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주면 쓰는 리뷰 : 걸캅스(Miss & Mrs. Cops)
리뷰를 작성하기에 앞서, 나는 영화에 대해 잘 안다거나 영화를 공부한 사람이 아니다. 그러므로 지극히 주관적인 의견들에 기반해 이 글을 쓰고 있다. 이 글이 나 외에 그 누구의 의견도 대표하거나 대신하지 않음을 미리 밝힌다. 그리고 영화의 중요한 내용들을 미리 밝히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한 부분이 몇 군데 있다. 영화에 대한 사전정보를 일체 얻고 싶지 않은 사람은 이 글을 읽지 않기를 권한다.
어느 날 할 일이 없어 메신저 창을 뒤적거리던 중 지인들이 모인 단체 톡방에서 걸캅스를 욕하는 의견들을 보게 되었다. 일단 걸캅스를 욕하는 대표적인 별명으로는 '걸복동'이 있는데, <자전차왕 엄복동>에 빗대 온갖 망한 것들에 '~복동' 을 붙이는 요즘 인터넷 밈인 것 같다. 걸캅스가 욕을 먹는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는 것 같았다. 대표적으로 전개가 억지스럽고, 이성경 같은 (마르고 가녀린) 배우가 형사 역할로 액션 연기를 소화하는 것이 어색하며, 욕이 너무 많이 나오고, 윤상현이 남자 가정주부인데 무시당하는 역할로 나오고, 뭐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들었다. 하여튼 걸캅스가 쓰레기 영화라는 결론이었다. 대강 이야기를 들으며 했던 생각은 아직 개봉조차 하지 않은 영화가, 대한민국 역사에 남을 희대의 망작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보통 영화를 욕하는 사람들은 영화를 보고 나서 그 영화가 내 돈을 들이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쓰레기 같은 영화였다는 사실에 분노해서 욕을 하곤 한다. 영화를 굳이 보지 않을 사람들은 영화에 관심도 주지 않기 때문에 욕도 잘 하지 않는다. 그러나 걸캅스는 개봉 전부터 각종 커뮤니티에서 꽤 많은 주목을 받으며 망한 영화라는 말을 듣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나는 걸캅스를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망했다는 영화나 게임 등이 출시되면 사람들은 그 컨텐츠를 남에게 즐기게 하고 싶어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걸캅스 예매해주시면 보고 리뷰도 씁니다" 라는 말로 은혜로운 지인에게 걸캅스 티켓을 받을 수 있었다. 카테고리의 제목은 거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사 주시면 보고 리뷰 씁니다.
먼저 라미란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라미란이 출연한 영화들 중 내가 처음으로 본 건,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친절한 금자씨>였다. 여러 영화에서 약방의 감초 같은 조연으로 출연하여 어쩌구 하는 이야기들은 나 말고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했을 테니 넘어간다. 라미란은 상당히 인상이 강렬한 배우라서 한 번 보면 잊어버리기가 쉽지 않다. 실제로 라미란이 조역이나 단역 정도로 출연한 작품을 보고 잊어버리고 있다가, 나중에 라미란이 출연한 다른 작품을 보고 어 이 사람 거기서 뭐로 나왔던 사람이네, 하고 생각한 적이 많다. 걸캅스가 라미란의 첫 주연작이라고 하는데, 솔직히 이 정도 되는 배우가 주연작을 이제 맡았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이성경의 경우는, 이성경처럼 가녀리고 마른 배우가 형사 역을 맡는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평가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말을 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성경은 작중에서 비중 있는 액션 씬을 맡지 않기 때문이다. 이성경의 액션으로 악역들을 다 때려잡고 그러는 게 말이나 되냐는 식으로 트집을 잡는 사람은 그냥 영화를 안 봤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나는 원래 소원 출신이기 때문에, 수영이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이 영화를 봐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수영은 무려 국정원 직원이었다가 댓글부대 일에 환멸을 느끼고 그만둔, 비범한 재능의 해커 역할로 나온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수영이 제일 웃기다.. 걸캅스에는 욕이 많이 나오는데 수영도 거기서 한 몫 한다. 수영의 첫 대사는 언니 우리 X됐다고 하는 대사인데, 수영의 이런 모습과 내가 이전에 봤던 수영의 아이돌로서의 모습들을 번갈아 생각하다 보면 만감이 교차한다. 하여튼 양장미 역에 수영을 캐스팅하기로 한 사람은 천재인 것 같다. 수영이 없었으면 영화가 훨씬 덜 웃겼을 것 같다. 그러나 양장미 캐릭터는 설정이 억지스럽다는 이유로 엄청난 욕을 먹은 바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걸캅스에서 가장 말이 안 되는 건 댓글부대 일에 환멸을 느끼고 국정원을 그만둔 양장미가 아니다.
바로 라미란이 연기한 박미영의 남편 역으로 나오는 윤상현이다. 윤상현은 사법시험을 10년 정도 준비하는데, 결국 합격하지 못한 채 로스쿨과 변호사 시험이 생기면서 사법시험이 사라진다. 작중에서 윤상현은 아내와 아이를 사랑하고 가정에 충실하며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성실한 남편으로 나온다. 물론 경제적인 능력은 없어서 전업주부로 일하며 아내에게 엄청난 구박을 받는 것이 일상이다. 그러나.. 과연 사법시험을 10년 정도 준비한 사람이, 그것도 합격하지 못한 채 사법시험이 없어진 상황에서도, 이런 인격자라는 것이 말이 되는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법시험 같은 시험을 어려운 환경에서 준비하게 되면 몇 년만에 내면이 황폐해지기 쉽다. 게다가 자기 인생을 건 사법시험이 사라져 버리면 사람은 어떤 마음 상태가 될까.. 사실은 윤상현의 이런 캐릭터야말로 정말 판타지에 가까운 것이다.
걸캅스는 여성 주연 영화고 여성 서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본격적인 페미니즘 영화를 기대하고 걸캅스를 본다면 다소 아쉬울 수 있다. 그냥 극장에서 무난하게 볼 수 있는 웃긴 액션 영화 정도라고 생각된다. 왜 이 영화를 둘러싸고 페미니즘 의제와 관련하여 수많은 키보드 배틀이 벌어졌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의문의 페미니즘 대작 취급을 받고 있다. 웃음 코드가 더럽고 저차원적이라거나 욕이 너무 많이 나온다거나 하는 비판들은 그렇게 유의미한 내용인지 잘 모르겠다. 추임새 같은 욕설과 더럽거나 저급한 유머는 한국 형사물에서 거의 빠지지 않는 요소였다고 생각한다. 물론 뻔한 것들을 그대로 가져다 썼다는 비판을 할 수는 있다. 근데 카 체이싱은 정말 미쳤다.. <아수라> 이후로 가장 감동적인 카 체이싱이었다.
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쓰지 않으려고 하니까 딱히 쓸 말이 없긴 하다. 개인적으로 놀란 점은 영화에 두어 명 정도 유명한 배우가 까메오로 나오는데 사람들이 그 배우들 이야길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물론 딱히 할 이유가 없긴 하다. 해당 배우들이 가치가 없다는 게 아니라 해당 배우들이 영화 속에서 차지하는 장면이 그리 비중이 엄청나지는 않다는 뜻이다. 여담으로 그 중 한 배우를 예전의 꽤 좋아했던 입장으로서 그 배우가 나오는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너무 놀라서 소리를 지를 뻔 했다.. 너무 뜬금 없는 장면에서 잘 아는 얼굴이 나오니까 기분이 이상하더라. 마치 곡성에서 황정민이 처음 등장했을 때처럼..
아 하와이안 셔츠 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