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폴커 키츠, <오늘 일은 끝!>

김미류 2019. 12. 13. 19:10

 

 사람들이 일을 하는 가장 큰 이유가 자아 실현이라고 배운 적이 있다. 중학생 때 정도였던 것 같은데, 그 때도 나는 속으로 의아해했다. 사람들이 일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 아닌가? 물론 이 책, <오늘 일은 끝!>에도 언급되는 것처럼 일을 함으로써 자아 실현이라는 목표를 이루는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즐겁고 행복하게 일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일을 하면서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만난 적은 손에 꼽는다. 그런 사람들은 보통 TV에 나오거나, 매체와 인터뷰를 하거나, 책을 쓰는 것 같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이 흔하지는 않다는 이야기다. 나를 포함해 내 주위의 많은 사람들은 일을 통해 자아 실현이나 사회 공헌과 같은 큰 가치를 추구하지 않는다. 그저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하루하루 일을 한다. 그리고 적어도 나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일을 하는 게 딱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오늘 일은 끝!>은 사람들이 일에 대해 가지고 있는 환상의 헛된 부분을 폭로한다. 먼저 노동을 굳이 크고 훌륭한 가치들과 결부시키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를 한다. 일터에서 노동자는 자신이 받는 금원에 상응하는 노동력을 정당하게 제공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과한 열정이나 자신의 업무를 벗어난 분야에 대한 의무감 같은 건 굳이 가질 필요 없다. 세상에는 적지 않은 급여를 받으면서도 만족감이나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직업들이 분명 존재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지 않은 직업이 훨씬 많다. 무례한 사람들을 상대하며 격무에 시달리지만 박봉을 받는 사람들에게 직업 만족도 같은 말이 가당키나 하단 말인가. 그런 사람들에게 일을 통해 자아 실현을 하거나 인생의 의미를 찾으라는 요구까지 하는 건 너무 가혹하다. 

 

 

중요한 사람이고 싶지 않은데요

 

 때로는 사람들이 가지는 환상이 그들을 더 힘들게 한다. 책에서 지적하는 대표적인 예시로는, '나는 회사에서 중요한 사람이다'가 있다. 나 같은 경우에는, 내가 일하는 곳에서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회사에서 내가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는 건, 내가 갑작스러운 독감에 걸려서도 안 되고, 여행을 위해 휴가를 떠나서도 안 되고, 주말에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는 의미니까. 물론 자신의 존재가 중요하다는 사실로 안정감을 얻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하여튼 나는 그렇다. 아플 때는 쉬고 싶고, 때로는 여행도 가고 싶고, 쉬는 날에는 일 같은 건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다. 나 같지 않은, 즉 회사에서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주말에도 회사에서 오는 연락에 필사적으로 답하고, 시키지 않은 일을 찾아서 하고, 휴가까지 반납하고 일한다. 그런 사람들이 이상하다거나 잘못되었다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빨리 소모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마음 속에서 진정으로 휴가를 반납하고 싶고, 시키지 않은 일을 하고 싶어한다고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런 당사자들조차. 

 

 책에서는 '역설적 개입'이라는 개념에 대해 언급한다. '증상 처방'이라고도 하는데, 피하거나 막고 싶은 증상들에 대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즉, 일을 하면서 마주할 수 있는 부정적인 상황들에 대해 직시하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저자에 따르면, 입사 지원자들이나 신입 사원들에게 일에 대한 환상을 심어 주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다. 대신 일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유익한 것들(예를 들면 월급), 일을 하며 각오해야 할 힘든 상황들에 대해 미리 설명해 주는 쪽이 낫다. 현실을 직시한다고 해서 일을 하며 얻는 고통들이 아예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환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 때문에 고통스러운 일들은 줄어들 테니까. 세상에는 일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있다. 나 역시 그렇다. 그 모든 사람들이 일과 관련 없는 의무감이나 일에 대한 환상 때문에 생기는 괴로움에까지 시달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일을 하면서 느끼는 괴로움도 충분히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