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장 폴 뒤부아, <상속>
*책 소개 페이지에 드러난 내용만을 적으려고 노력했으나, 내용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스포일러 주의*
펠로타라는 스포츠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테니스나 스쿼시와 비슷한 경기라고 한다. 주인공인 폴은 펠로타 선수로 살았던 4년 간이 인생에서의 행복한 기간이었다고 말한다. 폴은 스스로가 저주받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그와 함께 살았던 할아버지, 외삼촌, 어머니가 모두 자살을 선택함으로써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 것이다. 우연의 반복이라기에는 너무나도 잔인한 일들이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집안에 뭔가 잘못된 피가 흐르고 있는다고 믿는다. 그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폴은 집을 떠나 마이애미로 도망친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따라 가업처럼 자신에게 내려오던 의사 일도 포기한 채로 펠로타 선수가 된다. 폴은 아주 뛰어나거나 주목을 받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경기를 하고 친구와 대화를 하고 가끔 배를 타면서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하지만 결국 저주에 가까운 그림자가 그를 찾아오는데, 그에게 남아 있던 마지막 가족이었던 아버지 역시 자살을 선택한 것이다. 폴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이런저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행복한 생활을 놓아 두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상이 책 표지나 출판사에서 소개하고 있는 <상속>의 대략적인 줄거리이다. 이후의 전개에서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하는 내용들이나 결말을 이 글에 언급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가급적 사소한 부분들과 감상을 중점으로 글을 쓰도록 해야겠다. 폴의 유전자에는 뭔가가 있다. 아주 오래 전부터 그의 가문에 내려오는 저주받은 기운(?)인데, 아무래도 그 기운을 타고 나는 사람들은 '제대로 된'삶을 이어 가지 못하고 죽음을 맞는 것으로 보인다. 폴은 그런 유전자로부터 도망치고 싶어하지만 그게 그렇게 쉽지는 않다. 제목의 원어인 'La Succession'에는 '상속' 외에도 '계승'과 같은 뜻이 있다고 한다. 즉 대물림과 비슷한 의미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유전자란 내가 스스로 선택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아주 많은 부분을 결정짓는다. 폴처럼 심각하고 무거운 문제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자신이 부모나 그 위로부터 이어받은 특질들 중에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하나쯤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유전자는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을지언정 결코 근본적으로는 바꿀 수 없다는 점에서 조금 무섭기도 하다. 이 소설을 읽으며 영화 <유전>을 떠올렸는데, 가문에 내려오는 어떤 불길하고 무서운 것이 이야기의 중심이 된다는 점에서 조금 비슷했기 때문이다.
<상속>은 조금 무겁고, 읽는 내내 죽음이라는 개념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소설이다. 하지만 읽는 사람을 빨아들이는 힘이 있고 책장이 빨리 넘어가는 책이었다. 아마 이 소설을 읽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폴이 가문의 저주를 극복할 수 있을지, 그러지 못할지에 주목할 것이다. 당연히 나도 그 점을 크게 신경 쓰면서 읽었지만 읽다 보면 폴의 삶 자체에 주목하게 된다. 그가 선택할 수 없었던 부분보다는 그가 선택한 삶의 방향에 조금 더 흥미를 갖고 싶었다. 세상에는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수많은 것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삶의 방향을 어느 정도는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폴은 개를 기르고 유쾌한 친구와 우정을 쌓고 매력적인 여성을 만나 사랑도 한다. 그의 삶에 죽음이라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기 때문에 그가 느끼는 크고 작은 행복들이 더 깊게 다가온다. 장 폴 뒤부아는 많은 작품을 냈고 큰 상도 받은 작가라는데, 지금까지는 그의 작품을 읽어 본 적이 없었다. <상속>은 새로운 작가를 알아 가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기에 충분한 작품이었다. 삶과 죽음에 대해서, 영영 도망칠 수는 없는 삶의 고통과 불행들에 대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오는 어떤 행복들에 대해서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