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염규영, <더 이상 미루면 포기할 것 같아서>

김미류 2020. 3. 23. 14:33

 

 사회의 요구에 맞춰 답답하게 살아가던 사람이 어느 날 모든 것을 버리고 세계 여행을 떠난다. 사실 요즘에는 꽤 흔한 이야기다. 이런 내용으로 책을 쓰는 사람도 많다. 그럼에도 나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꽤 좋아하는 편이다. 퇴사나 세계여행 같은 일들이 세상의 기준에서 보면 흔한 일인지 몰라도 그런 결심을 한 개인의 시점에서는 큰 도전이었을 테니까. 이 책의 저자 역시 자신의 직업이 자신과 잘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오랫동안 그저 버티는 삶을 살아왔다. 그런 그가 사표를 내고 세계 일주를 하면서 자기 삶의 주인이 되기로 결심한다.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한 것이다. <더 이상 미루면 포기할 것 같아서>는 여행기인 동시에 한 사람의 변화에 대한 기록이다. 그리고 저자는 여행을 결심하고 떠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는다. 저자의 여행 이야기가 순전히 멋지고 화려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저자가 겪는 크고 작은 실수들과 실패가 꽤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이 책을 읽는 재미 중 하나다.

 

 저자는 파키스탄, 인도, 러시아, 노르웨이 등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잊지 못할 추억들을 쌓는다. 세계의 여러 장소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자신의 모습을 찍고 싶은 마음에 보드와 드론을 챙겨 가기도 한다. 여기서 놀라운 점은 저자가 보드를 잘 타지도 않고, 드론을 제대로 다뤄 본 적도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 현지인이 저자가 보드를 잘 타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는 장면이 있다. 처음에는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책을 읽다 보면 저자에게 중요한 건 보드를 잘 타는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저자에게 중요한 건 자신이 어디에서 보드를 탈 것인지를 정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순간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저자는 노르웨이의 한 장소에서 보드를 타지 못했다는 게 안타까워 여행 도중에 다시 노르웨이로 돌아가기도 한다. 무모하고 비효율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최우선으로 하려는 저자의 마음가짐이 돋보이는 장면이다.

 

 긴 여행을 끝마치고 가족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돌아온 저자는 이내 공무원 시험에 응시해서 합격한다. 그러나 공무원 생활이 본인의 성향과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고민하게 된다. (저자 본인의 말에 따르면)이미 사회적으로 적지 않은 나이에, 경력이 단절되어 재취업도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다시 퇴사를 결정하기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저자는 다시 이전처럼 그저 살아 있기만 하는 삶을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여행을 통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맛보고 돌아왔기 때문이다. 쉽지는 않은 결정이었지만 저자는 결국 다시 퇴사를 선택한다. 책의 뒷부분에서 인상적이었던 내용은, 저자가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바로 실행하는 사람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하고 싶은 일을 마음 속에 간직한 채로 살아가지만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그 일들을 미루곤 한다. 지금은 현실적으로 어려워서, 아직 내 실력이 부족해서, 좀 더 안정된 다음에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런 식으로 미루다 보면 원하는 일을 언제쯤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책임질 사람은 결국 자신밖에 없다. 자신의 일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저자가 말하는 '삶을 생생하게 살아가는 방법'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게 반드시 기쁘고 행복하기만 한 길은 아니다. 현실적인 문제들에 부딪치기도 하고, 후회하게 될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실제로 저자는 공무원을 그만두지 말 걸 그랬나 하고 여러 번 생각했다고 한다. 현실을 생각해서 원하지 않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삶도 충분히 가치 있는 삶이다. 다만 스스로의 마음이 병들지 않도록 돌보는 것은 스스로의 몫이다. 자신의 일을 스스로 선택해도 될지 확신이 들지 않는 사람, 좀 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고 용기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