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켄 리우,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김미류 2020. 7. 27. 01:37

 

 재미있다. 이 책의 서평을 어떤 문장으로 시작할지 한참 동안 고민했다. 일단 재미있다. 이 책은 <내 어머니의 기억>이라는 작품으로 끝난다. 주인공인 '나'의 어머니는 고칠 수 없는 병을 앓고 있어 2년밖에 살 수 없다. 어머니는 '나'를 오래오래 보기 위해 우주 여행을 떠난다. 우주선 안에서는 시간이 천천히 흐르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우주 여행을 하다가 몇 년에 한 번씩 딸을 만나러 지구에 들르고, 짧은 시간을 딸과 함께한 후 다시 우주로 떠난다. '나'는 사실상 어머니 없이 자란다. 생리를 시작했을 때도, 브래지어를 골라야 할 때도 어머니는 곁에 있어 주지 못했다. 자라면서 어머니를 원망하기도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아주 짧은 작품이지만 그만큼 강렬하다. 이 소설집에 실린 대부분의 작품들은 가족에 대해 이야기한다. 소설 속 많은 사람들은 인간에게 정해진 한계를 뛰어넘으려 하고, 어떤 이들은 실제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인간 같지 않은 존재가 된다. 이 책에는 정해진 삶을 살고 죽는 사람도 영원에 가까운 삶을 사는 사람도 나온다. 그리고 전자에 속하는 이와 후자에 속하는 이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서로 사랑한다고 해서 서로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 책에 실린 싱귤래리티 3부작, <카르타고의 장미>, <뒤에 남은 사람들>, 단편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를 읽어 보면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카르타고의 장미>의 서술자는 자신의 동생인 리즈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리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히치하이킹만으로 미국 대륙을 횡단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아버지가 허락해 주지 않자 집을 나간다. 그리고 미국 곳곳에서 가족들에게 엽서를 보내며 여행을 다니다 세 달만에 돌아온다. 시간이 흘러 리즈는 대학에 가고, 인공지능에 대해 공부하고, 인류가 몸이라는 그릇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며 스스로의 두뇌를 그 연구의 실험체로 사용하기로 한다. <카르타고의 장미>는 리즈라는 인물이 걸어온 그 모든 순간들을 언니인 서술자가 옆에서 지켜보는 구성이다. 몸에서 벗어나기 위한 리즈의 여행이 어떻게 끝났는지에 대해서는 여기서 언급하지 않는다. 직접 소설을 읽어 보는 편이 가장 좋다.

 

 <뒤에 남은 사람들>에서는 독자에게 싱귤래리티라는 개념이 무엇인지 알려 준다. 소설 속 문장을 조금만 인용해서 아주 간단하게만 짚는 게 좋을 것 같다. "나는 싱귤래리티 원년에 태어났다. 인간이 처음으로 기계 속에 '업로드'된 해였다." 많은 사람들은 육체를 포기하고 정신만으로 영원히 살아가기로 한다. 그리고 '뒤에 남은 사람들'은 시뮬레이션이 되는 대신 '진짜 현실'을 살아가기로 결정한다. 떠나 버린 사람들과 남겨진 사람들, 어느 쪽이 옳은 선택을 한 건지, 어떤 선택을 한 사람들이 진짜 행복한 건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싱귤래리티 3부작의 마지막 단편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에는 물질 세계를 경험해 본 적 없는 아이가 서술자로 등장한다. 아이의 어머니는 서술에 의하면 "싱귤래리티 이전의 사람, 고대인이다". 실체를 가지고 살아가는 그는 우주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아이와 함께 여행을 한다. 거기에서 순록 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싱귤래리티 3부작은 사랑하지만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가족들의 이야기다. 그 차이에서 오는 어긋남이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순간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우리는 누군가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해도 그를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인간의 노화를 막을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는 세계를 배경으로 한 단편 <호>역시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그 기술이 개발되기 전에 태어난 주인공은 죽음을 예비하는 인간으로 살아가지만, 이내 영원히 살 수 있게 된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의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련의 과정들을 몇 번이고 반복한다. 하지만 결국에는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인간이 영원히 살아간다면 언젠가는 모든 것으로부터 권태를 느끼지 않을까? 나는 영원히 살아가는 걸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시대의 사람이니까 이런 의문을 갖게 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원격으로 간병을 할 수 있는 기술에 대한 소설 <곁>, 사랑하는 아내를 빼앗아 간 달과 싸우는 남자의 이야기 <만조>, 등 그 밖에도 SF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단편들로 가득 차 있다. <모든 맛을 한 그릇에 : 군신 관우의 아메리카 정착기> 역시 읽는 내내 조마조마함을 느끼게 해 준 신선한 소설이었다. 

 

 저자 켄 리우는 머리말에서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결국 누구도 아닌 자기만의 이야기를 쓴다. 이로써 우리는 자기 운명의 저자가 된다." 과연 이런 이야기들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할 법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는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와 이어진다는 경험을 하게 해 준 책이다. 이런 독서 경험은 마음 속에서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