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손보미, <작은 동네>
예전에 살던 동네로 돌아가 있는 꿈을 자주 꾼다. 가장 오래 살았고 수많은 일들이 일어났던 동네다. 지금은 거기서 떠나오고 나서 한참의 시간이 흘렀지만 나는 무의식적으로 아직도 거기가 내가 살고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손보미의 <작은 동네>는 없었던 것으로 할 수 없는 과거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인 '나'는 일본어 번역을 하고 연예 기획사에서 일하는 남편과 함께 산다. 평범하다면 평범하다고 할 수 있을 법한 생활을 하던 '나'는 어머니를 병으로 떠나보내고,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오래 전 헤어진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거기에서부터 주인공의 일상이 조금씩 흔들린다. 소설의 꽤 많은 부분은 주인공이 살았던 작은 동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데 할애된다. 작은 동네에서 조금 특별한 취급을 받았던 '나'의 가족, '나'를 이상할 정도로 과보호했던 나의 어머니, 개를 키우고 싶었던 '나'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이웃집 개 누렁이,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지 않았던 어머니가 유일하게 사귀었던 친구의 이야기까지. '나'는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 작은 동네에서 보냈던 시간들이 자신을 붙잡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어린 아이라고 해도 아무것도 모르지는 않는다. 특히 아이들은 스스로가 평범함에서 벗어나 있다는 사실을 눈치 빠르게 알아챈다.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이 나와 얼마나 다른지에 항상 집중하기 때문이다. '나'는 자신의 어머니가 다른 어머니들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안다. 그는 언제나 딸과 등교를 함께 하고, 딸이 하교하는 시간에 맞춰 딸을 데리러 간다. 단소를 잘 부는 딸이 대회에 나가려는 걸 방해한다. 딸이 수영 강습을 받을 때조차 유리창 바깥에서 딸이 수영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소설 중후반에 나오는 단 한 명의 친구를 제외하면 그는 그 누구와도 교류하지 않는다. 자연히 '나' 역시 친구들과 마음껏 어울리지 못한다. <작은 동네>를 읽으며 가장 이해하기 힘들었던 인물은 역시 이 어머니였다. 딸을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딸을 조금 더 행복하게 할 수 있을 어떤 일들을 방해한다. 사실 수많은 어머니들이 딸을 사랑하면서도 딸의 앞길을 가로막는다. 처음에는 이 소설이 그런 종류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었다. 딸을 억압했던 어머니, 그리고 그 어머니와 머물렀던 작은 동네에 매여 있던 주인공이 그것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이야기 말이다. 소설을 읽다 보면 그 어머니와 작은 동네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나오지만 여기에는 쓰지 않는다.
어린아이인 '나'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평범하지 않다는 걸 막연하게 느낄 뿐이다. 어머니의 예민하고 변덕스러운 태도를 그저 받아들이고, 어머니의 친구가 보이는 기묘한 모습을 그저 받아들이고,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가 자신과 어머니를 떠났다는 사실을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뭔가가 이상하다는 걸 충분히 깨달을 수 있음에도 그 이상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도, 그 상황을 해결할 수도 없다. 어린아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은 마음 한 켠에 굳게 잠긴 방을 가지고 있다. 어른이 된 '나'는 어렸을 때의 자신이 몰랐던 사실들을 하나하나 깨닫고, 풀리지 않는 의문들을 되새기고, 진실을 찾아 나섬으로써 그 방의 문을 열기 위해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독자는 때로 조마조마했다가, 때로는 안타까웠다가, 마지막에는 '나'와 함께 잠긴 방을 열게 된다. 이 책을 끝까지 읽고 나서 한동안 이 책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누구에게나 현재를 붙잡는 과거가 있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벗어나서 살아갈 수 있을까? 작은 동네를 떠올리는 주인공을 보며 나 역시 내가 자랐던 작은 동네에 대해 떠올렸다. <작은 동네>는 인간이 과거를 받아들이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소설을 읽을 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살았던 작은 동네를 떠올리지 않을까. 그 작은 동네에서의 기억들이 현재의 우리를 너무 괴롭히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