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아저씨 골든 햄스터 이야기 (3)

김미류 2021. 2. 13. 09:52

 

 딱 한 번 병원에 간 적이 있었다. 처음에 데려왔을 때 먹이던 사료보다 더 좋은 사료로 바꿔 주려고 했을 때였다. 새 사료가 안 맞았는지 스매커가 안 맞았는지 이틀 동안 묽은 변을 봤다. 하필 휴일이었던 탓에 속을 끓였다. 특별히 아프거나 기운이 없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전문가도 아닌 내가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는 법이다. 우리 집에 온 지 어느 정도 시간도 지났고, 발톱이나 눈, 털 상태 등이 건강하고 깨끗한지를 확인할 필요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병원에 방문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제대로 된 검사를 받을 수가 없었다. 의사 선생님의 잘못은 아니었고 햄스터 친구가 너무 경계를 많이 해서였다. 증상을 설명하고 사진 찍은 걸 보여드리고 자세히 대화를 나누어 보았다. 햄스터의 변을 검사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항문에 검사용 기구를 살짝 넣어서 균이 있는지 확인하는 거고, 하나는 그 자리에서 햄스터가 변을 보면 그걸 가지고 검사하는 거였다. 햄스터 친구는 의사 선생님이 손으로 잡기만 하면 격렬하게 버둥거리면서 저항을 해서 전자는 불가능했다. 햄스터는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햄스터를 거의 만지지 않았다. 당연히 내 손에서도 가만히 있질 않았다. 할 수 없이 우리는 빈 리빙박스에 햄스터 친구를 넣고 변을 보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거의 삼십 분 가량을 기다렸지만 햄스터 친구는 긴장한 눈으로 리빙박스 안을 다다다다 오가기만 할 뿐이었다. 선생님께서는 다행히 사진으로 본 변의 상태나 햄스터 친구의 오늘 모습으로 보아 크게 아픈 것 같지는 않다고 하셨다. 마취를 해서 검사하는 방법도 있지만, 소동물의 경우 마취를 하면 깨어나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증상이 심하지 않을 때는 권하지 않는다며... 하루나 이틀 정도 지켜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말씀하셨다. 알겠다고 하고 이동장을 받아들고는 병원을 나왔다. 다행히 눈이나 귀, 털이나 발톱 같은 곳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그게 햄스터 친구가 우리 집에 오고 나서 유일하게 했던 외출이었다.

 나는 핸들링을 하지 않았다. 핸들링이란 뭐 대충 햄스터가 사람의 손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도록 만드는 걸 뜻한다. 우리 집 햄스터는 우리 집에 올 때 이미 다 자라 있었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모르지만 겁이 많고 인간을 좋아하지 않았다. 햄스터가 사람의 손을 아주 싫어하면 병원에 갔을 때나 보호자의 케어가 필요할 때 곤란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 손길을 좋아하지 않는 작은 생명체에게 자꾸 손을 가져다 대기가 힘들었다. 내가 착하고 동물을 생각하는 사람이고, 햄스터를 핸들링하는 보호자들은 햄스터의 기분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고 뭐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건 절대 아니라는 걸 분명히 밝힌다. 굳이 말하자면 나는 핸들링을 하지 않은 걸 후회한다. 병원에 데려갔을 때 큰 스트레스를 받고 평소에는 내지도 않던 울음소리를 내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내 딴에는 햄스터를 생각해서 최대한 손을 대지 않았지만 사실 그게 나중에 햄스터에게 더 나쁜 결과로 돌아올지도 모를 일이다. 다행히도 햄스터의 변 상태는 집에 돌아오고 나서 차츰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왔다. 어쩌면 병원에 굳이 가지 않아도 될 정도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아파도 병원에 안 가는 것보다는 별 게 아니어도 병원에 데리고 가는 게 낫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안심했다.

 동물병원에 가는 건 처음이었다. 성인이 되어 동물을 반려하는 것도, 내가 단독으로 동물을 반려하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으니까 당연한 일이다. 아마 머지 않아 또 동물병원에 가게 될 거라는 생각을 한다. 나이가 든 햄스터들은 여기저기 크고 작은 병에 걸린다. 그리고 보통은 그 크고 작은 병에 걸려 죽는다. 이제부터는 조금 우울한 이야기를 쓰게 될 것 같다. 이런 이야기를 남들이 보는 공간에 굳이 쓸 필요가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 내가 느끼는 감정들에 대해 그대로 기록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쓴다.

 나는 이 작은 털투성이 생명체가 없는 내 방을 상상할 수가 없다. 머지않아 햄스터가 없어질 날이 올 거라는 걸 알고 있는 지금도 그렇다. 왜 햄스터는 고작 이 년 남짓한 시간밖에 살 수 없는지 이해할 수가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이 작은 동물이 내게 준 힘에 비해 내가 이 쥐에게 해줄 수 있는 일들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나에게 이렇게 중요한 존재가 죽고 나서도 나는 앞으로 길면 수십 년을 더 살아간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느껴진다. 그 어떤 일도 하지 못하고 그저 쳇바퀴 돌리는 햄스터를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던 날들, 무기력한 몸을 일으켜 햄스터 밥을 주고 물통을 갈아 주고 똥을 치우고 혹시나 오늘은 손에 올라와 줄까 손을 내밀어 보던 순간들, 그 모든 게 얼마 지나지 않아 끝날 거라는 사실이 두렵다. 이 작은 쥐가 진정으로 바라는 게 무엇이고 뭘 하고 싶어하는지 뭘 가장 먹고 싶어하는지 어떨 때 행복해하는지 내가 이해할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이 마음 아프다. 하다못해 가장 먹고 싶어하는 음식이 뭔지라도 알 수 있다면 마지막이 가까워졌을 때 언제든 먹을 수 있도록 잔뜩 준비해 놓을 텐데. 좁은 이동장에 집어넣고 흔들리는 차를 타고 병원으로 데려갈 때 아픈 네가 낫도록 병원에 가는 거라고 설명해줄 수 없다는 게 힘이 든다.

 얕은 잠에 들었을 때, 아니면 잠들지 못해 몸을 뒤척일 때, 햄스터가 쳇바퀴를 돌리거나 베딩을 헤치는 작은 소리를 들으면 언제나 안심할 수 있었다. 그 모든 소리들이 내 방에서 사라질 날에 대해 생각하는 게 두렵다.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때가 왔다는 사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