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박모카, <세계로 나간 일기도둑>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고 싶어도 마음처럼 잘 되지 않는 시기다. 평소에도 여행에 관한 책을 좋아하는 편인데, 요즘은 정말 여행 책을 읽는 게 삶의 낙 중 하나가 되었다. <세계로 나간 일기도둑>은 '프로 백수'를 꿈꾸는 저자가 세계를 돌아다니며 겪은 일들과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미국, 브라질, 모로코와 몰타, 러시아, 리가, 에스토니아 등 수많은 나라들을 여행했다. 즐거운 일을 겪기도 했고 별로 좋지 않은 일을 겪기도 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그 중에서는 친절하고 유쾌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잘 이해가 가지 않고 불쾌한 사람들도 있었다. 여행이 즐거운 일이라고 해도 여행의 모든 순간이 행복하기만 할 수는 없다. 이 책에는 여행 중에 겪을 수 있는 즐거운 이야기도 힘든 이야기도 있다. 혼자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는 저자의 모습은 용감하고 거침없지만, 때로는 그냥 평범한 청년 같기도 하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 저자가 조금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 책은 여행 정보 책이라기보다는 여행 에세이다. 하지만 저자가 여행을 다니며 얻은 소소한 팁이나 정보에 대해서도 잘 나와 있다. 크루즈 여행에 대해 설명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유럽 내에서는 크루즈 여행을 하는 일이 많다고 한다. 이동하는 동안에도 배 안에서 즐길 거리가 많다는 게 장점이다. 크루즈 여행에 사용되는 배는 보통 17층 높이의 초대형 선박이라고 하는데 상상이 잘 가지 않는다. 그 정도로 큰 배라면 배멀미에 대한 고민도 좀 덜 수 있을 테니, 나중에 여행을 다닐 수 있는 시기가 된다면 큰 배를 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를 잡는 방법에 대해서도 여행지에 사는 누군가의 집에서 무료로 잘 수 있는 카우치 서핑, 다른 사람과 집을 교환해 숙박하는 홈 익스체인지, 단기간 동안 일을 하고 그 대가로 숙박을 하는 워크어웨이와 같은 방법들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거의 모든 방법들을 적극적으로 시도해 본 모양이었다.
저자는 위에 말한 것처럼 다양한 나라를 여행했고 다양한 경험을 했다. 도중에는 브라질의 아마존 정글에서 7박 8일 동안 머물기도 했다. 여행사를 통해 아마존에서 생활하는 프로그램을 예약했는데, 요즘에는 온수도 에어컨도 잘 나오고 저자가 방문했을 때 벼락 때문에 인터넷이 끊겨 있었지만 원래는 인터넷 선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마존에서 며칠 동안 지내게 된다면 인터넷 같은 건 되든 안 되든 그만이 아닐까. 처음에야 조금 불편하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자연 경관은 아름답고, 사람들은 느긋하고, 요리는 자연에서 구한 재료로 만들어진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도 있다. 투어 가이드가 지도나 시계, 나침반을 쓰지 않고 나무나 강의 흐름을 보고 길을 찾아간다는 것이다. 낚시를 하고 싶으면 어장이 아니라 그 물고기가 사는 곳으로 간다. 동물이 보고 싶으면 그 동물을 가두어 둔 곳이 아니라 그 동물을 부를 수 있는 곳으로 간다. '투어의 대부분이 환경은 내버려두고 이를 관찰하는 것'이라는 저자의 말이 재미있었다. 브라질에서의 경험들은 저자에게 천천히 즐기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항상 무언가에 쫓기며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 사람들이 깨닫기 어려운 즐거움이다.
<세계로 나간 일기도둑>은 정말 저자의 일기장을 읽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 주는 책이다. 가끔은 말하는 주제가 다른 곳으로 튀기도 하고, 누군가의 불평을 하거나 흉을 보기도 하고, 별로였던 도시나 별로였던 사람에 대해서는 별로였다고 말한다. 저자 자신의 버킷리스트나 저자가 해 봤던 다른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런 점이 조금 산만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나는 다른 사람의 시시콜콜한 이야기 듣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서 재미있게 읽었다. 여행을 떠날 수 없는 요즘 답답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시원하게 만들어 줄 만한 소탈한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