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산드라 크라우트바슐, <쓰레기 거절하기>

김미류 2020. 11. 30. 03:42

 

 현대 사람들은 온갖 물건들을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 경제적 사정이 허락한다면, 당장 어제 산 새 옷 열두 벌을 비닐 포장조차 뜯지 않은 상태로 내버려 두고 새 옷을 또 살 수도 있다. 아직 충분히 입을 수 있는 옷들을 질렸다거나 유행이 지났다는 이유로 쉽게 버릴 수도 있다. 쉽게 손에 넣을 수 있고 또 쉽게 버릴 수 있는 건 옷뿐만 아니다. 가방이나 모자, 신발과 같은 잡화류는 물론이고 전자 제품이나 음식까지도 그렇다. <쓰레기 거절하기>의 저자 산드라 크라우트바슐은 모든 게 쉽게 버려지는 풍조에 반기를 든다. 저자의 전작 <우리는 플라스틱 없이 살기로 했다>는 저자와 그의 가족들이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고 생활해 보기로 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어떤 물건이든 비닐 포장이 빠지지 않는 요즘 세상에서 유리병에 담긴 세제를 찾아 헤매고, 매번 채소를 담아 갈 종이 봉투나 바구니를 가지고 가게에 가는 생활은 그리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플라스틱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냈고, 이제 모든 종류의 쓰레기를 거부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움직임을 담은 책이 <쓰레기 거절하기>다.

 <쓰레기 거절하기>에는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저자와 그 주변인들의 고군분투가 매우 구체적으로 실려 있다. 저자의 친구는 음식들이 대규모로 버려지는 일을 막기 위해 자원봉사자 그룹을 조직해서 대형 마트의 컨테이너 쓰레기통을 뒤지는 활동을 했다. 그렇게 구한 음식물들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운동을 ‘덤스터 다이빙’이라고 한다. 처음으로 덤스터 다이빙 투어에 참가한 날, 마트의 음식물 쓰레기장에 들어간 저자는 거기가 마치 식품 창고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처음 포장된 상태 그대로 버려져 있었던 것이다. 저자의 활동 중 ‘공짜 가게’에 대한 내용 역시 빼 놓을 수 없다. 공짜 가게는 저자가 지역 단위에서 열던 의류 교환 장터의 조금 더 발전된 방식이다. 누군가는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을 공짜 가게에 기증하고, 누군가는 공짜 가게에서 필요한 물건을 가져간다. 얼핏 한국의 ‘아름다운 가게’가 떠오르기도 한다. 공짜 가게는 모든 것이 흘러 넘치는 과잉 상태에 대한 의식을 사람들에게 환기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크다. 물론 실질적으로 버려지는 물건들을 줄일 수 있는 훌륭한 방법이기도 하다.

 저자는 모든 물건이 과잉 상태인 현대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비교해 본다. 저자가 어렸을 때는 집에서 쓰던 전자 제품이 고장 나면 어른들이 손수 고쳤다. 도서관에서 책을 얼마든지 읽을 수 있었기 때문에 굳이 많은 책을 소유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집에서 손수 만든 옷을 입었으며 헌 옷을 서로 물려주었다. 할머니 집 정원에서 자란 신선한 재료들로 요리를 해 먹었다. 그 시절에는 아무렇게나 입다 버리는 싸구려 티셔츠 같은 건 없었다. 인스턴트 식품 역시 마찬가지였다. 물론 저자가 지난 시절을 무작정 낭만화하고 예전이 지금보다 모든 면에서 나았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단지 낭비를 줄이기 위해 마음먹은 사람이라면 저자의 어린 시절과 같은 생활 양식을 고려해 볼 법하다는 것이다. 개중 ‘할머니 집 정원에서 자란 과일’ 과 같이 현대의 한국인들에게는 터무니없게 느껴지는 요소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입을 수 있는 옷을 서로 바꿔 입거나 물려 입는 건 현대의 한국인들에게도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이 책은 환경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기도 하지만 필요와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기도 하다. 저자는 계속해서 우리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너무 많은 물건을 소유하지 않아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미래를 위해 낭비를 줄이려는 노력을 한다고 해서 우리가 더 불행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낭비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들여다볼 기회를 얻게 된다. <쓰레기 거절하기>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더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자, 너무 많은 물건들로부터 벗어나는 데 성공한 한 가족의 기록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서문 한 문단을 이용하며 글을 마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이 책은 여러분에게 무슨 충고나 하자고 쓴 책이 아니다. 게다가 본래는 나올 필요도 없는 책이다. 그런데 나왔다. 이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한 가족의 이야기이다. 필요한 건 모두 갖고 있는, 아니 보기에 따라선 필요 이상으로 너무 많이 갖고 있는 가족의 이야기이자, 그것을 깨닫고 스스로 좋은 삶을 살아 보기로 결심하면서 다른 가족들도 그랬으면 하는 바람을 담은 한 가족의 소박한 이야기이다. 그 가족은 바로 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