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배혜경, <화영시경>
에세이 읽는 걸 좋아한다. 나와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거나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는 게 즐겁다. <화영시경>의 저자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녹음도서 제작을 오랜 기간 해 왔다고 한다. 녹음도서 제작에 필요한 낭독봉사는 얼핏 보기에 재미있어 보여서 수많은 사람들이 흥미롭게 접근하곤 하지만, 그 중 꾸준히 봉사를 이어 나가는 사람들은 극소수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저자는 13년 동안 낭독봉사를 해 왔다고 하는데 그 정도로 꾸준하게 봉사를 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이 책에서 특히 좋았던 부분은 저자가 낭독봉사를 하며 만났던 책들을 소개하는 5부, '책 들려주는 시간'이었다. 몇몇 책들은 나도 읽어 본 작품이라서 더 친근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화영시경>은 다양한 주제와 다양한 감성의 글을 모아 놓은 책이지만 나는 그 중에서 책 이야기들이 가슴 깊이 다가왔다. 어릴 적 저자의 아버지가 육교에서 사다 주셨던 책 이야기, 라이너마리아 릴케 이야기, 메리 올리버의 <완벽한 날들>에 대한 이야기, 샬럿 브론테와 에밀리 브론테의 자매인 앤 브론테에 대한 이야기까지. 이 책의 문장들이 편안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작가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서가 아닐까. <제인 에어>와 <폭풍의 언덕>은 너무나 유명한 작품들이기 때문에 읽어 보았지만, 앤 브론테의 작품은 아직까지 읽어 본 적이 없었다. 애틋하고 안타까운 앤 브론테의 생애에 대해 알고 나니 앤 브론테의 작품도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리 올리버의 <완벽한 날들>은 평범한 나날이 주는 행복감에 대한 책이라고 한다. 사실 수많은 에세이가 그런 내용을 담고 있는데, 그 에세이들의 선구자격인 책은 아닐까. 역시 한 번 읽어 보고 싶어졌다.
글들도 좋지만, 군데군데 적절하게 들어간 사진들도 책의 볼거리 중 하나다. 사진 구경하는 것도 좋아하는 편이라서 더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저자는 군데군데 패스트 패션에 대한 자신의 견해나 자신이 장기 기증 신청을 한 이유 등에 대해 밝히는데, 그런 부분에서는 생각할 거리를 남겨 주기도 하는 책이었다. <화영시경>은 책뿐 아니라 이런저런 영화, 역사 속 인물들의 일화 등에 대해 소개하는 이야기들도 있어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으면서도 지루하지 않았다. 나처럼 에세이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