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비벌리 엔젤, <자존감 없는 사랑에 대하여>
긴 머리를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머리를 기른 적이 있다.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좋다고 해서 옷 입는 스타일을 바꿨다. 남자친구의 취향에 맞춰 다른 립스틱을 쓰기로 했다. 다른 친구들을 만나는 걸 좋아하지 않아 모임을 줄였다. 게임 하는 여자는 별로라고 해서 게임이 취미라는 사실을 숨겼다. 이런 이야기들은 내 이야기이기도, 내 친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당장 얼마 전까지 좋아하는 사람, 혹은 남자친구에게 자신을 맞추려고 하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주변에서 흔하게 들을 수 있었다. 연인 사이에서 상대방을 배려하고 상대방에게 맞추려고 하는 것 자체가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상대방에게 미움받는 게 겁이 나서, 상대방이 자신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되면 자신을 싫어할까 봐, 뭐 그런 이유로 상대방이 좋아하는 모습만을 가장하는 건 그리 건강한 행동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자존감 없는 사랑에 대하여>는 사랑을 하게 되면 스스로의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둘리는 여자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이 책에서는 그런 상태를 '자신을 잃어버렸다' 혹은 '자기를 상실했다'라고 표현한다. 우리는 아주 현명하고 지적이고 능력 있는 여자들도 사랑에 빠지면 자신을 잃어버린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여자들은 왜 자신을 잃어버릴까? 거기에는 문화적 요인, 생물학적 요인, 그리고 심리적 요인이 있다. 이 책의 1장에서는 그런 요인들에 대해 설명한다. 개인적으로는 적지 않은 여성들이 어린 시절 부모에게서 받지 못한 사랑을 연인에게서 찾는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다.
상대방에게 무조건적으로 헌신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맞추며 사는 데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사례들을 통해 그런 헌신이 건강하고 행복한 관계를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연인을 만드는 걸 포기하는 것도 그렇게 행복한 길만은 아닌 것 같다. 여성들이 자신을 지키면서도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자존감 없는 사랑에 대하여> 2장은 '자기 자신을 지키는 7가지 약속'이라는 이름으로 몇몇 방법들을 소개하고 있다. 목차를 보면 다음과 같다. 첫눈에 반했더라도 상대방에 대해 천천히 알아간 다음 연인 관계가 되기, 인위적으로 꾸민 모습보다 자신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 주기, 자신만의 일상생활과 루틴을 허물지 않기, 헛된 환상보다는 현실에 집중하기, 남자를 위해 자신을 바꾸지 않기, 서로 동등한 관계로 만나며 참지 않고 속마음을 표현하기. 물론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 주라는 게 처음부터 자신의 공격적인 면을 드러내거나 아주 내밀한 이야기를 하라는 뜻은 아니다. 상대방이 게임 하는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자신의 취미가 게임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말라는 의미에 가깝다. 고작 게임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떠나가는 남자라면, 떠나가게 두라는 뜻이기도 하다. 책에는 수많은 여성들의 예시가 나온다. 남자친구에게 푹 빠져 하던 봉사활동을 그만두거나, 일을 줄이거나 운동을 하지 않은 여성들은 남자친구와의 관계에서도 좋지 않은 상황에 놓이곤 했다. 자존감이 낮은 여성들은 상대 남성에게 휘둘리면서 잦은 정서적 폭력도 기꺼이 감내한다. 그 과정에서 상대방에게 더 의존하게 되고 점점 더 스스로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2장에서 이야기하는 많은 예시들 중 와 닿는 내용이 꽤 많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낮아진 자존감을 되돌릴 수 있을까. 3장에서는 자존감 있는 여성으로 사는 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스스로에 대해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내용이다. 특히 과거의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많은 여성들은 제대로 된 애정을 주지 못한 부모나 혹은 학창시절에 따돌렸던 가해자들, 자신에게 신체적으로, 정서적으로 폭력을 휘둘렀던 예전 남자친구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간다. 오래 전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를 아직도 가지고 살아간다면 자신의 부모가 좋은 사람들이 아니었고 자신이 원하는 걸 주지 못할 사람들이었음을 인정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나쁜 부모였던 자신의 부모가 어느 날 갑자기 좋은 사람들이 되고, 충분한 사랑과 관심을 주리라는 헛된 희망을 가지는 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되찾으려면 어떤 상처들이 현재의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지 충분히 생각해 보고 거기에 얽매이지 않겠다고 생각해야만 한다. 그 밖에도 자신이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뭘 바라고 뭘 추구하는지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좋다. 스스로에 대해 깊이 탐구하고 스스로에게 몰두하는 건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 중 하나다. 다른 사람에게 쏟는 애정만큼 스스로에게도 애정을 쏟는다면 점점 건강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혼자서도 잘 사는 사람이 연애도 잘 한다는 말이 있다. 당연히 모든 사람이 꼭 연애를 해야 하는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연애를 하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행복한 연애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서로 존중하며 사랑하는 관계를 꿈꾸는 게 헛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여성들은 자신의 본모습을 그 누구도 사랑해 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잘 보이기 위해 꾸며낸 모습만을 받아들여 줄 누군가에게 매달리는 건 그리 현명하지도 행복하지도 않다. 그리고, 설령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도 나만은 나를 존중하고 사랑해야 한다. <자존감 없는 사랑에 대하여>는 자신을 사랑하기 위한 방법에 대한 책이기도 하다. 많은 여성들이 이 책을 읽어 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