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하오징팡, <인간의 피안>
<인간의 피안>은 중국의 소설가 하오징팡의 SF 단편집이다. 총 여섯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으며, 주된 소재는 인간과 인공지능의 공존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가볍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단편도 있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단편도 있었다. 사실 SF에서 인공지능은 단골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자주 사용되는 소재다. 그럼에도 매번 새롭고 재미있는 작품들이 등장한다는 게 조금 신기한데, <인간의 피안>역시 그런 신기함을 느끼게 해 준 책이었다.
가장 인상적인 단편은 '영생 병원'이었다. 첸루이는 어머니가 큰 병에 걸린 이후로 어머니에게 소홀하고 모질었던 과거를 후회한다. 하지만 어머니가 입원한 병원은 외부인이 출입할 수 없도록 통제되어 있어 병문안조차 갈 수 없다. 결국 첸루이는 몰래 병원에 숨어들어 임종을 코앞에 둔 어머니의 모습을 확인하게 되는데, 그가 부모님 집을 찾아가자 멀쩡하게 퇴원한 어머니가 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이야기의 진상과 뒷부분은 소설을 직접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인공지능이 사람을 대신할 수 있을까? 대신할 수 있다면, 그 인공지능을 사람과 똑같이 대해야 하는 것일까? 이전에 이와 비슷한 주제의식을 가진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얼핏 생각해 보면 완전히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인공지능은 당연하게도 사람과 다를 바 없이 살아가야 할 것 같지만, 실제로 그런 상황을 가정해서 이야기하다 보면 많은 이들이 인공지능에게 경계심이나 위협을 느낀다. 오로지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것,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 인간끼리만 공유할 수 있는 것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그럴까? 인간에 한없이 가까운 인공지능이 존재한다고 했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만이 가지는 특징이란 뭘까? 이런 점들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된다.
'사랑의 문제' 역시 재미있게 읽었다. 고도로 발달한 인공지능과 인간 사이의 갈등에 대한 이야기다. 엄밀히 말하면 작중의 인공지능이 인간과 감정적인 갈등을 겪는다고는 할 수 없다. 인공지능은 자신의 룰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훌륭한 인공지능이 철저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혐오감을 품기도 하고, 그 인공지능에게 과도하게 의존하기도 한다. 작중의 주요 인물(?)인 천다는 인간을 돌보는 인공지능이지만 그의 완벽함이 오히려 그가 돕는 가족 구성원들 사이의 소통을 방해한다. 독자는 한 가정에서 벌어진 살인미수 사건의 범인이 누구인지를 추측해 보며, 구성원들 각각의 이야기를 들어 보게 된다. 인공지능인 천다가 살인사건을 일으켰을지 아닐지를 지켜보는 것도 흥미롭지만, 천다와 달리 '불완전한' 가족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많은 점을 느낄 수 있었다. 인간은 복잡하고 다면적인 존재라서 완벽해 보이는 인공지능이 자신을 돕는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기도 한다. 인간이 인공지능을 보며 느끼는 불안감의 원인이 궁금했다.
그 외에도 사람의 말과 행동을 분석해서 만들어낸 분신 같은 존재가 등장하는 <당신은 어디에 있지>, 역튜링 테스트를 통해 인간과 인공지능을 구별하는 이야기 <전차 안 인간>, 인간과 인공지능이 친구가 되는 이야기 <건곤과 알렉>, 마지막으로 인간의 감정에 대해 다룬 <인간의 섬>이 실려 있다. 어려운 주제들을 다룬 소설도 있지만 책장이 쉽게 넘어가는 책이다. 이유는 당연히 재미있기 때문이다. 김초엽 작가의 추천사를 보고 기대감이 커졌는데, 그 기대감을 충분히 채워 줄 만한 책이었다. 작가가 인공지능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인간의 사유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는 대개 대조의 대상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우리 자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라는 작가의 말이 깊이 와 닿았다.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지만 읽으면서 인간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하게 되는 책, <인간의 피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