면, 나 하나라도 노력하는 게 노력하지 않는 것보다는 당연히 더 낫다. <원하는 모습으로 살고 있나요?>에는 실생활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에코 페미니즘 활동들을 여러 가지 소개하고 있다. 환경운동은 어렵지 않나? 하고 생각했던 나 같은 사람들도 실천할 수 있을 정도로 쉬운 내용도 많다. 예를 들면, 손수건 사용하기, 카페에서 일회용 컵과 빨대 사용하지 않기, 화장 덜 하기(화장품에 함유된 미세 플라스틱이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일회용 생리대 대신 대안 생리용품 찾아보기와 같은 것들이다. 

 

 이 책에서 마음에 와 닿았던 내용 중 하나는, 내가 하고 싶은 모든 걸 포기할 필요는 없다는 문장이었다. 물론 실천하며 사는 삶은 좋지만 내 인생의 즐거움을 어느 정도 남겨 둘 필요는 있다는 말. 그래서 본문에 소개된 운동가들은 총 소비량을 정한다고 한다. 해외 여행이 가고 싶으면 가고, 대신 평소에 화장을 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식이다. 일 때문에 불가피하게 배달 음식을 자주 시켜 먹어야 한다면, 청소할 때는 청소기 대신 빗자루를 사용한다거나. 책으로 읽은 에코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은 행복하고 자유로워 보였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해 왔던 모든 행동들을 바꾸는 건 어렵다.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부터 시작해서 할 수 있는 일을 천천히 넓혀 간다고 생각하면, 그리 부담스럽지 않다. 

 

 

Posted by 김미류
2019. 10. 21. 20:33

출판사 비채로부터 크리스틴 루피니언의 <캣퍼슨> 프리뷰북을 받아 읽게 되었다.

 

 이상한 여자들이 많이 나온다. 다소 오해를 살 수 있는 문장이지만 사실이다. 자신밖에 사랑하지 못하는 여자, 모르는 남자의 모텔 방을 찾아가서 자신을 힘껏 때려 달라고 말하는 여자, 사람을 물고 싶어하는 여자, 그 외에도 이상한 여자들의 이야기가 많이 실려 있다. 물론 이상한 여자들의 이야기만 실린 책은 아니다. <캣퍼슨>은 많은 여자들이 한 번쯤은 만나 봤을 것 같은 평범하게 '구린' 남자, 그리고 그 남자와 데이트를 한 여자의 이야기다. <캣퍼슨>은 아주 현실적이고 평범한 이야기라서, 마지막 장을 읽을 때는 결코 즐거운 내용이 아님에도 웃음이 나왔다. 우리 모두가 어디서 들어 봤거나 혹은 겪어 봤을 법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캣퍼슨>의 마지막 장을 감상평에 올리려고 캡쳐를 해 뒀지만, 올리지 않기로 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그 장면을 직접 읽었을 때의 기분을 빼앗고 싶지 않기 때문에. 

 

<룩 앳 유어 게임, 걸>은 열두 살짜리 여자 아이와 그에게 말을 걸어 오는 한 남자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다.

 

 자세한 내용은 말할 수 없으나, 작중에서 남자는 범죄자인 찰스 맨슨 패거리를 미화하고 숭배한다. 나는 현실에서 이런 남자를 만난 적이 있다. 그들은 카리스마를 가진 범죄자를 우러러본다. 사람에 따라 자신이 범죄자를 우러러본다는 것을 숨기려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살인자를 대단하게 생각한다는 사실은 그들과 대화를 나눠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좋은 남자>에는 사랑받기 위해 좋은 남자를 연기하는 음습하고 미성숙한 남자가 등장한다. 

 <좋은 남자>의 마르코 같은 남자도 세상에는 너무나 많았던 것 같다. 아니면 적어도 내 주변에는. '좋은 남자'가 되기를 선택하지만 결코 '좋은 남자'는 아닌 남자들. 그런 남자들에게는 안타깝지만, 많은 여자들이 마르코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면서 경멸과 같은 감정을 느낄 것이라고 장담한다. 

 

 그리고 수많은 이상한 여자들, 마법이나 주술, 괴물이 나오는 이야기들이 있다. <캣퍼슨>이 너무나도 현실적인 소설이었기 때문에 이를 뒤따르는 단편들 역시 그럴 거라고 생각했었다. 책을 반 정도 읽기도 전에 그 생각이 깨졌지만. 단편집 <캣퍼슨>은 장르를 넘나드는 소설이었다. 크리스틴 루피니언은 있을 법한 이야기도, 비현실적인 이야기도,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 흔들리는 이야기도, 어딘가 이상한 사람들이 일상을 유지해 가며 벌어지는 이야기도 쓸 줄 아는 작가다. 나는 그 이상한 여자들의 삶이 궁금했다. <죽고 싶어하는 여자>를 읽고, 그가 왜 죽고 싶은 것처럼 보이는 행동들을 하는지, 이야기가 끝난 뒤 그는 어떻게 되었을지 알고 싶었다. <성냥갑 증후군>의 로라는, <무는 여자>의 엘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신경이 쓰였다. <룩 앳 유어 게임, 걸>의 제시카는 평생 동안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절대 잊지 못했을 거라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크리스틴 루피니언이 서문에서 말한 대로 모든 작품들이 쉽게 읽히지는 않았다. 내가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작품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읽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기를 바라기 때문에, 소설 내용에 대한 언급을 최소한으로 줄였다. 이 책을 읽은 사람들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다. 

Posted by 김미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