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시네마 던전: 김봉석 영화리뷰 SF 편

김미류 2020. 6. 28. 23:42

 

 <시네마 던전>은 저자 김봉석이 쓴 영화 리뷰들을 장르별로 묶은 시리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명작과 '망작'을 가리지 않고 묶었다고 한다. 최근 SF라는 장르의 재미에 빠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SF 편을 읽어 보았다. SF 편에는 총 58편의 영화 리뷰가 실려 있다. 그 중에는 <인터스텔라>나 <마션>, <그래비티>, <그녀>처럼 내가 본 영화들도 있고, <에이리언 4>나 <스타워즈 에피소드 3 : 시스의 복수>, <트랜스포머>처럼 내가 보지는 않았지만 워낙에 유명해서 들어 본 적이 있는 영화들도 있고, 아예 이름을 처음 보는 영화들도 많았다. 나는 SF 영화를 몇 편 보지 않았지만 SF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한 입문자 정도의 수준이기 때문에 저자의 리뷰들을 읽으며 큰 도움을 받았다. 보고 싶다는 기분이 들게 만드는 리뷰들도 있었고, 이 영화는 소위 말하는 '망작'이기 때문에 굳이 당장 보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리뷰들도 있었다. 이 글에서는 주로 어떤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 리뷰 몇 편, 그리고 저자의 리뷰를 읽고 나서 보게 된 영화 몇 편에 대한 이야기를 할 생각이다. 

 

 1. 스티븐 스필버그, <마이너리티 리포트> 

 만약 범죄가 일어날 가능성을 예지할 수 있다면, 예비 범죄자를 범죄자로 간주해야 할까?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2054년을 배경으로 한다. 2054년의 워싱턴 D.C.에는 예언자들의 능력으로 범죄를 예지하여 예비 범죄자를 처벌하는 '프리크라임'이라는 조직이 활동하고 있다. 즉 아직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사람을 이미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나 다름없이 취급하는 것이다. 그 세계에서 예언이란 거의 운명과도 같다. 그렇다면 인간은 스스로의 의지로 그 운명을 뒤집을 수 없는 것일까? 나는 저자의 리뷰에서 '인간의 자유의지와 운명은 과연 배치되는 것일까. 예언이 100퍼센트 정확하다면 인간의 자유의지란 존재하기 어려운 것이고, 예정된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다면 예언으로 인간을 처벌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라는 문장을 보고 이 영화를 보기로 결정했다. 프리크라임이라는 시스템을 가지고 누군가는 검은 음모를 꾸미고, 주인공은 거기에 맞서게 된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유명한 영화지만 나는 운 좋게도 2020년까지 스포일러를 당하지 않고 볼 수 있었다. 그래서 혹시라도 이 영화를 처음 볼 사람을 위해 자세한 줄거리는 남기지 않는다. 가급적 스토리를 누설하고 싶지 않아서 구체적으로는 말하지 않겠지만, 몇몇 장면들은 영화를 잘 모르는 내가 봐도 너무나 잘 찍었다는 사실을 알 수밖에 없었다. 

 

 2. 워쇼스키 자매, <브이 포 벤데타>

 <브이 포 벤데타>의 배경은 세계 3차 대전이 끝난 이후의 영국으로, 아담 서틀러라는 총통과 노스파이어 정당이 집권하는 독재 국가다. 모든 시민들의 일상과 생활이 국가에 의해 통제당하는 상황에서 테러리스트인 주인공 '브이'가 등장한다. 개인적으로는 디스토피아 안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브이라는 개성 강한 주인공의 흡입력도 괜찮았다. 브이는 저자에 따르면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자신의 신념을 영원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기꺼이 폭력과 죽음을 택한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브이가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싫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체로 브이가 이야기를 이끌어 가기에 충분한 힘을 가진 인물이라는 사실에는 동의할 것이다. 여담이지만 SNS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가이 포크스 가면을 프로필 사진으로 쓰는 유저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브이 포 벤데타>의 주인공인 브이는 작중에서 내내 쓰고 있는 가면이다. 

 

 3.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솔라리스>

 이 영화를 다 보고 나서야 알았는데, 저자가 이 책에 리뷰를 싣은 영화는 내가 본 솔라리스(1972년작)가 아니라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솔라리스(2002년작)였다. 두 영화가 같은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리고 내가 둔한 편이었기 때문에 보면서 크게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다. 주인공인 크리스는 솔라리스라는 행성으로부터 한 테이프를 받고 우주 정거장으로 떠난다. 우주 정거장에는 원래 세 명의 과학자가 있었는데 그 중 한 명은 이미 자살했고, 나머지 두 명 역시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이다. 솔라리스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궁금해하는 주인공의 앞에 오래 전 자살한 주인공의 아내가 나타난다. 개인적으로 솔라리스(1972년작)는 재미있었고 생각할 거리가 많은 영화라고 느꼈다. 기억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전개가 다소 늘어지고 불친절한 영화라는 평이 있다. 취향에 맞지 않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나는 저자가 리뷰를 쓴 2002년작도 기회를 만들어서 볼 생각이다. 

 

 위에 언급한 몇 편의 영화들은 이 책을 읽고 나서 흥미를 갖게 되어 일부러 찾아서 본 영화들이다. 이 영화들 외에 내가 리스트로 작성해 둔 영화들은 다른 이의 꿈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설정의 <더 셀>, 가상 현실과 디지털 캐릭터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몬>, 외계인과의 만남이라는 고전적인 소재를 매력적으로 다룬 <콘택트> 등이 있다. 이 책에는 그 밖에도 매력적인 영화들이 잔뜩 묻혀 있으니 천천히 읽어 보며 자신이 보고 싶은 영화를 찾아보면 좋을 것 같다. 영화를 보기 전에 다른 사람의 리뷰를 찾아보는 사람이 있고, 아무런 사전 정보도 접하지 않고 영화를 보는 걸 선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리뷰를 보는 걸 싫어하지 않는다. 영화를 보기 전에 그 영화가 잘 만든 영화인지, 아니면 굳이 시간을 내어 볼 필요가 없는 영화인지 미리 알고 싶은 나쁜 마음도 있다. 저자의 SF 영화 리뷰들을 재미있게 읽었고 덕분에 몇 편의 영화를 새로 보게 되었다. 제목이 <시네마 던전 : 김봉석 영화리뷰 SF 편>이니 당연히 다른 장르에 대한 리뷰들을 모아 놓은 책도 출간된다. 어떤 장르에 막 호기심을 가지기 시작한 나 같은 사람에게는 좋은 안내서가 되어 줄 책인 셈이다. 사람마다 SF라는 장르 안에서도 특별히 좋아하는 소재나 키워드들이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큰 분류에 따라 대략적으로 영화들을 나누어 놓았기 때문에 자신이 좋아할 만한 영화를 찾기가 더 쉽다. 나보다 많은 영화를 본 사람의 글을 미리 읽고 내 취향에 맞는 영화들을 골라서 본다는 게 조금 얌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는 아마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 이 안내서를 썼을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SF 영화의 매력에 빠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