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강영숙, <부림지구 벙커X>

김미류 2020. 3. 15. 23:49

 

 <부림지구 벙커X>는 지진으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다. 주인공이 살던 부림지구는 지진으로 완전히 파괴되어 사람이 살아가기 어려운 지역으로 변해 버린다. 주인공은 부림지구를 떠나지 않고 보호소를 거쳐 벙커로 향한다. 작중의 묘사를 보면 정부는 부림지구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거의 도와 주지 않는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음식이나 물을 구하기도 힘들고, 제대로 된 화장실에 갈 수도 없으며, 당연히 씻지도 못한 채로 살아간다. 주인공인 유진은 사십 대 중반의 중년 여성인데, 지진 이후 생리가 멈췄다는 말이 초반에 나온다. 극한의 상황에서 생리를 하지 않는 게 다행일 정도다. 개인적으로 예전부터 재난 영화나 포스트 아포칼립스물에서 여성들의 생리를 아예 언급하지 않는 게 별로라고 생각했다. 물론 주변 환경이나 개인의 몸 상태에 따라 생리가 멈추기도 하지만, 어떻게든 살아가는 여성들은 생리에 대해서도 신경쓰지 않을 수가 없으니까. 이 소설에서는 작중의 어떤 여성이 생리대를 가지고 있지 않아 흰 셔츠를 조각조각 잘라 썼다는 내용도 있다. 

 

 벙커는 사람들이 정말 목숨만을 부지하게 해 줄 공간일 뿐이다. 벙커 안에는 그들을 사람답게 살도록 도와 줄 만한 것들이 없다. 벙커 안의 사람들은 개중 박식하고 선한 '대장'을 필두로 밖에 나가 먹을 것을 찾아보기도 하고, 자기들끼리 필요한 물건을 교환하기도 한다. 벙커 안에는 열 명이 살고 있다는 설정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나오지만 그 중 노부부가 인상적이었다. 노부부는 지진 이전에 꽤 많은 것들을 누리면서 살았던 것 같다. 현실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자 노인은 검버섯이 핀 얼굴에 곱게 화장을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나중에 자기 집에 놀러 오면 차와 쿠키를 대접하겠다는 말을 한다. 매일마다 차려입고 벙커 문 앞까지 산책을 나가고 차를 마시고 싶다며 차를 찾는 그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이 되는 존재다. 솔직히 말하면 그 노부부에게 인간적으로 호감이 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재난 상황에서 가장 약하고 가장 먼저 외면받는 노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지진이 아니었더라면 그들은 그럭저럭 편안하게 노년을 보냈을 것이다.

 

 이 소설은 결말이 아주 명확한 편은 아니다. 결말이 흐지부지하다는 폄하의 의도가 아니라, "그래서 주인공이 마지막에 어떻게 되는데?"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어려운 소설이라는 뜻이다. 그래도 결말은 서평에 가급적이면 적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결말은 적지 않는다. 사실 결말이 그렇게 중요한 소설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주인공이 마지막에 어떻게 되는지가 아니라, 주인공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처절하게 살아가는지가 더 중요하게 느껴졌다. 작가의 글을 보면 작가는 오래 전부터 자연 재해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인간도 냉혹한 자연 세계의 일부이고 자연의 우발적인 공격에 노출되어 있는 우주의 아주 작은 물질에 불과하다는 건 분명하다.'라는 문장이 있다. 큰 자연 재해 앞에서는 모든 인간이 평등할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끔찍한 삶이 지속되는 상황에서는 더 약한 자가 더 많이 고통받는다고 생각한다. 큰 지진을 겪은 유진의 삶은 아마 지진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작가의 말처럼 나 역시 '나는 소설의 주인공들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