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아오야마 미나미, <60, 외국어 하기 딱 좋은 나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있다. 아직도 이 말이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 말은 보통 나이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말 대신 쓰이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 책, <60, 외국어 하기 딱 좋은 나이>의 저자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저자 아오야마 미나미는 나이 60에 스페인어를 배우기 위해 멕시코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솔직히 말하면 저자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냥 보통의 할아버지'는 아니다. 저자는 영어로 된 소설을 오랫동안 번역해 온 베테랑 번역가니까. 확실히 외국어 하나에 능숙한 사람은 다른 외국어에 도전하기 조금 더 쉬울 거라고 생각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환갑의 나이에 새로운 언어를 배우러 떠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저자는 미국 소설에서 스페인어의 비중이 점점 늘어난다는 사실을 깨닫고 스페인어를 공부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이 책은 저자가 멕시코의 과달라하라라는 도시에서 10개월 동안 홈스테이를 하며 스페인어를 배우며 겪은 일들을 적은 이야기이다. 일단 저자의 과감한 도전이 재미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멕시코라는 나라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되었다. 책 마지막 부분에는 간단한 스페인어 표현들이 정리되어 있다.
저자는 스페인어를 거의 기초부터 현지에서 부딪치며 배운다. 처음에는 홈스테이를 하는 집주인 자매와도 제대로 의사소통을 하지 못한다. 집주인 자매는 각각 70세, 75세의 노부인들이다. 집주인인 노부인 자매와 일본에서 온 60세의 학생이라는 조합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참고로 책 뒷표지를 보면 저자가 나중에 홈스테이를 하는 다른 집에서는 80세 노부부를 손님으로 받아 본 적이 있다는 언급이 있는데, 놀라울 따름이다. 하여튼 저자가 다니는 어학원에는 의외로 나이 많은 학생들이 많다. 중년의 한국인 손님도 잠깐 등장한다. 서울이 춥다는 이유로 멕시코의 과달라하라로 이사를 하고 싶어하는데, 아내가 멕시코로 오고 싶지 않아 한다는 것이 그의 고민이었다. 서울이 추워서 멕시코로 이사하기 위해 스페인어를 배우는 한국인 중년 남자라. 잘 상상이 가지 않았다. 세상은 넓고 특이한 사람이 참 많다.
<60, 외국어 하기 딱 좋은 나이>는 스페인어 교재가 아니라 에세이다. 하지만 스페인어를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읽어 보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된다. 저자가 완전히 초보였을 때 스페인어 단어를 외우던 과정, 멕시코 현지 사람들과 겪었던 일화, 그 외에도 간단한 스페인어 표현들이 나온다. 60세 할아버지도 스페인어를 배우는데 내가 못 배우겠냐는 생각으로 공부에 도전할 만한 동기도 만들어 줄 수 있다. 60세 할아버지를 무시하는 건 아니고, 책 본문에도 언급되는 내용이다. 책 본문에 따르면, 언어 습득 이론을 연구하는 학계에서는 '임계기 가설'이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특정한 나이대가 지나면 새로운 외국어를 습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가설이다. 물론 완벽한 사실이라고 입증된 건 아니지만 저자는 이 이론을 이야기하며 나이로 따지자면 자신은 실격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가 원했던 것은 원어민 같은 실력이 아니라 '갑자기 스페인어가 튀어나와도 당황하지 않을 용기'였다. 그 정도의 용기를 갖고 싶어서 공부하는 사람에게 나이 이야기 같은 걸 하며 어깃장을 놓을 이유가 있을까.
새로운 언어를 공부하게 되면 그만큼 자신의 세계가 넓어진다. 모국어만을 사용했을 때는 읽을 수 없었던 글들을 읽을 수 있고, 직접 대화하기 어려웠던 사람과도 대화할 수 있다. 나 같은 경우에도 스페인어를 직접 공부한 건 아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스페인의 스페인어와 멕시코의 스페인어가 다르다는 지식을 하나 얻을 수 있었다. 나이 60에 직접 멕시코로 떠나 몸으로 부딪치면서 스페인어를 공부한 저자의 세계는 얼마나 더 넓어졌을까.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희망적이기도 하다. 책 앞부분을 보면 저자는 30대 때부터 스페인어를 공부하고 싶었다고 한다. 즉 거의 30년을 미뤘지만 결국 도전해서 나름의 결과를 얻어낸 셈이다. 30년을 미루더라도 끝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을까. 물론 이 책을 읽고 나면 30년을 미루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